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제날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들 (9) 세월과 더불어 새롭게 인식되는 역사
■ 김철균
1950년 8-9월은 낙동강 유역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을 일방으로 하고, 인민군을 일방으로 하는 쌍방간의 격전이 가장 치열하던 시기였다. 쌍방은 고지 하나를 두고도 몇 번씩 빼앗기고 빼앗는 공방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전투상황을 보면 낮이면 주로 한국군 혹은 유엔군이 고지를 점령하였다. 미공군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밤에는 주로 인민군이 침투공격을 하면서 고지가 자주 인민군의 수중에 장악되군 했다. 인민군이 야간기습에 유능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전투부대가 아닌 정찰소조에 자주 편입되어 낙동강 유역의 지형정찰에 나가군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하루 아버지는 한국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한국군의 추격을 받던 중 함께 나간 동료가 한국군의 총에 뒤잔등을 맞아 부상당하는 통에 둘 다 포로가 되었다. 부상당한 동료가 자기의 머리에 한방을 쏜 후 혼자서 도망치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부상당한 동료를 두고 혼자 도망칠 수 없었으며 더더욱 그한테 총알을 먹일 수는 없었다. 성격이 좀 거칠었지만 독하지는 못한 아버지었다. 아버지가 부상당한 동료를 붙안고 어쩔 바를 몰라하는 사이에 한국군들의 총부리는 점점 다가왔다.
아버지의 정찰병 동료는 한국군한테 포로되자 10분도 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포로가 되어 살아남은건 아버지뿐이었다. 순간, 아버지의 뇌리에는 이젠 끝장이구나 하는 무서운 생각이 엄습해왔다고 한다. 고국땅이라 하지만 처자가 없는 고국땅 – 그 때에 와서야 아버지는 고향 중국 훈춘에 둔 마누라와 자식 생각이 나면서 그들한테 미안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한국군은 아버지를 즉석에는 죽이지 않았다. 뭔가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빨갱이 녀석을 연대본부로 수송한다. 누가 가겠는가?”
“옛, 이병 고상철, 제가 이 자를 압송하겠습니다.”
순간, 고상철이란 이름이 아버지의 뇌리에 충격적으로 안겨왔다. 무의식간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보니 비록 철갑모를 썼지만 어딘가 낯익은 얼굴임에 틀림없었다. 그야말로 거짓말 같고 영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만대행으로 한국인 장교는 고상철이 아버지를 압송하는 것을 허락했다.
“두 손을 어깨위로 올리고 걸엇!”
고상철의 말투는 단호한듯이 들렸다.
하지만 개활지대를 지나 숲속에 들어서자 고상철은 인차 다가와 아버지를 끌어 안았다.
“이 자식, 너 나를 알만해? 내가 바로 고상철이야…”
극적인 만남이었다. 고상철이란 바로 그제날 아버지가 일본군 공사장에서 부역할 때의 동료였는데 후에 광복과 함께 한국(당시는 남조선이라 불렀음)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러던 친구를 전쟁터에서 적아 상대방 신분으로 만나다니 극적이래도 너무 극적이었다.
둘은 풀밭에 주저앉아 한동안 그동안 살아온 인생사를 얘기하다가 고상철이 시계를 보더니 후닥닥 놀라며 “우리 지금 이리고 있는게 아니야”하며 무릎을 치는 것이었다. 고상철로는 차마 아버지를 연대까지 압송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놓아주기도 어려운 입장이었다.
미구하여 고상철은 허리의 뒤춤에서 비수를 꺼내더니 아버지한테 넘겨주며 자기의 다리쪽을 두어번 찌르고 도망가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안돼,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 그것만은 안돼…”
아버지가 머뭇거리자 고상철은 아버지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아서는 지체없이 자신의 허벅지 안쪽을 향해 두번이나 힘있게 찔렀다.
“이 자식아 아직도 모르겠느냐?! 빨리 도망가라. 이제 내가 생각을 바꾸면 너를 찌를 수도 있다. 그리고 나한테 총도 있다. 내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빨리 도망가라. 어서!”
고상철의 말은 단호했다.
“야 이놈아, 이제 북으로 가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라. 여긴 사람 살 곳이 못된다. 중국에 가서 농사를 짓고 마누라와 함께 농사나 지으며 살아라. 그게 맘 편한거다!”
아버지는 더는 대꾸할 엄두도 못내고 돌아서서는 마구 냅다 뛰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정신없이 뛰면서 개활지대를 넘어서자 고상철이 있던 쪽에서 총소리가 한방이 울렸다. 그것은 자기의 부상을 한국군한테 알리려고 고상철이가 공중총을 쏜 것이 분명했다.
