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늦여름, 당시 동맹군은 많은 전쟁터에서 저조기를 겪고 있었다. 미국의 루즈벨트는 미국인은 전쟁중에서 반드시 단결해야 한다고 여러번 강력하게 강조하였다. 그는 1940년에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된 월키 루이스를 여러 나라들을 방문시키면서 미국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준엄한 전쟁시련을 겪고 있는 나라들에 알리려 계획하였다.
그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송미령은 어느 날 공상희의 거처에서 중국을 돕고 있는 미국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연회를 차렸다. 연회에서 월키는 송미령과 송경령의 중간에 앉았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송미령은 월키의 팔을 잡으면서 “제가 당신한테 나의 다른 한 언니를 만나게 할게요. 언니는 신경통이 있기에 오늘 연회에 오지 못했어요.”
연회도중 송미령과 월키가 자리를 뜨자 사람들은 의론이 분분했다.
연회에서 공상희는 송미령과 월키가 없어지자 매우 황당해하며 두 남녀의 행방을 추궁하였다.
그 해 10월 중순, 장개석은 중국방문을 마친 월키를 위해 송별모임을 조직했다. 송별모임은 수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당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장개석과 송미령이 모임에 나타나자 모임의식이 시작되었고 장개석과 송미령은 특별의자에 앉았다. 축사가 끝나나 장개석과 송미령은 월키와 기타 내빈들을 접대하기 시작, 약 1시간 뒤 월키는 헨리 챈들러(당시의 수행인원)를 불렀다. 그는 몰래 헨리한테 잠시후 자기가 송미령과 함께 모임장소를 떠날테니 자신을 대신해 장개석의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월키와 송미령이 몰래 장소를 떠나자 헨리는 장개석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이것 저것 물음을 제기하면서 장개석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기에 노력했다.
행사를 마치고 헨리가 거처에 돌아온 뒤 한밤중이 되자 장개석이 노기등등해 들어왔으며 자동소총을 잡은 3명의 사병이 뒤를 따랐다.
장개석은 가까스로 노기를 억제하며 헨리한테 물었다.
“헨리선생, 당신 빌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요?”
“전 모르는데요.”
헨리가 머리를 가로 저었다.
장개석은 방안의 모든 것을 수색했다. 침대밑을 들여다 보고 옷궤도 열어본 뒤 맨 나중에 방안에서 나갔다.
월키는 새벽 4시경에야 거처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송미령과 함께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면서 이미 송미령을 미국으로 초청하였다고 자랑했다. 이에 헨리는 “바보!” 라고 월키를 꾸중한 뒤 이제 귀국하면 부인과 아들이 공항에 마중나올텐데 장부인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리면 서로 입장만 곤난하게 된다면서 또한 이제 1944년이 되면 재차 대통령 선거경쟁에 나서야 할 것이 아니냐며 충고하기도 했다.
그 이튿날 헨리와 송미령은 어느 한 비밀거처에서 만났다. 이는 이전에 그들이 자주 만나던 거처였다. 이날 헨리는 송미령한테 월키와 함께 워싱턴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누가 안된다고 해요?”
“바로 나요.”
이러자 송미령은 즉각 손톱을 날카롭게 살려서는 헨리의 얼굴을 긁어놓았다.
그 뒤 송미령은 미국인 클라라한테 쓴 편지에서 “당시 나는 진짜 월키 선생과 함께 워싱턴으로 가고 싶었으나 남편(장개석)이 내가 인차 미국으로 가는걸 원하지 않았다”고 고백하였다.
월키와 헨리가 떠나는 날, 그들은 송미령이 차린 한 자선기구에서 송미령과 작별, 이날 송미령의 사무실로 들어간 월키는 인차 문을 닫았고 헨리가 문밖에서 1시간 20분 가량 기다려서야 이들이 함께 나왔다.
이날 송미령은 이들 두사람과 함께 공항까지 갔다. 월키는 비행기에 오르기전에 송미령을 한번 포옹하면서 얼굴에 미묘한 키스자욱을 남겼다.
출처: 신화넷
김철균 편역
ⓒ 인터내셔널포커스 & 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청와대의 저주’는 미신이 아니었다
글|안대주 무기징역. 전직 대통령 윤석열에게 내려진 형량이다. 한국 헌정사에서 이보다 더 추락한 대통령은 없다. 흔히 ‘청와대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이번 사안은 미신의 영역이 아니다. 권력을 사유화한 결과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준 정치적·사법적 결론이다. 윤석열은 끝까... -
야당이 된 보수의 기이한 충성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 날,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국민 앞에 섰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사과였고, 최소한의 거리두기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법부에 대한 공격과 “계엄은 곧 내란이 아니다”라는 궤변이었다. 보수 정당 대표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 -
‘한국인 vs 조선족’ 논쟁에 가려진 윤동주의 정체성
최근 윤동주를 둘러싼 논쟁은 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쟁점은 단순해 보인다. 윤동주는 한국인인가, 아니면 조선족인가.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정확한 정체성인 ‘조선인’이 논의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윤동주를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라고 주장한다. ... -
왜 중국인은 설이면 해바라기씨를 까먹을까
[인터내셔널포커스]설이 오면 중국의 거실 풍경은 묘하게 닮아 있다. 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오르지만, 대화의 중심에는 늘 차탁 위에 놓인 해바라기씨 한 접시가 있다. 손에 쥐고 하나씩 까먹는 이 단순한 간식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중국 설날의 배경음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중국의 화가이자 산... -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세계 곳곳의 기묘한 미스터리 10선
[인터내셔널포커스]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설명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온 이른바 ‘세계 10대 기이한 미스터리’를 모아봤다. 1. ‘아버지 없는 염소’의 미스터리 중국 장쑤성 리양·이싱 일대와 안후이성 랑시... -
숫양이 새끼를 낳는 날까지… 소무, 19년 충절의 기록
소무(蘇武)는 한나라 시기의 사신(외교관)이자, 오늘날까지도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북해에서 양을 쳤다’는 유명한 일화 뒤에는, 개인의 삶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지켜낸 한 인간의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선택이 담겨 있다. 소무는 한무제 시대에 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