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기] 풀린 수수께끼
■ 이진숙
그게 어느 해였던가! 아무튼 한해가 막 저물어가던 추운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주방에서 한창 저녁을 짓고 있을 때 “띵뚱-”하고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앞치마에다 젖은 손을 대충 문지르면서 나는 부랴부랴 급기야 문을 열었다.
“아이구, 웬일이지? 어쩌면 연락도 없이 이렇게…반갑구나. 어서 들어와.”
고중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먼저 떠나간 동남이와 승철이었다. 허겁지겁 애들의 손을 막 잡으려는데 동남이가 두손에 받쳐 든 고압가마를 내 손에 넘겨 주었다.
“선생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려고 왔습니다. 이건 닭곰이고요.”
“와-”
나는 애들처럼 소리치며 놀라움과 기쁨의 탄성을 올렸다. 어른이 된 후에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학생들의 그 마음에서 어찌 교원이 된 긍지와 자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도 그 날의 감동을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난다.
나는 서둘러 요리 두어가지를 만들어서는 맥주와 함께 식탁에 올렸다. 잇따라 고압가마뚜껑을 열었다. 흰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면서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희들 남자애 맞니?”
“식으면 맛이 없죠.”
“하하하…호호…”
눈물나도록 고마운 제자들의 진심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잡아주지 못한 자책감과 미안감으로 하여 마음이 괴로워났다.
“자, 마시자! 너무너무 고맙다. 그리구 미안해.”
셋은 맥주잔을 들었다.
“선생님, 우리 때문에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잔 또 한잔…그렇게 그시절, 그 이야기들이 보물처럼 터져 나온다.
술을 마시고 토하기까지 하여 자습시간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일, 파벌싸움에 참가하여 온 학교를 들썽이었던 일…
“한번은 선생님께서 회의하러 가시면서 반장인 저에게 오후의 자습관리를 부탁했는데 글쎄 제가 앞장서서 분필 뿌리기를 시작해서…선생님은 고양이한테 생선가게 맡겼다며 노발대발하셨죠.”
승철의 말이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하하하…호호…”
“전 공부하기 싫어했기에 꾸지람도 많이 들었죠. 문과와 이과를 나눌 때 ‘넌 이과반이나 가라’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에 얼마나 무안했던지…”
동남이가 말끝을 흐리우면서 히쭉 웃어보였다.
“정말 서운했겠구나.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주니 고맙구나.”
“아닙니다. 우린 선생님을 믿고 이해하니깐요.”
그래, 교원에 대한 신임과 리해가 애들 맘속에 뿌리 내렸다는것보다 더 큰 영광이 또 어디 있으랴.
“사실 선생님의 꾸지람을 많이듣던 애들은 대체로 공부를 잘해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던 애들보다 더구나 선생님을 잊지 못해 합니다.”
“정말입니다. 후날 선생님을 만나도 꼬박꼬박 인사도 잘하구요.”
둘은 맞장구를 쳤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차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불쾌하던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한번은 연변병원 ××과에 병보이러 갔었는데 마침 부주임의사가 앉아 있었다. 이윽고 내차례가 왔다. 나는 힐끗 쳐다보던 의사가 “××에서 오셨죠”하고 친절하게 물었다.
“예-”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중학교에 있었습니까?”
“예.”
순간 뭔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 담임은 아니였어도 학년에서 손꼽히는 학생이고 작문을 잘써서 몇번이나 그가 쓴 작문을 모범작문으로 읽어주고 총애했던 그 학생, 하지만 머리속에서 이름까지는 딱 찍혀 떠올랐다.
그는 증상을 묻더니 처방을 쏙쏙 써서 훌 넘겨주는 것이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것 같아 그 무슨 잘못이나 저지른 것처럼 얼굴이 막 뜨거워났다.
(어쩌면 그럴 수가? 그래 잊어야지)
나는 그 날의 일을 지워 버리고 싶은 생각에 고개를 흔들면서 사념에서 깨여났다.
“선생님, 취했습니까?”
“너희들 말을 듣다보니 뭔가 쭉 생각이 나서…그런데 한가지 좀 묻자. 금방 동남이가 한 말이 내겐 수수께끼었는데 왜서일까?”
“그건요, 나같은 애꾸러기들은 ‘우리 선생님’을 ‘나의 선생님’이라 생각해요. 저와 싱갱이질하면서 몰부운 심혈을 나중에 알았으니깐요.”
“맞아요.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고 ‘내’가 우수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답니다.”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은 생각을 말했다.
오, 그렇구나.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알았다!”
나는 여태껏 “나”와 “우리” 사이에 그런 비밀이 있는걸 정말 몰랐지.
“자, 마시자!”
우린 또 맥주를 한잔씩 굽냈다. 나는 또 그들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묻기도 했다.
“지금 우리는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변 땅에서 우리 이름도 함께 빛내렵니다. 두고 보세요.”
그들의 호기찬 말에 나는 너무도 대견스러웠다.
“난 너희들을 믿는다. 잘해봐!”
그후 세월은 또 흘렀다.
말그대로 동남이와 승철이는 자기 업종에서 바야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동남이는 미용업계에서 활약하면서 박사학위까지 따냈고 승철이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계통에서 전문가수준의 인재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 글을 마감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재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 천만지당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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