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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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누구도 거들떠보지않던 구두닦이가 일약 세계기네스의 인증을 받은 기인이 되었다면 누가 믿을까? 허나 30여년을 하루와 같이 통역봉사를 해오면서 놀라운 기적을 창조한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통역기인으로 이름난 이해영 선생(67). 일전 기자는 종로의 한 아늑한 빌딩 커피숍에서 그를 만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30년전 미국의 한인들 축제 통역봉사 계기가 되어
 
“1956년에 한국은행 부지점장으로 있던 아버지가 일본에 발령이 되면서 저도 일본에 가게 되었는데 결국 일본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였고 7년동안 열심히 공부해 일어와 독일어를 괜찮은 수준으로 장악하였습니다. 65년도엔는 한국에 돌아와 단국대학에 입학하였고 74년도에 영어를 더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갔지요.”
 
장기간 통역봉사를 하면서 연마한 자부심에서일까, 거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자신의 지나간 경력을 말하는 이해영 선생의 목소리는 나이답지않게 창창했다. 그는 미국의 어느 한 한인들 축제에 통역을 해 달라는 초청이 있어 가게 되었느데 그날 미국의 상·하원 의원 및 주지사들의 통역을 서 처음 영어실력을 인정받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1988년 서울올림픽때 한국관광공사의 추천을 받아 정식 통역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그후 이 선생은 2002한·일월드컵, 대전 엑스포, 이천 도자기 축제, 세계태권도 대회, 베이징 올림픽대회 등 굵직한 행사에 통역봉사자로 나서 활약하였으며, 결국 대통령 표창장과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장까지 받는 영광을 안게되었다.
 
비록 현재는 세계의 인증을 받는 통역기인으로 되었지만 그는 한때 미국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화장실 청소, 잔디깎는 일, 지어 구두닦는 일까지도 마다하지않았던 고달픈 인생경력에 대해 술회하기도 하였다.  
 
30여년간 3만여시간의 통역봉사 기록 보유
 
이해영 선생과 담화를 나누면서 가장 궁금한 점이 있었다. 자원 봉사자도 먹구 살아야하는데 수입이 없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한 이해영 선생의 답복은 자원봉사자라 할때 그어떤 수입도 있으면 안된다는것이였다. 단지 국가에서 주는 1만5000원이라는 실비라는게 있는데 돈이 적기에 리무진도 못탄다고 했다. 때로는 식사비로 일당 7000원 줄때가 있으나 사실 이 돈으로는 하루 3끼를 먹기에는 역부족이라 했다. 이 선생은 가정의 생계는 주로 부인이 하고 있어 눈물겹도록 고마울뿐이라고 했다.
 
요해한데 의하면 이해영 선생은 30여년간 통역봉사에 종사한 시간이 3만여시간에 달한다.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평균 하루에 3시간 이상 봉사한 셈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여러 재외공관과 해당부문 및 기네스사업본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공식 인정 되었는데 그 조사 과정이 무려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한다. 이로하여 이선생은 동시통역봉사자로 세계최장최고시간 기록 보유자로 된것이다.
 
“기네스의 인정을 받는다는게 어찌 쉬운일이겠습니까. 그동안 한번이라도 팁을 받았다거나 수입을 얻었다는게 드러나면 기네스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거지요.” 이해영 선생의 의미심장한 말이였다.
 
자원봉사자는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려야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것이 이해영 선생의 좌우명이었다. 이러한 생활신조는 없는 사람을 도와주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으로부터 다진것이라 그는 덧붙혔다.
 
사실 3개국 이상의 언어로 동시통역할 수 있는 수준이면 호텔업이나 다른 전문업에 종사할 경우 300 아니면 500만원 지어 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것만 사실이다. 허나 이 선생은 자신이 여직 봉사에 몰두할 수 있었던것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릴 수 있었기때문이라고 말했다. 통역봉사는 국가에서 수요하고 사회가 필요하기에 자신은 자부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통역봉사를 하면서 그가 이룩한 성과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대통령과 국가 유관부문으로부터 받은 표창장과 감사패, 훈장 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을 비롯, 2차례나 대통령 취임식에 특별 초청되어 외국 귀빈을 안내하는 영광을 지니기도 했다. 현재는 경기도자원봉사센터 홍보대사로 있으면서 매일 남양주 몽골문화촌과 홍릉, 수원 화성 등 관광지에서 외국인들을 안내하고 있다.
 
“인증”에서 “등재”를 위해 그는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요즈음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이해영 선생은 3시간 이상의 봉사 시간을 완수하느라 바쁘다. 별로 큰 행사도 없고 추운 날씨에 관광객들도 얼마 없다. 그는 매일 봉사대상을 찾는라고 전화 20여통씩 건다고 했다. 어느 곳이든 단 1명의 외국인이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곧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달려간다고 했다. 성수기에는 눈코뜰새 없이 다망하여 끼니를 떼울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한다.
 
이에따라 그의 봉사 기록과 시간은 매일 누적된다. 날마다 새로운 기록이 갱신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세계기네스의 인증이지 등재는 아닙니다. 등재를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합니다. 저는 평생에 반드시 통역봉사분야의 기네스기록을 창조할것입니다. ‘인증’에서‘등재’로 바뀔날이 반드시 올것입니다.”
 
이해영 선생의 확신성 있는 다짐이다. 그는 아직 8∼10년은 문제없다면서 건강이 허락될까지 열심히 뛸것이라 말했다.
 
 /길림신문해외판 전춘봉 기자
quanchunfeng@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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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한국인]통역봉사 30년,기네스 인증 받은 기인 이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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