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중국 전기차·스마트카 산업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기술과 공급망에 빠르게 의존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다만 생존을 위해 중국과 협력할수록 향후 핵심 경쟁력까지 중국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면서, 전통 자동차 업체들이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폐막한 2026 베이징 국제모터쇼를 조명하며 “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미래차 경쟁에서 이미 중국 업체들에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모터쇼에는 약 180종의 신차가 공개됐지만, 업계의 관심은 차량보다 중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밀착하는 글로벌 업체들의 모습에 쏠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행사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중국어 랩 공연으로 발표회를 시작했고, 폭스바겐은 중국식 현대무용을 활용한 무대를 선보였다. 글로벌 업체 경영진 상당수도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롭게 오가며 중국 시장 친화 전략을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전통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지능화 분야에서 중국 업체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사실상 중국 기술 생태계에 적극 편입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폭스바겐은 이미 샤오펑에 약 7억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전자·전기 아키텍처(CEA) 공동 개발까지 확대했다. 양사가 공동 개발한 대형 전기 SUV는 개발부터 양산까지 약 24개월 만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은 올해 중국 시장에서 평균 2주마다 신차 1종을 출시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중국 지리자동차의 전자·전기 플랫폼을 활용한 신규 전기차 플랫폼 개발설이 제기되고 있다. BMW는 중국 배터리 기업 CATL과 협력을 확대했고, 토요타는 화웨이·텐센트·샤오미 등 중국 IT 기업과 손잡고 스마트 콕핏과 자율주행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 르노도 유럽 생산 차량 개발 일부를 중국에서 진행하며 비용 절감과 개발 기간 단축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중국에서 개발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하는 구조”가 자동차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협력이 깊어질수록 글로벌 업체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서구권 업계에서는 중국 업체와 협력하더라도 최첨단 기술은 확보하기 어렵고, 오히려 높은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며 미래 경쟁자를 키우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샤오펑과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은 최근 유럽 시장 공략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며 글로벌 확장 속도를 높이고 있다.
샤오펑은 2026년 유럽 판매량 확대 목표를 제시했고, 오스트리아 마그나와의 현지 생산 협력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샤오미 역시 독일 뮌헨 연구개발(R&D) 센터를 본격 가동하며 2027년 유럽 시장 진출 계획을 공식화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과거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 제조업의 품질관리(QC) 시스템을 배우며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가져갔던 사례가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의 패트릭 후멜 애널리스트는 “외국 업체가 중국 기업과 협력 과정에서 ‘조수석’ 위치로 밀려나는 순간부터 위험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한 번 중국 기술 체계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폭스바겐 CEO 올리버 블루메는 “중국 신생 전기차 업체들처럼 빠른 혁신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인정했고, 벤츠 CEO 올라 칼레니우스 역시 “중국 업체들의 24개월 수준 개발 주기와 비교하면 기존 업체들의 40~80개월 개발 주기는 지나치게 느리다”고 평가했다.
결국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 경쟁과 개발 속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국과 협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핵심 기술 주도권 상실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페드로 파체코 부사장은 “중국식 속도는 장시간 노동 문화와 소프트웨어 중심 전기차 산업 구조에서 나온 결과”라며 “수십 년간 내연기관 중심 체계로 운영돼 온 전통 업체들이 이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는 이제 중국이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기술 표준과 공급망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중국화’ 흐름도 당분간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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