허 훈 | 칼럼니스트
“디아스포라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지난 6월 23일 서울 종이나라박물관에서 열린 ‘지구촌한글학교미래포럼’ 제10회 발표회에서 전후석 다큐멘터리 감독이 던진 이 말은 한글교육의 본질과 미래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표현이었다. 한글교육은 더 이상 단순한 문자 교육이 아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한민족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세계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워가는 ‘과정’임을 상징한다.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성장하는 동포 차세대들은 출생 환경과 사회적 맥락이 제각각이다. 이들에게 한글은 뿌리를 확인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국경을 넘어 다양한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따라서 한글교육은 고정된 정체성을 주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한국인과 세계 시민이라는 두 정체성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이행의 사유’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교육적 비전이 현실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임채완 재외동포연구원 원장이 재외동포기본법의 개정을 강력히 제안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간 한글교육은 민간과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글로벌 동포사회가 직면한 도전은 보다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 법과 제도, 예산과 정책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교육 현장을 든든히 받쳐줄 때 비로소 지속 가능성이 담보된다.
미국 공립학교 내 한국어 정규과정 편입 사례는 한글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이선근 미주한국어재단 회장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현지 교육제도 안에 한국어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때 동포 차세대의 언어권이 보장되고, 한국어의 세계화도 탄력을 받는다. 이는 단순히 교육 현장의 성과에 그치지 않고, 정책적 지원과 재정적 후원이 병행될 때 가능하다.
한편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글교육도 새로운 전환점에 놓였다. 김택수 경희사이버대 초빙교수는 AI 활용이 단순히 교육 효율을 높이는 수단을 넘어 ‘교육 주권’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기술이 교육 현장에 깊이 스며들면서, 우리는 어떤 교육을, 누가 주도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마주했다. 기술이 인간의 정체성과 문화를 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은 앞으로 한글교육의 큰 과제다.
이번 포럼이 특별했던 점은 제도적 논의, 현장의 생생한 경험, 첨단기술의 도입 가능성, 그리고 정체성 교육이라는 다층적 주제를 하나의 장에서 폭넓게 다뤘다는 데 있다. 한글학교는 단순한 언어 교육 기관이 아니라 동포사회의 문화적 정체성과 세계시민적 존재감을 연결하는 ‘언어 플랫폼’이자, 다양한 시대적 요구가 교차하는 장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과거와 현재, 국경과 문화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디지털 혁명과 지구촌 이동이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한글교육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제도적 기반 위에 AI 등 첨단기술과 현장 교육이 조화롭게 결합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이 인간과 인간, 문화와 문화를 잇는 ‘관계 맺기’라는 본질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한글교육은 진정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한글교육의 미래는 단지 문자 습득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동포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서로 연결되어 연대하는 ‘말하기’의 연습이자, 디아스포라 시대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임을 이번 포럼은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이 같은 논의의 장이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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