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실화]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8)
■ 김철균
순자네가 연길에 이주한 뒤 얼마 안되어 세상에는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1950년 4월,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은 나루배에 대포와 기타 중무기들을 싣고 국민당해군의 함포속을 뚫으며 11마일(33.5킬로미터)이 되는 경주해협을 강행도하하여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 해남도를 해방하였다.
그리고 그해 6월 25일에는 반도에서 남북사이의 내전이 발발하였다.
전쟁초기 북측인민군대는 3일만인 6월 28일 한국의 수도 서울을 함락하였다. 그 뒤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남진을 계속했다. 그 진격의 선두에는 중국인민해방군 출신장병 6만 5000명이 있었다.
헌데 조선의 전황은 잠시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7만여명의 병력과 260여척의 함정을 지휘하여 반도 서해안의 인천에 상육했다. 그 때로부터 전황은 역전되었다. 9월 28일, 인민군은 서울서쪽 인천쪽으로 밀려드는 한국군과 유엔군을 연희고지에서 결사적으로 막으며 결사전을 벌였으나 역량대비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기에 부득불 3개월간 장악하고 있던 서울을 어쩔 수 없이 내주게 되었다.
한편 한국군과 유엔군은 반도의 중간을 뭉텅 잘라 낙동강까지 진격했던 인민군부대들이 포위망에 들게 되었다. 전쟁형세는 인민군에 몹시 불리하게 전이되었으며 드디어 10월 1일 한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으면서 10월 19일 북측의 수도 평양이 함락됐고 얼마 안되어 한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변까지 다달았다.
바로 이 관두에 중국의 모택동은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중국의 중국군을 반도전선에 파견했다. 그해 10월 25일, 출국후 중국군의 첫 작전이 개시, 미기병사단에 대한 지원군의 장진호 포위섬멸전을 계기로 전황은 다시 역전되기 시작했다.
한국군과 미군은 중국군의 기동성이 강한 운동전과 포위섬멸전에 말려들어 38선 이남까지 후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후퇴중 미8군 사령관 워커장군이 차사고로 죽었고 유엔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
이렇듯 반도에서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되는 긴장한 나날에도 중앙정부는 연변의 조선족들에게 자치권리를 부여하는 민족정책을 실행했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창립당시에는 자치구로 명명했음) 창립대회가 연길 서광장에서 성황리에 열리었다.
그날 조선족을 포함한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은 산뜻한 명절옷차림을 하고 거리에 떨쳐나섰다. 세상에 둘도 없는 민족자치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에루와 어절씨구 좋구나 좋네/ 장백산도 노래하고 해란강도 춤을 추네// 에루와 어절씨구 장고를 울리세/ 연변조선족자치구(주) 세웠네…
춤군들 속에는 순자도 있었다. 그날 순자는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공산당에 대한 감격을 금치 못하였다. 아, 얼마나 위대하고 영명한 공산당인가? 일제는 조선 전체를 집어삼키고 중국까지 침략하였으며 또 중국에 쳐들어와서까지 재중조선인들이 조선말을 하지 못하게 억압하였지만 중국공산당은 재중조선인들한테 나라의 주인으로 중국조선족으로 만들어주면서 조선말과 조선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하고 있을뿐더러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지방자치권리까지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해방전 일제의 노화교육을 받았고 근로봉사대에 끌려가 전염병에 시달리며 곤욕을 치르던 순자한테도 그렇고 그제날 의지가지 없는 고아를 공부시켜 나라의 인재로 중등전문학교의 교단에 서게 한 용환이한테 있어서도 더욱 크나큰 감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순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도 했다.
“연변조선족자치구(주)라고 해서 조선족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족 등 여러 민족이 더불어 살고 있다. 우리의 자치구(주)가 화목하고도 무궁하게 발전장대해지자면 여러 민족과의 단결을 잘 도모해야 한다. 그렇다면 조선족은 한족과 손을 잘 잡아야 하고 한족 또한 조선족과 손을 잘 잡아야 한다. 즉 연변이란 지역사회에서 조선족은 한족을 떠날 수 없고 한족 또한 조선족을 떠날 수 없도록 똘똘 뭉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를 만들자면 조선족인 우리가 먼저 한족들한테 손을 내밀면서 그들을 돕고 아껴주고 사랑해줘야 한다…”
“자기 민족한테 30%의 배려를 쏟았다면 한족한테는 70% 혹은 그 이상의 배려를 쏟아야 한족들의 긍정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어야 연변의 민족단결사업은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 발전할 수 있다.”
자치구(주)가 창립되던 날 저녁이 되어 순자가 남편한테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자 남편도 참 좋은 생각을 하였다면서 칭찬해 주었다.
(다음기 계속)
주: 본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인터내셔널포커스 & 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사료 왜곡 논란 부른 《태평년》의 ‘견양례’
글|안대주 최근 중국에서 개봉한 고장(古裝) 역사 대작 드라마 《태평년》이 고대 항복 의식인 ‘견양례(牵羊礼)’를 파격적으로 영상화하면서 중국 온라인을 중심으로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여성의 신체 노출과 굴욕을 암시하는 연출, 극단적인 참상 묘사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 과도한 각색”... -
중국의 도발, 일본의 침묵… 결승전은 반전의 무대가 될까
“일본은 코너킥으로만 득점한다.” “선수들은 어리고, 쓸모없다.” “일본은 이미 끝났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 말이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문제는 축구가 언제나 말과 반대로 흘러왔다는 점이다. 이런 발언은 종종 상대를 무너뜨리기보다, 잠자고 있던 본능을 깨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괜... -
[기획 연재 ④] 총과 권력이 만든 성의 무법지대
중국의 권력 질서는 단선적이지 않았다. 황제가 제도를 만들고, 사대부가 이를 해석하며, 향신이 지역 사회에 적용하는 동안에도, 제도의 균열은 늘 존재했다. 그 균열이 극대화될 때 등장하는 존재가 군벌이었다. 군벌은 법의 산물이 아니었고, 윤리의 결과도 아니었다. 그들은 오직 무력을 통해 권력을 획득했고, 그 ... -
[기획 연재 ①] 황제의 방종, 백성의 금욕
중국 전통 사회의 성 문화는 하나의 얼굴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계층에 따라, 권력의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작동했다. 누군가에게 성은 권력의 특권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켜야 할 의무이자 족쇄였다. 이 극단적인 대비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황제가 있었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는 단순한... -
에프스타인 파일 공개… 300만 페이지로 가린 서구 체제의 불투명성
2026년 1월 30일, 미 법무부 차관 토드 블랜치는 에프스타인 사건과 관련된 300만 페이지 이상의 문서와 2000여 개의 동영상, 18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대중에 공개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개는 2025년 11월 ‘에프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안’ 발효 이후 이뤄진 최대 규모의 기록물 공개로 알려졌다. 그러... -
7쌍 중 5쌍은 한족과 결혼… 조선족 사회에 무슨 일이
글|김다윗 중국 내 조선족과 한족 간 통혼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조선족의 타민족 혼인 비율은 70% 안팎으로, 전국 소수민족 평균(약 25%)을 크게 웃돈다.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이례적인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인의 선택을 넘어, 인구 구조·도시화·문화 적합성이 맞물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