고상철의 자아희생 정신으로 아버지는 생명을 건졌을뿐만 아니라 한국군점령지대를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한다.
그 뒤 아버지는 고상철이란 한국군 이등병을 만나지 못했거니와 만날 수도 없었다.
썩 후에 아버지는 자주 고상철이란 이름을 떠올리며 그를 잊지 못해했다. 그리고 고향인 한국 울산에 가보고 싶어했던 것도 아마 고상철을 행여나 만날 수 있을까 해서라 짐작된다.
필자 역시 고상철이란 그 분한테 감사를 드리고 싶다. 당시 그 분이 아버지를 살려주지 않았더라면 필자같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현재 고상철이란 그 분은 살아계실리 만무하지만, 여하튼 그 분이 자녀 혹은 손군들이라도 살아 있을게 아닌가? 그 분들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고상철- 그 분의 명함은 분명 고상철이었다. (다음기 계속)
BEST 뉴스
-
극우, 이제는 때려잡아야 할 때
극우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내의 한 극우 청년단체가 미국에서 첫 공개 활동을 열었다는 소식은 가벼운 해프닝이 아니다. 그들이 쏟아낸 말은 정부에 대한 저급한 욕설, 선거가 조작됐다는 허무맹랑한 주장, 종교를 빌미로 한 선동뿐이었다. 사실은 실종되고 증거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음모론과 분열의 광기뿐이다. ... -
“터무니없는 괴담, 정치 선동의 불쏘시개 될라”
글 | 허훈 최근 온라인 공간에 떠도는 ‘중국인 괴담’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내년까지 중국인 2천만 명이 무비자로 들어온다”, “아이들이 납치돼 장기 적출을 당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버젓이 퍼지고 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임에도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수십 차례 공유하... -
백두산 현장르포① | 민족의 성산, 천지를 마주하다
[동포투데이] 2025년 9월 26일 아침, 백두산 자락은 맑은 하늘 아래 싸늘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는 이른 시간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카메라를 든 한국인 청년들, 러시아와 몽골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백두산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긴 오르막을 지... -
“이게 한국의 환영 방식인가”…이태원 식당의 ‘금뇨(禁尿)’ 표지판이 던진 질문
[동포투데이] 서울 이태원 한 식당 앞.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로 적힌 안내문이 서 있다. “길을 막지 마세요, 조용히 해주세요, 금연.” 얼핏 보면 평범한 문구지만, 중국어 문장에는 다른 언어에는 없는 단어가 하나 더 있다. ‘禁尿(소변금지)’. 그 한 단어는 마치 중국인만 따로 주의가 필요하다는 듯... -
[기획연재②]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교육·신앙·항일의 불씨
[동포투데이] 백두산 자락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서면 용정시 명동촌이 나온다. 소박한 기와집과 푸른 담장이 맞아주는 이 마을은 시인 윤동주(1917~1945)의 고향이다. 그러나 이곳은 한 시인의 생가를 넘어선다. 근대 조선 민족운동의 요람이자, 교육·종교·문화가 교차한 북간도의 심장부였다. 1906년 서전서... -
[기획연재①]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문학, 민족, 그리고 기억의 장소
[동포투데이] 2025년 9월 25일, 기자는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을 찾았다. 이곳은 애국시인 윤동주(1917~1945)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복원된 생가는 소박하게 서 있고, 그 앞마당에는 여전히 들판에서 불어온 가을 바람이 머문다. 마을 입구의 표지석은 단순히 한 시인의 흔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명동촌...
실시간뉴스
-
백두산 현장르포③ | 지하삼림, 천지의 그늘 아래 살아 숨 쉬는 또 하나의 세계
-
백두산 현장르포② | 폭포 앞에서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
-
[기획연재②]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교육·신앙·항일의 불씨
-
[기획연재①]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문학, 민족, 그리고 기억의 장소
-
백두산 현장르포① | 민족의 성산, 천지를 마주하다
-
“해방군인가, 약탈군인가”…1945년 소련군의 만주 진출과 동북 산업 약탈의 기록
-
“고층에 살면 수명이 짧아진다?”…연구가 밝힌 생활 속 건강 변수
-
여성 우주인, 왜 우주비행 전 피임약을 먹을까
-
반려견 키우기의 ‘10가지 부담’…“귀여움 뒤에 숨은 책임”
-
“총구 겨눈 혈맹, 1969년 중·북 국경 위기의 전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