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20200420223244_gwdrscce.png때는 2016년 3월 21일 저녁, 서초구에 위치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사무실에서 독서모임이 있었다. 토론지정 책은 미국 대법관을 40여년 지낸 더글라스의 인물평인 <더글라스 평전>이었고 직접 저자가 참석하여 강의했다. 여느 모임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주제’를 둘러싸고 한참을 얘기를 나누다 나중에는 시국에 대한 담론이 오가기 마련이다. 그날 시국담론은 다가오는 4.13 제20대 총선이었다. 그로부터 2년 전인 2014년 ‘4.16 세월호 사건’을 겪고 나서 민심이 크게 등 들리고, 2015년 12월 말경 정윤회 문건 파동이 있었고 그때부터 최순실 이름이 슬슬 거론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대통령은 서열 3위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나돌았는데도 보수정권은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아주 잘하고 있다는 도취에 빠져 있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보수당은 180석 확보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듯 오만에 빠져 있었다. 설마 설마하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쪽은 당연히 진보진영이었다. 민변은 진보단체이기 때문에 그날 모임에서 진짜 그렇게 된다면 나라 앞날이 암울하다고 큰일이라는 반응들이었다. 이에 대해 <더글라스 평전>의 저자인 안경환 교수 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수준이 나라가 망가질 지경으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과연 안경환 교수의 예언대로 보수당은 패배했고 진보당이 이겼다.


20대 총선 결과를 통해 필자는 안경환 교수의 탁월한 식견에 탄복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생활에서 교수, 변호사, 고급관료들을 많이 접촉했어도 안경환 교수의 식견을 초과하는 엘리트를 만나보지 못했다.

민주당은 20대 총선의 순풍을 타고 그 후 있은 2017년 제19대 대선,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이번 21대 총선까지 승리해 4연승을 달려왔다. 이 4연승 중에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1987년 민주화 운동 이래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렇듯 민주당이 연승가도를 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보수당이 너무 못해서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은 결과라고 주장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에 대해 반성도 성찰도 없고 변화도 없고 혁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당은 그 동안 변화와 혁신을 입이 아프도록 외쳤으나 그것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고 실제적인 행동은 없었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당은 물리적인 통합은 이뤄냈으나 화학적인 결합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또 당명은 미래통합당이지만 실제로는 ‘과거통합’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은 21세기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의원직을 사퇴한다는 말을 함부로 던지지 말 것. 둘째, 삭발하지 말 것. 셋째, 단식투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던질 의원직이 없지만 머리 깎고 밥을 먹지 않는 운동을 여러 번 했고 쩍하면 광화문에 가는 장외정치를 감행하여 낡은 정치, 구태정치라는 이미지로서 국민들의 마음을 떠나게 했던 것이다.

게다가 보수당은 과거 낡아빠진 정치 수단이었던 ‘좌파 빨갱이’ 이념공격이 유권자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 시대가 왔으면서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듣기 거북한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유권자를 등 돌리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정녕 빨갱이란 무엇인지? 보수당 국회의원 중에 제대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도 모르고 그냥 빨갱이 공격이 여전히 난무하니 국민들을 식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외적 요인은 변화의 조건이고 내적 요인이야말로 변화의 근거라는 철학적 논리가 있다. 야당이 잘못해 여당이 어부지리를 얻은 부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없는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당사자가 잘해야 큰 성과를 이룩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뭘 잘했나? 크게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투명성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의식 강화이다. 굳이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국가의 존재이유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의무를 지킨 것이다. 아주 상식적인 얘기지만 전 정권은 국민의 안전에 소홀했다. 그 예가 바로 세월호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가 밀리게 된 계기가 바로 세월호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메르스 사태 때도 전 정권은 대응이 미진해 말밥에 올랐던데 비해 이 정부는 정신을 차리고 국민 안전 지키기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대응에 있어서 한국은 지구촌의 스승으로 급부상했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필자는 한국은 정보를 투명성 있게 국민들에게 공개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지금까지 선진국이라고 동경을 받아왔던 미국과 서구 여러 나라들 및 일본은 이번 사태에서 정보가 투명하지 못했다. 물론 속이고 싶어 속인 것은 아니겠지만 의료시스템문제와 국가 방역시스템이 낙후되어 투명하지 못한 것도 있고 일본처럼 천방백계로 올림픽을 치르려는 욕심에 일부러 숨겨온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정보가 투명하지 못하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이들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정보의 투명성을 확보했고 이로서 국민은 정부를 믿고 관과 민이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왔기 때문에 한국이 외신의 찬양을 높게 받고 있는 것이다. 아주 상식적인 말로 하자면 정보가 투명하다는 것은 솔직하다는 얘기이고 인간은 부부, 부모와 자식, 형제, 친구 사이에 서로 솔직하지 못하면 거리가 멀어지고 솔직해야 마음으로 가까워진다. 비즈니스조차도 서로 진정성이 있어야 오래간다. 한국국민은 정부의 정보 투명성을 좋게 여기고 믿고 따르고 심지어 이번 총선에서 정부가 여러모로 허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믿어주자는 심리 덕분에 표를 많이 주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겨왔던 사람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너무 시끄럽다. 사회주의체제하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나라가 별로 나라 같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야당은 반대만 있고 대안은 전혀 없이 시비만 걸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대통령을 함부로 하야하라고 외치고, 대통령 외교를 천렵질(낚시질)이라고 비하하고 심지어 대통령을 아주 막말로 ‘동네 강아지’ 대하듯 함부로 하는 저질 행위도 그 어떤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 나라가 시끌벅적해서 불안해 날 때가 많다. 물론 정권의 성향에 따라 시끄러운 상대를 대하는 방법과 방식이 다를 수 있다. 보수정권 같으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언론을 장악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든지, 정부에 지극히 맞서는 집단에 물대포라도 쏠 사건을 이 정부는 전혀 물리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시끄럽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태극기가 나라의 상징이지만 일부 보수단체가 애국이란 명분으로 태극기부대를 만들어 정권을 흔들어도 정부는 물리적인 탄압이 없었다.

