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 김철균


dspdaily_com_20140408_211236.jpg사람의 취미생활이란 처음부터 재미가 있어 목적성이 있게 하는 것이 아주 적겠다는   생각이  갑작스레 든다. 특히 나의 경우가 그렇다는 생각이다.


올해 내 나이 막 세면 58살이 된다. 이렇다면 나이가 많을까? 하긴 많은 사람에 비하면 적을 것이고 적은사람에 비하면 많을 것이고 그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다.


한가지 분명 밝힐 것은 나이가 이 정도에 이르게 됨에 따라 동년배들에 비해 나이만큼 나의 취미생활도 몇가지 더 된다고 자랑하고 싶기도 하다. “고추장 맛보기”라고나 할까? 나의 취미생활을 보면 “풍부하다”고 하기까지엔 미치기 어려울 것이나 여하튼 여러 가지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선 사내로 생겨서 앞치마를 두르기 좋아한다. 여인들 처럼 주방일을 하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니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할 때가 많으며 또 하다 보니 재간도 어느 정도 늘기도 했다. 다음 나는 동관악기 트럼베트(小號)도 어느 정도 불 줄 안다. 단독으로 불 줄 알고 제대로 연주할 수있는 곡이 수십 가지가 되니 불 줄 안다고 해도 될 것이며 또 “콩나물”을 잔뜩 그린 악보를 볼 줄 아니 남한테 근사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나이 50살을 넘기면서 나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던 일, 즉 페물로 공예품(일명 : 소제작)이란 것을 만드는 취미까지 갖게 되였다. 왜서인가구? 모두가 그렇게 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외 나는 어릴적 부터 그림 그리기에 취미가 있었으며 또 나 자신이 기자이고 작가이니 글쓰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두말이면 잔소리 아닐까?  아니 기자는 나의 직업이니 싫어도 해야 하는 “밥줄”이니 거기에 뭐 취미고 뭐고 이름 붙일 것이 못된다.


이러고 보니 아마 일반인들한테 있는 취미생활 중 머리깎는 재간과 자동차를 모는 재간외엔 모르는 것이 별반 없는 것 같다. 참, 다른 건 몰라도 자동차몰 줄은 알았어야 하는 건데…

……

내가 이렇듯 여러 가지 취미생활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마 진짜 머리가 좋고 손재간도 있는줄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그렇고 또 반면으로 말하면 내가 남이 하는 노릇이면 다해보고 싶어하는 이른바 “다욕한 인간”으로 볼지도 모르겠다. 둘 다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취미생활 중 글쓰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외에는 그 거개가 생활의 환경에 의해 그렇고 그렇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트럼베트를 배우게 된 데는 아래와 같은 사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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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소학교시절에 나는 학교예술클럽에서 무용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초중에 올라와서도 자연히 학교예술단체의 무용대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소학교시절까지만도 키가 썩썩 잘 크기만 하던 내가 초중부터는 유전요소 때문에서인지 키가 그냥 고 모양새였다. 초중 2학년이 되자 무용대의 여자애들보다도 주먹 하나는 더 작은 키가 됐다. 그러니더는 무용대에서 더는 춤을 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술대에서 나갈 수 없어 차례진 것이 그래도 배우기쉽다는 동관악기인 트럼베트(초중 2학년이 되어 바이올린이나 손풍금같은 악기를 배우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음)였다. 하지만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온 동네가 손가락질을 하며 욕할 정도로 요란스레 트럼베트를 불어대면서 연습했기에 얼마 안 있어 선전대 악기조의 2번 트럼베트 리스트로 될 수 있었다.


다음 요리만들기 취미 역시 다음과 같은 에피소트가 있었다. 그것은 1991년 당시 내가 선원이 되어 한국선박에 승선했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원래 갑판부 말단부원이었는데 어느날 주방에서 싸롱뽀이로 근무하던 이상 친구(역시 중국선원임)가 “나이가 많아 갖고 주방에서 심부름같은 일을 도무지못하겠노라”고 한사코 나눕자 선장은 키가 작고 나이도 그닥 많지 않은 나한테 싸롱뽀이직을 마구 떠맡기는 것이었다.당시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또한 갑판부 작업은 시간은 짧았지만 체력적 요구가 몹시 높았기에 나처럼 왜소한 체질에는 맞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다면 짜증 나고 시간도 지루하지만 그래도 나같은 놈이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주방근무인 것 같았다.


