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김 혁 (재중동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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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영화 “언브로큰(Unbroken)”이 지난 주말 드디어 중국에서 상영되였다. 중국에서는 영화에 앞서 지난 2011년경에 원작소설이 이미 출간되었고 이번 영화의 개봉에 맞추어 소설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되었다.
 
할리우드의 톱스타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 대신 연출한 영화는  상영전부터 일본 극우들의 온갖 음해와 날조 왜곡으로 년초부터 화제가 되었다.  “언브로큰”의 개봉 소식에 일본 극우단체들이 보이콧에 나서는가 하면, 안젤리나 졸리의 일본입국금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등 그 행태가 도를 넘어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영화에 출연한 재일 교포도 더불어 곤욕을 치르고있다고 한다.
일본 우익들이 이 영화에 발끈한 원인은 무엇일가?
 
“언브로큰”은2010년 발간된 후 180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미국 작가 로라 힐렌브랜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실존 인물인 루이 잠페리니의 실화를 스크린에 담은 작품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참가한 미국의 육상선수였던 루이 잠페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작전을 수행하던중 전투기 고장으로 태평양에 추락해 표류하다가 일본 포로 수용소에 끌려가게된다. 영화는 주인공이 일본 포로 수용소에서 850일 동안 겪게되는 무자비한 역경의 과정이 담겼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소재로 했기에 영화가 상영전부터 일본우익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영화적 제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본군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만행을 대부분 다루지 않아 원작에 비해 훨씬 관대했다.
 
원작에 일본군의 중국 난징대학살 문제나, 십여번 나오던 위안부 얘기도 생략됐다. 일본군이 잠페리니를 비롯한 미군 포로들의 정맥에 희뿌연 코코넛주스를 놓으며 생체 실험을 한 얘기도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원작에는 전범 용의자였지만 수년 뒤에는 일본 총리가 됐던 기시 노부스케와 관련된 일화도 들어있다. 기시 노부스케는 현 아베 일본 총리의 외조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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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당시 영화에서 나오는 루이 젬페리와 비슷한 경력의 사건이 또 하나 있다.
 
1945년 5월, 미군 B29 폭격기에 타고 있던 승무원 11명이 추락, 일본군에 체포되었고 이들 중 여섯명은 산 채로 해부된뒤 소각되었다.
규슈제대 의학부는 이들을 상대로 산 사람의 혈액을 뽑아낸 뒤 바다물을 주입하는 생체실험을 진행했다.
 
미국 정부기록보존소(NARA)에서 요코하마 전범 재판 기록에는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제대에서 실시한 미군 대상 생체실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뜬금없는 비약일지 몰라도 바로 겨레가 애대하는 민족시인 윤동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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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마수에 떨어진 미군포로들이 비운을 겪던 바로 같은해인 1945년 이른봄의 어느 날, 후쿠오카형무소의 한 독방 감옥에서 외마디 비명이 내질러진다. 이는 윤동주라는 한 문학청년이 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절규었다.
 
1943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사상범으로 피체된 윤동주와 송몽규는 “독립운동”이라는 죄목으로 후코오카 형무소에 갇혔다.
 
1945년 용정의 고향집으로 매 "2월 16일 동주사망. 시체를 가져가라."라는 비보가 날아 들었다.
 
윤동주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아버지 윤영석은 일본으로 건너가 사촌인 윤영춘과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로 갔다. 두 사람은 먼저 살아 있는 송몽규를 면회했다.
 
피골이 상접한 송몽규는 간수의 눈을 피해 “저놈들이 주사를 놓아서 이 모양이 됐고, 동주도 이 주사를 맞고….”라고 간신히 한 마디를 남겼다.
 
후쿠오카 형무소는 규슈대학 의학부와 관련이 있는 곳으로 이곳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이 이루어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윤영석이 후코오카 감옥에 갔을 때에도 푸른 죄수복을 입은 조선인 청년 50여명이 강제 주사를 맞기 위해 줄 서 있는것이 목격되었다.
 
가족이 윤동주의 유해를 찾아간지 한달도 되지 않은 3월7일 송몽규 역시 감옥에서 꼭 같은 증세로 숨을 거두었다.
 
“언브로큰”에서 코코넛을 미군포로에게 주입했듯이 윤동주와 송몽규가 맞았다는 주사에 강력한 의문의 초점이 모아진다. 이에 대해 일본인 평론가 고노 에이지 는 “그 의문의 주사”는 당시 규슈제국대학에서 실험하고 있던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당시 힘겹게 전쟁을 치르고 있던 일제는 부족한 수혈용 혈액을 대신할 물질을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약리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인체에 바다물을 주입할 경우, “바다물에 포함된 동물성 플랑크톤 등으로 인한 세균 감염이 발생할 수 있고, 뇌까지 혈액이 전달되면 혈액이 뇌로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 때의 증상이 뇌일혈과 같다.”고 한다.
 
같은 시기 후쿠오카 감옥에서 수감자들이 주사를 맞은뒤 받았다는 “암산 테스트”는 현대의학에서도 임상실험의 부작용을 알아보기 위해 널리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암산은 “신경기능을 통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판단 도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시행정실록을 보면 후쿠오카형무소에서는 1943년 64명, 1944년 131명, 그리고 1945년에는 259 명이 옥사하였다. 이러한 수치는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대규모의 생체실험을 했으리라는 심증을 안겨준다. 그 무간나락에서 문학청년 윤동주가 극악한 일제의 생체실험의 제물이 되었된 것이다.
 
올해는 일본의 패전 70주년, 민족의 해방 70주년이다. 또한 윤동주의 옥사 70주기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의 한편의 영화를 계기로 중.한·일 과거사전쟁은 이제 미·일 역사전쟁으로 확전되고 있는 가운데 다시 일제 형무소에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순절한 우리의 시인을 다시금 환기해 본다.
 
이 처럼 일본으로서는 감추고 싶은 치부와도 같은 전쟁의 역사가 우리 시인의 애닲은 죽음에도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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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칼럼] “언브로큰” 그리고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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