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제주도의 바람이 전해주는 건 더 이상 소라향만이 아니다. 라면 국물 냄새가 편의점 냉장고 위에 퍼지고, 중국어가 적힌 안내문 옆에서 한국인 점원이 무거운 빗자루를 쥔 채 한숨을 쉰다. 관광객의 무질서한 행동이 반복되는 가운데,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제주도가 중국인의 섬이 됐다”는 온라인의 비아냥은 이제 현실을 반영하는 표현이 됐다.
관광지 곳곳에선 규칙이 무너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제주도 내 무단횡단 적발 건수는 전년 대비 18배나 증가했다. 하루 평균 50건, 그중 대다수가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것이며, 특히 중국 관광객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아이를 데리고 볼일을 본 중국인 여성의 영상이 SNS를 타고 퍼졌고, 관광객 민원 접수 플랫폼은 연일 마비될 정도로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라면 국물과 함께 관광지에 남는 건, 공공 공간에 대한 무관심이다. 편의점 냉장고 위에는 먹고 난 용기가 쌓여 있고, 김치 국물은 아이스크림 냉동고까지 번진다. 청소를 맡은 직원들은 “치워도 치워도 다시 더럽혀진다”며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한 누리꾼은 넘쳐나는 쓰레기 사진을 보고 “이쯤 되면 관광이 아니라 침공”이라고 썼다.
규칙을 무시하는 행태는 거리에서도 이어진다. 횡단보도 신호는 무시되고, 경찰이 단속해도 “앞사람을 따라갔을 뿐”이라는 말뿐이다. 단속된 외국인 중 절반 이상이 중국 국적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오해나 편견으로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제주대 사회학과 김민철 교수는 “일부 관광객들이 ‘다수가 하면 괜찮다’는 생각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며, “공공질서를 대하는 인식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박집에선 다다미 위에서 끓인 훠궈 때문에 고가의 매트가 망가지고, 퇴실 후엔 벽에 립스틱으로 “제주도 너무 재밌다”는 낙서가 남겨진다. 전기밥솥은 쓰레기통으로 둔갑하고, 세탁기엔 해산물이 넣어진다. 한 민박협회 관계자는 “보증금으론 감당이 안 된다”며 “그래도 따지면 다음부턴 손님이 오지 않게 된다”고 털어놨다.
공공질서뿐 아니라 환경에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중국 항공편이 도착하는 날이면 관광지의 쓰레기통은 세 배 빨리 넘쳐나고, 바닷가엔 바비큐 파티 뒤에 버려진 대나무 꼬치만 20kg 가까이 수거된다. 청소노동자들은 “마치 농구하듯 쓰레기를 던지고, 국물은 사방에 튄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하지만 모든 주민들이 분노만 하는 건 아니다. 일부 시장 상인들은 “그래도 손님이 많아 좋다”고 말한다. 중국 관광객들의 소비는 분명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다. 코로나19 이전 중국인 관광객이 제주에서 소비한 금액은 연간 200억 위안, 우리 돈 약 3조6천억 원에 달한다. 그 돈이 도내 서비스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현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갈등도 생긴다. 지역 커뮤니티에선 “이젠 간판도 중국어로 도배됐다”는 불만이 올라오고, 곧바로 “중국인 없으면 문 닫을 가게 수두룩하다”는 반박이 달린다. 문화적 충돌은 점점 일상 속의 긴장으로 바뀌고 있다.
제주도 경찰은 대응 인력을 늘리고 있다. 다음 달부터 중국어가 가능한 경찰 30명이 추가 배치될 예정이다. 거리엔 중한 언어로 병기된 경고문이 다시 붙고, 편의점 유리창에는 ‘음식물 무단 투기 금지’ 안내가 네온불빛 아래 싸늘하게 반짝인다. 그러나 그 경고문 옆, 여전히 누군가가 버리고 간 음료수 병이 놓여 있다.
제주는 지금 두 개의 상반된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돈 쓰는 손님’과 ‘규칙을 무시하는 이방인’이라는 상반된 인식 속에서, 제주도는 이 불균형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관광은 도시를 살리기도, 지치게 하기도 한다. 지금 제주에 필요한 건 단순한 배려의 캠페인이 아니라, 공공질서와 공존을 위한 현실적인 해법이다.
※ 이 기사는 제주 지역사회와 관광문화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취지에서 작성됐으며, 독자의 비판과 제안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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