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봤느냐보다, 무엇을 느꼈느냐가 더 오래 남았다.”
지난달 북한 평양을 다녀온 중국인 관광객 A씨는, 쉽게 여행기를 정리하지 못했다. “어땠어?”라는 질문 앞에 멈칫했던 그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몇 장면을 꺼내놓을 수 있었다. 정치 분석도, 체제 비판도 아니다. 낯설지만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는 도시, 무표정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세심하게 기획된 환대와 응답. 그리고 그 틈새에서 번뜩이던, 하나의 표정과 목소리.
그의 여행 기록은 하나의 단상처럼 시작된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잊힐 것 같은’ 장면들, 그리고 그 안에서 고개를 드는 감정들.
“너무 조용해서 낯설었던 첫 순간”
첫 인상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작됐다. 오후 세 시, 활주로는 막 물청소를 마친 듯 반짝였고, 공항 내부는 말 그대로 ‘조용’했다. “죽은 듯한 정적이 아니라, 마치 모두가 숨소리까지 조절하는 느낌이었어요. 박물관에 들어선 것 같았죠.”
공항 직원들의 표정과 동작, 말투는 조심스럽고 절제돼 있었다. 활달한 독일 관광객이 던지는 질문에도, 직원은 미소를 유지한 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모든 것은 예측 가능했다…사진 한 장조차”
시내로 향하는 버스 안, 안내를 맡은 김미경 씨는 또렷한 북경어로 일정표를 설명했다. 하지만 말투는 딱딱했고, 말끝마다 ‘규정’과 ‘정해진 시간’이 붙었다.
“사진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합니다.”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모든 게 그렇다는 걸 알게 됐다. 관광 일정, 숙소 내부, 식당의 접객 방식, 심지어 인사말까지 똑같았다.
양각도국제호텔에 도착한 뒤에는 그 ‘통일성’이 한층 더 강하게 느껴졌다. 침구류는 깔끔했고, 외국 방송도 몇 채널 잡혔지만, 벽에 걸린 그림은 모든 방이 같았다. 금강산, 백두산, 진달래꽃. 아름답지만, 그 동일성이 묘한 긴장을 줬다.
“거리 위 사람들, 질서와 절제가 몸에 밴 듯”
김일성광장 앞, 시민들은 산책을 하거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면은 다른 나라에서 본 ‘광장’과는 사뭇 달랐다. 남성은 대부분 어두운 정장이나 중산복 차림이었고, 여성은 한복이나 단정한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밝은 색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사진 찍을 때도 자세가 다르더라고요. 아이를 세우고, 고개를 바로잡고, 세 번은 각도를 조정한 다음, 단정히 서서 셔터를 누르더군요.”
공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워서 쉬거나, 노래를 틀어놓고 춤추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모두 바르게 앉아 있었고,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백화점은 진열된 사회…가격표는 외화 기준”
관광 중 들른 백화점은 외국인을 위한 공간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상품들 옆에는 유로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생수 한 병 2유로, 티셔츠 25유로.
“북한 주민들은 이곳에서 잘 사지 않아요. 일상용품은 직장에서 배급받거나 내수 전용 매장에서 삽니다.” 가이드의 말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차 도자기를 살 때, “할인되냐”고 물으니 점원이 “가격은 정해져 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흥정’이라는 개념이 낯선 듯한 표정이었다.
“조용한 식사, 남김없는 식판
식사는 인원수에 맞춰 정해진 메뉴가 나왔다. 어떤 선택권도 없었고, 주문은 없었다. 모든 것이 정확했다. 여덟 명이면 여덟 명분의 식사가 나왔다.
더 놀라웠던 건 식사 도중의 분위기다. 어느 식당을 가도 조용했고, 아이들조차 떠들지 않았다. 음식을 남기는 이도 드물었다. “이건 부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생활 습관 같았어요.”
“대화는 있었지만, 대화 같지 않았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언어는 통했지만, 내용은 통하지 않았다.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나요?”라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우리 인민의 행복과 조국의 발전을 반영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외에 예능은 없나요?”
“교육적인 프로그램도 재미있습니다.”
대화는 계속되지만, 언제나 같은 패턴이었다.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백두산”이 먼저 나왔다. 다른 답을 유도해보려 해도, 끝내 돌아오는 건 “우리 나라는 다 아름답다”였다.
그런 가운데, 한 청년과의 짧은 대화가 오랫동안 남았다. 만수대대기념비 앞에서 그에게 “왜 자주 오느냐”고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는 조용해서… 생각하기 좋아요.”
“정답 없는 체제, 그리고 정답 같은 사람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A씨는 옆자리 독일인 관광객과 이야기를 나눴다. “동독 시절이 생각난다”고 말한 그는, “안전하고 질서 있는 삶은 분명한 가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고 했다.
A씨는 여행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질서는 어디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가?”, “우리는 너무 쉽게, '다름'을 이상하게 여겨왔던 건 아닐까?”
그는 결국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다만, 평양에서의 여행이 자신에게 남긴 가장 큰 수확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새로운 질문을 심어줬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어디서나 삶을 이어간다”
그가 만난 평양 사람들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익숙했다. 사진을 찍기 전 아이의 셔츠를 매만지던 아버지, 다정하게 차를 따르던 점원, 조용히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넸던 가이드.
체제는 다르지만, 사람은 결국 비슷한 감정을 갖고 살아간다. 그가 기록한 건 ‘북한’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자주, 너무 쉽게 정답을 말하려 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질문하는 자세일지도 모른다.”
그가 말한 ‘불편한 진실’은, 사실 우리가 그간 외면해왔던 질문에 다시 눈을 돌리게 만든다. 이 세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정답은 없지만, 생각은 깊어졌다. 그것이 여행이 남긴 가장 큰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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