한편 나는 질긴 놈이었다. 좋게 말하면 뭐나 한다고 하면 최선을 다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그래서일가 나는 싸롱뽀이직 6개월만에 귀국한 한국주방장 후임으로 주방장직에 진급했고 기타 중국선원들보다 보너스 100달러 더 받는 선원이 됐다. 그랬다. 우리 선박에서는 주방장, 갑판장 그리고 조기장 이 3명은 동급이었다.   


그 외 나의 취미생활을 말하자면 그림 그리기, 퀴즈문제만들기와 그 것을 풀기, 또한 바구니 엮기와 물고기 그물 뜨기 등으로 여러 가지이지만 그 것을 구구히 다 소개할 수가 없다.


단, 내 나이 50살이 넘어 배운 취미 페물로 공예품 만들기는 꼭 소개해야 할 것 같다.


나는 42살에 늦동이 딸을 봤다. 아들인 큰 애와 15살 차이니까 늦동이라도 한참은 늦동인 셈이다. 그러니 그 딸이 소학교에 붙게 되니 내 나이가 50살이 되었다. 그런데 학교에 붙으니 학교에서는 매 학기마다 애들한테 소제작이란 것을 만들어 오라고 강요해댔다. 그런데 이걸 애들이 만든다구?! 천만에다. 다 학부모들이 만들어 갖고 학교에 보내는 것에 불과했다. 처음에나는 딸애가 그것을 만들도록 여러모로 유도했다. 하지만 딸애는 공부는 매우 잘했으나 그런 것을 만드는데는 아주 둔재였다. 매 학기마다 그 것을 바치지 못해 선생님한테서 꾸지람을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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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 본 딸, 나는 딸애가 선생님 한테서 꾸지람을 듣는 것이 기분 나빴다. 그래서 그런 소제작을 잘한다는 학부모한테 만들어 달라고 몇번 청들었다가번마다 거절당하자 나한테는 일종 오기가 생겼다. 바로 내가 직접 만들어 본다는 것, 그렇게 무작정 마음먹고 달라붙자 못할 것도 없었다. 아니, 내가 정성들여 만들어 바치니 딸애가 내놓은 소제작 “민속촌의 물레방아”가 뭐 동북 3성 소제작 콩크르에서 3등상을 받았다나?…


현재 그 딸애는 초중 3학년, 이제와서 내가 딸애한테 더는 그런 소제작을 만들어 “제공”할 필요가 없게 됐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씩 무료하거나 TV를 볼 때면 그런 것을 만든다. 만들어서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친구들한테나 기타 교류가 잦은 지도일군들한테 선물로 주기도 한다. 그러면 그런 분들은 다른 그 어떤 예물을 받기보다 더 좋아한다.


또한 이렇게 머리도 쉬울 겸 TV시청을하면서 이런 공예품을 만들다 보면 골초였던 내가 담배를 적게 피우게 된다. 아니, 그 것을 만들 때면 거의 금연시간으로 된다. 그리고 이런 것을 만들면서 머리를 쓰면 치매에 적게 걸린다나? 여하튼 건강에도 좋고 무료함도 달래고 특히 적은 원가(비행기 하나 제작하는데 5위안도 들지 않음)로 남한테 선물해 큰 보람을 느끼니 어찌보면 일거삼득인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나한테 이렇듯 여러 가지 취미생활이 있지만 내가 A급으로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요리 만들기에서도 그렇고, 악기를 다룸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또한 그림 그리기와 공예품 만들기 등등을 아무리 따져 봐도 내가 어느 것을 내놓고 수준급이라고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생활에 재미를 붙이다 보면 내가 만든 것이 아무리 하찮아도 보람이 있게 되며 또한 그 것이 국가급상 같은 것을 받은 것보다 더 기쁠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총적으로 뭘 바라고 하는 취미생활이 아니니까 그냥 들놀이에 가서는 트럼베트를 불고, 회식장소에 가서는 사시미나 소고기 꽃등심 불고기나 만들어 선보이고, 또 적적할 때에는 TV를 보면서 공예품이나 말들고 하는 걸로 만족이다. 그렇다. 그냥 재미이니까. 또한 취미생활이니까.

 

필자가 만든 부분적 공예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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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 그리고 사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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