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김 혁 (재중동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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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캐나다 FIFA 여자 월드컵이 막을 올렸다. 1991년에 창설되어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는 본선 출전국 수를 24개국으로 확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남자 월드컵에 비견 될 만한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었기에 모두들 또 한번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일본대 스위스 C조 1차전경기 관람을 하려던 중, 팬들은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된다. 일본 축구팬들이 전범기를 꼬나 들고 자기의 팀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목도되었던 광경이다. 브라질 월드컵은 최상의 스포츠 잔치답게 온 누리의 초점을 한 몸에 모았었다. 그러던 중 월드컵 C조 2차전 경기인 일본 그리스전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화면에 커다랗게 클로즈업 된 한 축구팬의 모습에 관중들은 일순 아연해 지고 말았다. 축구팬의 얼굴에 그려진 선명한 빛살무늬, 그건 바로 일본의 욱일기었다.

그러다 이번에는 여자 월드컵에 또 다시 등장한 욱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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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 태양을 상징한는 빨간색 동그라미 주위에 퍼져 나가는 붉은 햇살- 욱광, (旭光)을 그린 기발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제국시대에 사용 된 일본군의 군기(军旗)이자 현재의 일본 자위대의 깃발이다.

1870년에16줄기의 해살이 도안된 욱일기는 일본제국 륙군기로 지정되었으며 이어서 일본 해군의 각종 장군기(將军旗)도 8줄기의 해살이 그려진 욱일기를 응용하여 제정하면서 욱일기는 일본군의 상징으로 되었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되자 일본군도 해산되었고 그에 따라 욱일기도 사용이 중단되었다. 일본에서 욱일 문양은 축복, 행운같은 것을 상징하므로 욱일기가 축하 용도 및 스포츠 경기 등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욱일기는 일본군의 침략과 가혹한 지배를 겪은 동북아시아 권에서는 금기시 되고 있는 문양이다.

“군대 외에도 폭넓게 사용 돼 왔다, 꼭 군국주의의 심벌(어떤 추상적인 사상이나 개념을 구체적인 사물이나 의미로 바꾸어 나타내는 일)은 아니다”고 일본은 주장한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당시 욱일기는 군국주의 일본의 대표 심벌이었다. 일본이 “종전일”이라고 부르는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옛 군복 차림으로 참배 오는 사람들은 요즘도 욱일기를 흔든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도 일본 정부는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 욱일기를 소지하지 말라고 팬들에게 권고했다. 이처럼 이 깃발의 의미를 일본인들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독일도 일본과 같은 경우로 하켄크로이츠라는 전범기가 있다. 갈고리 십자가라는 뜻으로 만(卍)자라고 부른다.전쟁 미치광이 히틀러가 몸 담았던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당기로 정해졌다가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1935년에 독일의 국기로 지정됐으며, 한때 나치 독일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씌였다. 나치는 하켄크로이츠 전범기를 앞세워 유럽과 아프리카를 전쟁의 불도가니 속에 몰아 넣었다. 하여 이 기발은 “피의 십자가”라는 별명도 가지고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하켄크로이츠 전범기의 사용이 금기시되고 있다.

전후 독일은 전범기를 스스로 불태우며 인류에게 무릎꿇고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일본은 온 세계가 혐오하는 전범기를 공공연히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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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너무나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고 이의를 보이고 있지만 전범기의 경기장 등장은 결코 쉽게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전범기는 일본군국주의가 부르짖던 대동아 공영권 즉 동아시아 식민지 전략의 슬로건이 되었던 깃발이기 때문이다. 비해 말하자면 이 깃발은, 2차 대전 당시의 독일 나치 기발과 꼭 같은 의미를 가진,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깃발인 것이다.

사실 일본인의 식민 침략을 겪은 아시아인들이 아니라면 다른 나라 외국인들은 일본 전범기에 담긴 의미를 잘 모른다. 그들의 시각에 일본 전범기는 디자인이 멋지고 일본풍격이 농후한 기발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헐후한 시각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이 기발의 로고가 맥주병에도 씌이고 회사의 로고로도 쓰인다.

요즘 곧 개봉하게 되는 할리우드 공상영화의 포스터에도 스스럼없이 일본전범기가 새겨져 또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아세아 근대 역사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시기는 암흑과도 같은 시기였다. 또한 인류역사의 오욕의 한페지였다. 다시 이 같은 끔찍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이를 그저 경기를 관람하는 자의 유흥으로만 넘겨서는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중국에서도 일전 다섯 명산중 의 하나인 태산에 오르는 한 중국인이 욱일기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노닥거리다가 분노한 군중에 의해 옷을 벗기운 사례도 있다.

아베 정권 들어 일본의 역사 역주행과 극우 군국주의 화는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이런 시점에서 일부 몰지각한 팬들의 국수주의적인 애국심에 바탕을 둔 응원은 전 세계가 하나가 되는 월드컵의 의미를 오염시키고 있다.

어느 한 학자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과거의 상황을 제대로 해석해서 현재의 상황에 대응해야 미래도 밝아진다는 의미이다. 경기장의 팬이 무심코 그린 문양 하나에도 종횡의 역사가, 그에 내재 된 아픔과 의미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우리가 명백한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와 끊임없이 대화할 때야 만이, 우리가 궁극으로 추구하는 인권, 자유, 평등은 깃들고 월드컵마당과 같이 온 누리가 어우러지는 평화의 장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청우재(聽雨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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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칼럼] 펄럭이는 전범기(戰犯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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