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011년 중국의 첫 항공모함이 건조대에서 출해, 성공적으로항행 시험 진행했다.
2012년 9월 25일, <요녕 함(辽宁舰)>으로 명명된 중국의 첫 항공모함이 정식으로 해군에 교부, 항공모함이 없는 중국해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2017년 12월 17일, 중앙군위의 비준을 거쳐 중국의 첫 국산항공모함이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산동함(山东舰)>으로 명명, 해남성 삼아(三亚)에 있는 모 군항에서 해군에 교부되었으며 자국산 항공모함이 없던 역사에 커다란 종지부를 찍었다.
중국에 있어서 항공모함의 꿈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1928년부터 항공모함의 건조를 계획하고 있었으니 거의 1세기 전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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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녕함.ⓒ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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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전쟁이 승리하자 진소관은 웅심 가득히 항공모함의 건조에 투신할 준비를 하였다. 헌데 그 시각, 중국의 대지에는 국공내전의 어두운 구름이 두껍게 내리 드리워졌다. 그 시기 장개석의 머릿속에는 오직 어떻게 하면 공산당을 숙청하고 나라 전체를 자기의 손아귀에 넣는가 하는 것뿐이었으며 해군건설 같은 건 완전히 머릿속에서 포기한 상태였다.
1946년 6월, 장개석 군대가 모택동이 영도하고 있는 공산당의 해방구로 진공을 개시함에 따라 중국에서는 전면적인 국공내전이 발발했고 국민당 해군 역시 그 내전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전 초기 국민당은 이른바 전국의 각 전장에서 <승승장구>했다. 이러자 내전을 우려했던 진소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속타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국민당이 승리하여 전국이 일원화의 계획 권에 들면 항공모함의 건조도 더욱 순리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쟁의 대세는 장개석과 진소관이 바라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이 됐다. 공산당의 유백승과 등소평이 이끄는 유-등 대군이 대별산으로 진군함에 따라 장개석은 해방구에 대한 전면 진공을 중점진공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고 임표의 동북인민해방군이 요심 전역에서 대승하여 전반 동북을 적색화시키자 진소관은 이른바 장개석에 대한 환상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요심전역에 이은 회해 전역과 평진 전역에서도 국민당 군이 괴멸에 가깝도록 얻어터지자 진소관은 자기의 <항공모함의 꿈>을 기본상 포기하였다.
1949년 11월, 대륙에서 패한 국민당 군을 따라 대만으로 떠나는 진소관은 일종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환멸에 싸여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여태껏 충성을 다하며 장개석을 믿고 따랐던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고통이었다.
이것으로 진소관과 국민당의 <항공모함의 꿈>은 국민당 군의 전면 패전으로 한 단락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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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 공화국이 창립된 후 얼마 안 되어 모택동은 높이 서서 멀리 보는 안광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반드시 조선공업을 크게 벌여 대량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며 ‘해상철길’도 구축하여 강대한 해상 전투역량을 건설해야 한다.”
모택동의 이 말에서 당시의 정무총리 주은래는 인차 항공모함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한다.
1973년 10월 25일, 외국손님을 회견할 때 주은래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었다.
“우리 중국의 남사군도와 서사군도가 남부 베트남이 점령하고 있다. 우리한테 항공모함이 없으니 우리의 해군들이 더 이상 총칼을 갖고 결사전을 벌일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한평생 군사와 정치를 해왔으나 오늘까지도 우리 중국의 항공모함을 보지 못했다. 중국산 항공모함을 볼 수 없다는 건 그야말로 평생의 유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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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기 이래 중국해군 역대의 지도군인들은 자국산 항공모함의 발전을 두고 크나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초대 중국해군 사령원이었던 소경광(萧劲光) 대장은 일찍 자기 기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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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해군은 항공모함을 수요한다. 한 함대가 먼 바다에서 활동할 때 항공모함이 없으면 곧 제공권을 잃게 된다. 제공권이 없으면 곧 먼 바다 작전의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또한 해군 사령원을 맡은 적이 있었던 전 중국 군사위원회 부주석 유화청 상장 역시 진작 항공모함에 대해 그 욕망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그는 수차 “만약 해군에 항공모함이 있다면 작전 질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 전 방위적인 작전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보며 군대의 위력과 국가의 위력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0연대부터 중국인민 해방군은 항공모함에 대한 연구를 시작, 항공모함에 대한 의식이 대대적으로 높아졌다. 당시 중국은 이미 유엔에서의 합법적 지위를 회복했고 또한 유엔의 5개 이사국의 하나로 되었다. 헌데 유엔의 5개 이사국 중 유독 중국만이 항공모함이 없었다. 이는 대국으로서 또한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중국으로 볼 때 일종 커다란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중국 외 4개의 이사국들은 모두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중 <항공모함 대국>인 미국은 이미 11척의 항공모함을 갖고 있었다. 이는 세계 항공모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었다. 이 외 구소련은 배수량이 6.75톤에 달하는 대형 항공모함을 보유, 영국은 2척의 <엘리자베스 여왕>호 급의 신 일대 항공모함 건조를 계획하고 있었으며 프랑스 역시 배수량 4만 톤에 달하는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호 중형 핵 동력 항공모함을 갖고 있었다. 또한 중 소 국가 역시 분분히 구매 하거나 자체로 항공모함 건조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 중 중국 주변의 인도는 견정 불이하게 <3척의 항공모함 전략>을 관철, 2척을 구매와 개량 외 자체로 국산인 <바이크란트(Vikrant)>호를 건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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