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머리글 : 장백산 아래 두만강변에는 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다. 근로 용감한 연변 인민들은 바로 이 땅에서 ‘한족은 조선족을 떠날 수 없고 조선족은 한족을 떠날 수 없으며 소수민족은 소수민족을 떠날 수 없다’라는 좌우명을 내세우고 중화민족 문화권 속의 독특한 조선족 문화를 꽃피우면서 다민족 문화 융합의 한 폐지를 아름답게 수놓아가고 있다.

본지는 계열보도 '장백산 아래에 민족문화의 향기 그윽하네'로 그 실태를 펼쳐 보이고자 한다.

3-6.jpg

제1편 특색문화 부호에 비낀 창조의 열정

■ ‘붉은 해 변강 비추네’, 광동촌에 울려 퍼지다

붉은 해 솟았네/천 리 변강 비추네/장백산 아래 사과 배 열리고/해란 강반 벼꽃 피네…

수확의 계절에 기자는 시진핑 주석이 몇 해 전에 다녀갔던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노인들로 무어진 광동촌 농민 마을 광장에서 한창 공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시기 전국인민들이 애창하던 '붉은 해 변강 비추네'가 구성진 선율을 타고 마을 상공에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올해에만 이미 관광객 20여만 명을 접대했습니다. 문예공연대가 은을 냈지요.” 광동촌 당지부 서기이며 촌민위원회 주임인 김영숙이 기자에게 하는 말이다.

평균 연령이 70세인 마을의 문예 공연데 대원들은 관광객들이 들이닥칠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공연하면서 팽이처럼 바삐 돌아쳐야 했단다. 올해의 공연 차수는 무려 80차에 달했다.

“관광객들은 우리의 공연을 보고 오기를 잘했다고 말했지요.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즐거웠지요.” 71세에 나는 문예공연대의 ‘맏언니’ 주금숙 할머니의 말이다. 다들 찾아오는 외지 관광객들에게 조선족 전통문화를 알려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움직였기에 일할수록 힘이 났단다.

광동촌의 문예 공연은 인젠 마을 사람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되었다.

■ 중국조선족농부절 전승인 오정묵,‘어곡전’에 반하다

‘어곡전’과 ‘어곡미’는 용정시 개산툰진 광소촌 하천평 마을의 논과 그 논에서 나는 쌀을 두고 하는 말로서 과거 황제에게 바쳤던 쌀로 유래된다.

고귀한 ‘혈통’을 갖고 있는 ‘어곡전’과 ‘어곡미’의 위대한 부활을 위해 20년 가까이 혼신을 불태우고 있는 조선족 유지인사가 있으니 그가 바로 조선족농부절 전승인 오정묵(65세)선생이다.

2007년부터 시작하여 오정묵 선생은 9회째 두만강반에 자리 잡은 ‘어곡전’에서 중국조선족농부절 행사를 추진해오면서 ‘어곡전’에서 펼치는 ‘농부 절’과 ‘풍수제’ 의식을 길림성 문화재 명록에 등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그가 중국 조선족 농경문화 발굴 사업에 쓴 사비만 해도 600만 위안에 달한다.

■ 변경향진에 들어선 국내 첫 이동 조립식 공익영화관

지난해 11월에 용정시 백금향에 세워졌다는 이동 조립식 공익영화관이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정부의 문화혜농정책의 지원으로 세워진 이 영화관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제일 첫 이동 조립식 공익영화관일 뿐만 아니라 국내 첫 변경향진 공익영화관이기도 하다. 좌석이 50개인 영화관 내부는 도시의 영화관에 못지않게 아늑하고 편안한 감을 준다. 매주 두 번씩 무료 관람이다.

공익영화관이 들어서면서부터 이곳의 조선족 군중들은 갈 곳이 있게 되었고 볼거리가 있게 되었다.

한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조선족 군중들을 위해 행정부에서는 우에서 내려보내는 조선말 영화 외에도 가끔 품을 들여 자체번역도 한다.
 
■ 백 년 마을에서 중국 조선족 거주문화의 맥락을 찾는다

투먼시에서 두만강을 거슬러 남쪽으로 20여키로메터 남짓이 올라가노라면 조선족 전통마을로 해 내외에 이름난 백년부락(백룡촌)을 볼 수 있다. 마을에서 역사가 제일 오랜 가옥은 지금 이곳의 주인 김경남 씨가 거처하고 있는 조선족 빨간기와집인데 130년의 세례를 겪었으나 여전히 원 모양 그대로이다.

김경남(66세)은 한국에 나가 번 돈에 형제들의 돈까지 300만 원을 들여 백 년 마을을 만든 전설적인 인물이다.

김경남은 우리가 없어도 나중에 후세들이 자기의 눈으로 조상들이 사용하던 가옥과 물건들을 보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민족의 얼을 간직하도록 하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꿈이라고 거듭 곱씹는다.

백 년 마을에서는 올해까지 2회째 중국 조선족 전통씨름경기를 펼쳤는데 우승을 한 힘장사에게는 황소를 상으로 주었다.

중국 조선족 거주문화를 보여주는 문화적 징표로 자리 잡은 백 년 마을은 이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아름다운 풍경지로 떠올랐다.

■ ‘동방 제일 촌’ 방천촌 중국 명 촌으로

중국 대지의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방 제일 촌’으로 불리는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은 중조(북)러 3개 나라의 접경지대와 제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길림성 첫 명촌지 《방천촌지》는 방천의 역사와 인문, 지리, 풍토와 민속 그리고 경제사회건설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방천촌지》는 국가급 중대 문화사업에 선정돼 편찬되었으며 2017년 12월에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있었던 《중국 명촌지 총서》 발행식에서 중국 명촌지 문화 프로젝트상을 수상했다.

역사적으로 방천촌은 두 번 없어지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한번은 1938년에 일본 침략자들에 의해 마을이 없어졌고 다른 한 번은 1957년의 홍수로 두만강이 범람하면서 마을이 밀려갔다. 1965년 정부에서는 강태원을 방천촌당지부 서기로 임명하고 그를 비롯한 18명 조선족 당원들을 방천으로 이사시켰다.

‘물 마실 때 우물 판 사람 잊지 말라’고 올해 방천촌에서는 마을을 전통문화촌으로 대개조하면서 강태원 서기를 대표로 한 개척자들을 기리는 취지에서 마을 뒤편 호숫가에 ‘태원각’을 세웠다. 몇 세대의 노력을 거쳐 오늘날 방천은 중국 조선족 특색마을, 길림성 8경, 중국 아름다운 레저향촌, 국가 4A급 풍경구로 몰라보게 탈바꿈했다.

방천촌에는 옹군애민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통으로 남아있다. 군부대 지도원은 방천촌당지부 부서기를 겸임하고 조선족 촌민들과 군민의 정을 끈끈히 다져가고 있다. 조국의 변방을 지키는 자제병들을 위해 조선족 촌민들은 명절이면 찰떡에 맛있는 반찬을 장만해 부대를 위문하고 문예 공연을 펼치며 매번 신병들이 오면 환영회를 베풀고 노병들이 떠나갈 때는 석별의 정을 함께 나누면서 군민 융합의 아름다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저명한 시인 하경지는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돌아보고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열사비”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겼다.

연변은 지금 마을마다 산업이 흥성하고 전통가옥이 줄지어 서고 생태 문명환경이 이루어지고 촌관리가 잡혀지고 사람마다 복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보다시피 마을마다 그야말로 조선족 전통문화의 요람이다.

길림신문 /홍길남 리철수 김성걸 리전 김가혜 기자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계열보도] 장백산 아래 민족문화 향기 그윽하네(1)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