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지린성 연변의 한 수산시장을 찾자 대형 수조마다 러시아산 킹크랩이 가득했다. 손님들의 시선을 끄는 붉은 킹크랩 사이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북한산 오징어와 명태, 조개류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재편된 무역 질서가 연변 시장의 풍경까지 바꿔놓았다.
한때 연변은 북한산 해산물 유통의 핵심 거점이었다. 북한은 수산물을 주요 대중국 수출 품목으로 활용했고, 연변은 북·중 접경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양국 수산물 교역의 중심 역할을 했다. 가격 경쟁력이 높은 북한산 오징어와 명태, 각종 조개류는 지역 주민들의 식탁에 자주 올랐고 이를 취급하는 상인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에 따라 북한산 수산물 수출이 금지되면서 중국 시장으로 들어오던 물량도 사실상 끊겼다. 수십 년간 이어진 공급망이 국제정치 변수에 의해 무너졌다.
실제로 최근 중·북 무역에서 수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공개된 무역자료에 따르면 2025~2026년 중·북 교역은 가발과 텅스텐, 전력 거래 등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수산물은 전체 교역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북한산 해산물의 대규모 합법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거 연변 시장을 상징했던 북한산 수산물은 이제 중·북 교역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현지 상인들 사이에서도 변화는 뚜렷하게 감지된다. 시장 관계자들은 "예전에는 북한산 오징어와 조개류를 취급하는 상점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며 "최근에는 러시아산 킹크랩과 대게를 찾는 소비자와 거래처가 크게 늘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상인은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시장에서 취급하는 품목 자체가 달라졌다"며 "러시아산 수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커졌다"고 전했다.
북한산 해산물이 사라진 자리는 빠르게 다른 공급원이 채웠다. 그 중심에는 러시아산 수산물이 있다. 특히 중국·러시아·북한 3국 접경지인 훈춘은 최근 러시아산 수산물의 중국 진출 관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국제정세와도 맞물려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수산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러시아는 새로운 수출 시장을 찾아야 했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산 수산물 수입을 꾸준히 확대했다. 그 결과 러시아산 킹크랩과 대게, 연어 등 고급 수산물이 대거 중국 시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으로 들어오는 러시아산 활 킹크랩 상당수는 훈춘을 거쳐 유통된다. 업계에서는 훈춘을 중국 최대 규모의 러시아산 활게 집산지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러시아산 활게 수출의 최대 시장으로 자리 잡으며 러시아 수산업의 핵심 소비처 역할을 하고 있다.
훈춘의 경쟁력은 지리적 위치에만 있지 않다. 현지 종합보세구는 러시아산 활 킹크랩을 대상으로 보세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구축해 물류 효율을 크게 높였다. 활어 상태를 유지한 채 중국 주요 도시와 홍콩, 동남아시아까지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면서 유통 비용과 시간을 줄였다. 내륙도시라는 약점을 첨단 물류 인프라로 극복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제 훈춘은 단순한 국경도시를 넘어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동북아 수산물 물류 허브로 성장하고 있다. 과거 대북 교역의 관문이었던 도시가 이제는 중·러 경제협력의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변 수산시장의 변화는 단순한 품목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북한산 해산물의 퇴장은 대북제재가 남긴 흔적이며, 러시아산 킹크랩의 부상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달라진 국제 무역 질서의 결과다. 연변 시장은 국제정치와 경제 변화가 국경 지역 상권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북·중 교역의 상징이었던 북한산 해산물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제는 중·러 교역의 상징인 러시아 킹크랩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연변 수산시장의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동북아 공급망 재편의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국제정세 변화가 국경 도시의 시장 풍경까지 바꾸는 가운데, 연변은 새로운 동북아 경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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