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우리 민족처럼 디아스포라를 이루고 사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역사적, 경제적 심지어 정치적 이유로 조국을 등지고 전세계 곳곳에 흩어져 부평초 같은 삶을 사는 동포가 750만 명에 이른다.
실무상 동포는 재외국민과 외국국적 동포로 나뉘는데 이는 국적 기준이다.
이런 배경으로 우리에게 동포정책은 각별한 관심과 포용 나아가 활용이 필요한 데 해외거주 동포는 외교부에서, 국내거주 동포는 법무부에서 어떤 경우는 서로 하겠다고 나서고 어떨때는 서로 자기 부처 일이 아니라고 우긴다.
법무부만 해도 동포업무를 전담하는 '외국적동포과'가 잠깐 생겼다가 사라지고 지금은 '체류관리과'에서 담당자 2명이 동포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국내 동포정책이라야 비자정책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자정책 하나 하나에 동포사회가 일희일비 하였고, 그나마도 출신국 동포간 차별과 불편으로 점철된 것이 동포정책의 현실이다.
동포들의 출신국에 따라 비자발급을 달리하는 재외동포법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고나서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의 지시로 방문취업제를 시행한지도 14년이 지났지만, 동포들의 불편은 여전하고 최근에는 오히려 동포들에 대한 비자정책이 역행하고 있다.
'이민동포청'을 만들어 동포라는 자산을 이민정책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활용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정치인들 표 계산과 정부부처의 이해관계를 뛰어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여러번 입법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현실 대안으로 법무부에 동포정책을 전담하는 '외국적동포과'를 부활시키고 동포들의 비자체계라도 서둘러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외국 국적의 동포들을 이민정책의 틀 나아가 남북경협 분야에서 활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있음에도, 동포를 정부 부처의 업무활용이나 정치적 거래 대상쯤으로 치부하여 정책 후순위에 두는 것은 너무나도 국익에 반하는 행위이다.
BEST 뉴스
-
서울 3년 살며 깨달은 한국의 민낯
영하 12도의 서울. 바람은 칼날처럼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홍대 입구에 서 있었다. 움직이는 이불 더미처럼 꽁꽁 싸매고, 온몸을 떨면서. 그때 정면에서 한국 여자 셋이 걸어왔다. 모직 코트는 활짝 열려 있고, 안에는 얇은 셔츠 하나. 아래는 짧은 치마. ‘광택 스타킹?’ 그런 거 없다. 그... -
마두로 체포 이후, 북한은 무엇을 보았나
글|안대주 국제 정치는 종종 사건 자체보다 ‘언제’ 벌어졌는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전격 체포한 직후,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 일정과 맞물려 북한이 고초음속 미사일 발사 훈련을 공개했다. 단순한 군사 훈련의 공개로 보기에는 시점... -
“왜 이렇게 다른데도 모두 자신을 ‘중국인’이라 부를까”
글|화영 해외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종종 비슷한 의문이 제기된다. 남북으로 3000km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 영하 50도에서 영상 20도를 오가는 극단적인 기후, 서로 알아듣기 힘든 방언과 전혀 다른 음식 문화까지. 이처럼 차이가 극심한데도 중국인들은 자신을 ... -
중국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글|허훈 한국 사회에서 ‘중국’은 더 이상 하나의 국가가 아니다. 혐오와 공포, 불신과 조롱이 뒤엉킨 감정의 대상이 됐다. 정치권과 유튜브, 포털 알고리즘은 이 감정을 증폭시키고, 우리는 어느새 중국을 이해하기보다 소비하고 있다. 중국을 모른 채 중국을 단정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조창완의... -
중국산 혐오하면서 중국산으로 살아가는 나라
중국산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중국산 없이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사회의 중국산 혐오는 이미 감정의 영역에 들어섰다. “중국산은 못 믿겠다”, “짝퉁 아니냐”는 말은 습관처럼 반복된다. 하지만 이 말은 대부분 소비 현장에서 힘을 잃는다. 불신은 말... -
[기획 연재 ①] 황제의 방종, 백성의 금욕
중국 전통 사회의 성 문화는 하나의 얼굴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계층에 따라, 권력의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작동했다. 누군가에게 성은 권력의 특권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켜야 할 의무이자 족쇄였다. 이 극단적인 대비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황제가 있었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는 단순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