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 김철균

 

올해 내 나이는 57주세, 오래잖아 60대에 들어서지만 그래도 아직은 분명한 50대라 할 수 있다.

 

50대의 인생ㅡ 인생 반세기 넘어 살아오다 보니 참 희로애락이 많았고 느끼는 점도 많으며 또한 이제 남은 인생에서 해야 할 사명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질 때도 많다.

 

50대의 인생ㅡ 우리는 특수한 시대에 태어났고 그러한 시대에서 살면서 또 그러한 시대가 만든 특수한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현듯 우리는 시대가 만든 “희생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중국으로 놓고 보면 우리 50대가 태어나던 시대가 각종 정치운동이 가장 심하던 시기였다. 대약진, 반우파운동 등 운동열이 심했나 하면 지난 세기 60연대 초기에는 우리 중국이 가장 큰 기아에 시달리던 시기였기도 했다. 그리고 1964년 필자가 소학교에 입학하여 2년이 지나자 “문화혁명”이란 것이 터져 그 때로부터 10년간 배움의 가장 “황금계절”을 놓치고 말았으며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됐을 때는 배움의 “황금계절”이 훌쩍 지나간 뒤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50대들도 엇비슷하다는 생각이다. 6.25 전쟁 뒤에 태어난 한국의 50대들은 우리처럼 정치운동의 “희생품”으로는 되지 않았으나 “보릿고개”의 배고품을 겪었고 공부할 나이가 되었지만 학교문도 가보지 못한 문맹이 수두록했다. 또한 그 50대중 적지 않은 여인들은 동년시기 쌀 몇가마니 값으로 외국에 팔려가지 않으면 안되었고 남성들은 뼈가 채 굳기도 전에 중동의 건설장으로, 먼 바다의 참치선으로 송출되어 손바닥에 장알이 박히도록 일해야 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 우리 50대들은 조상들로부터 물질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거의 없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밭김을 매고 부모를 대신해 동생을 업어키우고 또한 성인이 되기 바쁘게 “지식청년”이 되어 농촌으로 쫓겨가지 않으면 공장의 임시공으로 노루꼬리만한 노임봉투를 받아서는 그대로 부모한테 바치군 하던 우리였다. 또한 나이가 들어 장가를 가 분가라도 하게 되면 재산이래야 고작 색시가 갖고온 이불장에 가마솥 2개, 그리고 찬장(식장) 하나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 우리의 아래 세대들은 완전히 다르다. 부모의 덕으로 호의호식하면서 배고품과 헐벗음이란 무엇인지조차 모르며 자랐고 또한 나이가 들어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부모가 모든걸 다 해준다. 아파트에 모든 가전제품 그리고 요즘엔 아들 가진 집에서 아파트를 사주면 딸 가진 집에서는 자가용을 산준다고들 한다. 그뿐이 아니다.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을 키우는 것 역시 부모의 몫으로 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세대에서는 꿈이나 꿔보았던가?! 분가하면 “성냥갑”같은 세집으로 나가고 자식을 낳아도 그 자식을 꿍져업은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야만 했던 우리였다.

 

어찌보면 우리 세대는 억울한 세대이다. 조상들로부터는 물질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거의 없지만 아래 세대한테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물려줘야 하는 의무감과 그들이 낳은 자식까지 뒤바라지 해줘야 하는 의무감으로 아직도 아글타글하며 살고 있는 50대들이 허다한걸로 알고 있다. 또한 그러면서도 이것이 우리 세대의 운명이요, 마땅히 해야 할 사명감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래 세대한테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물려주어 그들한테만은 우리 세대가 겪어왔던 고생과 풍파가 없도록 한다는 것은 아주 고귀한 생각이며 이를 놓고 시야비야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세대가 아래 세대한테 아주 중요한 것을 물려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윗세대가 우리한테 물려주었던 “간고분투하고 부모한테 적게 의거하고 모든 것을 자아 스스로 개척하고 해결해나가던 그런 정신”을 물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제날 전등불도 없는 두메산골 집체호에 자식을 맡기고도 눈물로 돌아서며 자식한테 “독립의식”을 심어주던 윗세대들이었다. 큰 아들이 장가를 들어도 아래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아들딸들 때문에 장가가는 아들 자신이 “홀로서기”를 하게 했으며 손군이 생겨도 역시 그것들 때문에 외면했던 윗세대들이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얼마전 버스에서 젊은 여성은 그냥 홀몸이었고 친정어머니쯤 보이는 50대 여성이 아이를 업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적이었다. 최근 들어 이러한 현상을 너무나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자식이 보다 덜 고생하게 하려고 자식의 집을 청소해주고 빨래해주고 손군까지 맡아 키워주는 50대들이 아주 허다하다.

 

세상사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세월이 흐르면서 나 자신한테 그 어떤 불상사가 생기고 자연적으로도 어떤 재난이 덮쳐들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가 언제까지고 아래 세대들을 “껴안고 돌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을 “껴안고 돌볼기”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고생이란 것이 뭔지를 알게 하고 고생을 이길 수 있는 정신력을 키우게 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50대인 우리한테도 인생이 있다. 매양 자식들한테 매여살 수는 없고 우리 자체의 인생을 즐길 시간도 가져봐야 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청춘, 제한된 인생 – 우리의 인생은 나 자신의 것이지 결코 아래 세대한테 꿰여있는 “실”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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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의 인생과 우리들의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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