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무어라? 나를 취재하겠다고? 허허, 제멋에 구경을 왔는데 취재는 무슨… 내 나이 얼만가고? 여든이라우. 32년도 잰내비(원숭이)띠니까. 몸이 괜찮은가고? 크크, 내 이렇게 다리가 부실해도 연변대(팀) 안방경기(홈장경기)는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우. 제발로 걸어서 말이우. 집이 체육장과 가깝고 또 우리같은 로인네들은 공짜구경을 시켜주니 가만 있을수가 없지.

별나게 올해는 안방경기도 련달아 일곱번씩이나 있어가지고 토요일마다 체육장에 올라오느라 땀 좀 흘렸다우.

가만 있자, 기자량반. 소문에 조긍연감독이 허리병으로 청가를 냈다던데 그게 정말이우? 정말이라고? 그럼 연변대 교련(감독)은 누가하우? 김광주라고? 아… 그 동무 고생하는구만. 하긴 연변대에 그런사람이 있다는게 다행이지. 옛날에는 연변대 대장에 국가대 선수로도 참 잘했었는데. 올해는 어찌라고 교련들이 쩍 하면바뀌는지 차라리 년초부터 김광주를 썼더라면….

허허, 내 이래뵈두 축구는 좀 안다우. 자랑은 아니지만 젊어서는 뽈이나 찬다고 설쳤지라우. 어느 대에 있었는가고? 길림성대는 아니고, 그냥 연길현(룡정시)축구대에서 주운동대회랑 성운동대회에 나갔지우. 위치가 오른쪽 빼기(우익방어수)였는데 주운동대회서 왕청대하고 붙었다가 그만 다리를….

왕청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놈의 떡밥골에 인재가 많았지우. 연변대 력사에서전무후무한전국갑급등1965년전국우승을따낸지도가박만복중국축구대표팀 제1기 웽그리아파견축구류학생 1950년대국가대표팀주력선수)인데 그분도 왕청사람이라우. 그리고 그 시절에 지운봉(1960년대 길림성축구팀 주장, 전국우수공격수. 1973년 별세)이 하고 같이 주력공격수로 나섰던 동경춘도 왕청사람이고.

아마 그때가 연변대 력사에서는 최고였을게유. 와늘, 연변대라면 동북범이 내려왔다고, 두번째 “조선팀”이 왔다고 사처에서 벌벌 떨 때였으니까! 하룡원수로부터 “땅크”라고 칭찬받은 리광수선생(2002년 6월 9일 별세)은 그전에 이미 전국에 소문이 짜~했었지….

그때도 축구구경을 다녔는가고? 다니다마다! 연변대 경기가 아니라 소학생, 중학생 운동대도 펼쳐진다면 누가 부르는것처럼 달려갔다우. 지금처럼 학교마다 애들이 적어 골골거릴 때가 아니였으니 볼만도 했지우. 좌우간 그때는 먹지 못해도 정신 하나는 좋았수다. 바게쯔에 바가지를 엎어넣고 저가락장단을 해대도 “도라지”에 “노들강변”이 냅다 쏟아지던 세월이였으니까. 허허….


전국갑급팀연맹경기에서 우승한 길림성전업축구팀 선수들(1965년)

근데 기자량반이라니까 하는 말이네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연변축구는 선수가 아니라 책임자들이 안된다는 생각이유. 뭐, 그들이 나를 괄시하던가고? 아, 그런 뜻이 아니라 통 자기 선배들을 존중할줄 모른단 말이유. 무슨 뜻인가고? 자, 그럼 어디 한번내 말을 들어보소. 도리가 있나 없나.

연변축구 력사를 보면 뛰여난 감독에 선수들도 많고 또 많은 분들이 아직 생전인데 왜 그들을 모셔서 진단도 받고 가르침도 아니 듣는가 말이요? 하다못해 매 안방경기때마다 전문 차량을 떼서 그들을 주석대에 모셔 구경도 시키고 말이요. 이게 그래 축구하는 사람으로서 최고 례의가 아니요? 그들이 아무리 “성 쌓고 남은 돌”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단 말이요. 그리고 또 그들은 중국축구에서도 원로들인것만큼 한족들도 그들을 알아주고 존경한단 말이요.

지금 저기 저 주석대에 앉아 딱딱 해바라기를 까는 저 사람들을 좀 보우. 경찰들 하고 축구구락부 사람들과 기자 몇몇을 내놓고는 대개가 그냥 시시껄렁한 사람들이란 말이요. 참, 연변축구가 제대로 되자믄 저 주석대부터 싹 청소해야 한다니까!

휴~ 정말이지 이 몇해는 연변축구를 보는게 마음만 아프고 몸만 망치우다. 돈도없고 빽도 없고 그렇다할 선수도 없는 상황에서 올해는 그래도 정부에서 푼푼하게 경비를 줬다던데 그냥 이 모양 이 꼴이니. 내 보기엔 근본을 잊어버린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우.

이왕의 연변팀의 용맹완강한 정신력과 튼튼한 체력, 그리고 자신의 특점에 맞는 익숙한 기전술을 발양해야겠는데 이건도대체 딴판이란 말이우다. 이전에 최은택감독이 있을 때 오동대가 괜찮았는데 그게 바로 그제날 전성기에 있던 연변팀과 같았단 말이우. 바로 선수들한테서 연변팀의 근본을 제대로 찾아냈던게지.

내 보기엔 나라에 5개년 발전계획이 있는것처럼 연변축구도 발전계획을 세워가지고 각종 후대양성에 불리한 제도, 체제, 작법을 없애고 진짜로 연변축구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보우. 지금 연변축구는 썩었단 말이우….

휴~ 이제 내 생에연변팀이 다시 1등을 하는 날을 볼수있을런지….

가만있자, 내 전번에 하도 답답하니까 우리 이곳에 용하다는 점쟁이한테까지 찾아갔다니까. 허허, 그랬더니 점괘가 룡쟁호투(龙争虎斗)라고 나왔는데 연변대는 올해 곤난이 첩첩하다는거요. 연변대 지금 이름이 장백호랑이인데 룡띠해를 만나고 또 룡의 기운이 서린땅에 와서 뽈을 차니까 안된다는거요. 즉 범과 룡은 상극이라….

하여간 내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짓거리까지 했겠수. 아무튼 내 여생에 전국1등은 둘째치고 슈퍼리그에라도 올라가는걸 봤으면 원이 없겠수다. 그런데….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는 삶의 현장을 담는 새로운 보도 방식입니다. 기존의 기사 형식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세상사를 이야기체(Storytelling)로 풀어냅니다.


신희윤 기자
연변통보 201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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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팀의 골수팬으로 살아간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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