정부가 도가 지나친 반대 세력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점잖아서 무능하다는 소리까지 들어왔다. 이 정부가 도가 지나친 반대 세력에 잠잖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인권신장을 취지로 만든 ‘민주주의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창업 맴버이고, 지금 문재인 대통령, 경관(京官)인 박원순 서울 시장, 인구가 가장 많은 경기도 이재명 지사 모두 민변 출신이다. 그래서 이 정부가 더욱 점잖다.

그렇기는 하지만 한편 정권이란 힘이다. 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힘을 발휘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힘을 전혀 쓰지 않고 저토록 점잖게 대하면 앞으로 극단적인 반대 세력들을 어떻게 이겨내려고 저럴까? 하는 의문을 수없이 해왔다.

아무리 자유민주주의라 하지만 무슨 정당들이 그토록 많은지 정당투표용지가 48센티이고 비례정당이 35곳이 기재되어 있다. “키 작은 사람은 감당키 버거울 것”이란 발언을 해 여론의 물매를 맞아 이미지에 손상을 입은 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말처럼 선거민주주의 이래 투표용지가 가장 길었다. 35곳 정당 중에 들어본 정당은 거푸 대여섯 곳 넘지 않고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정당들이 선거를 앞두고 임시 창당한 것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유민주주의라도 거를 것은 거르고 국민들의 눈 높이에 맞는 정당을 투표용지에 올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닌가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그런 작업은 전혀 없었다. 아니 그런 작업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만18세부터 전체국민에게 매달 150만원 준다고 하고 코로나환자는 1억씩 준다는 정당을 누가 믿을 것인가? 그러나 전혀 말이 안 되는 이런 황당무계한 장당조차 이름을 올렸으니 투표용지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선거를 앞두고 공영방송인 KBS선거방송 타임에 기독교당 후보인 탈북자 여성이 출연하여 정권을 함부로 매도하고 구속된 전광훈 목사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목소리를 함부로 발설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 조선족 후보가 그 탈북여성처럼 공영방송에 출연하여 함부로 정권을 매도하고 구속된 목사를 찬양한다면 한국사회의 반응이 어떨까? 그 결과는 뻔하다. 정신병 취급을 받지 않으면 당장 추방하라고 한바탕 난리일 것이다. 여기서 탈북자와 조선족을 비교하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어떻게 ‘굴러온 돌’이 대한민국의 은혜에 대해 ‘원수’로 갚을 수 있는가는 것이다.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모두 대한민국 정부다. 탈북자는 대한민국 정부의 혜택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재 무슨 정부든 간에 정부를 매도하는 행위는 어쩐지 용납이 가지 않는다.

또 국민들이 아파하는 세월호 사건을 막말로 대한다든가, 5.18광주항쟁을 폄하한다든가, 대통령을 너무 막말로 공격한다든가 하는 정치인이 보수진영에 많아서 다수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어왔다.

어중이떠중이 정당들,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애국당, 기독교당이라 불리는 극단보수단체, 막말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 못하는 막말 정치인들은 모두 이번 총선에서 궤멸 당했다. 만약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하여 제거하려고 한다면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고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다.

이번 총선은 정부의 공권력이 아닌 국민의 한 표 한 표로서 이들 세력들을 말끔하게 정리해버렸던 것이다. 만약 정부의 힘으로 탄압한다면 반발이 엄청 셀 것이지만 국민의 표로서 심판 받으니 할 말을 잃고 조용히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1인1표의 정치의 본질이자 기본 정신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표현을 빌자면 이것이 바로 ‘시민적인 역량강화’ 정치시스템이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5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는 국가적인 방역시스템도 없었고 마스크도 없는 상황에서 교회에 모여 예배를 계속 강행한 결과 감염이 더욱 심각했던 것이다. 이렇듯 큰 전염병을 겪고 나서 생각 없이 감성적으로만 믿어왔던 신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고 따라서 르네상스의 바람을 일으켰던 것이다.

한국도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생겨났다. 우선 정부의 대응에 국민이 이번처럼 신뢰를 가져본 적이 없다. 시민의식이 이번처럼 강화된 적이 없다. 시민의식 강화라는 이 훈풍은 매우 힘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치르게 되는 21대 총선까지 이어져서 또 한 번 지구촌을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은 오는 11월에 대선이 있다. 은근히 한국 총선을 지켜봤다. 결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나서 아주 성공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치른 한국총선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것에 나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번 총선을 통해 정부의 공권력이 아닌 시민의 역량으로 부정세력을 정화하는 정치시스템에 매우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싶다. 더불어 이번 총선을 통해 한국사회는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것이고 나라가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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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룡 칼럼] 코로나19와 21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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