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길림성 훈춘(珲春). 중국·러시아·북한이 맞닿는 접경지역의 인구 20여만 명 작은 도시지만, 국경을 오가는 물류의 규모는 도시의 크기를 뛰어넘는다. 러시아산 수산물을 실은 차량이 들어오는가 하면 중국산 자동차와 전자제품, 생활용품은 반대 방향으로 국경을 넘는다. 한때 ‘변방’으로 불리던 도시가 동북아 물류의 길목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훈춘의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러시아산 킹크랩이다. 러시아 극동 해역에서 잡힌 킹크랩은 자루비노항 등을 거쳐 활어 운송차량에 실린 뒤 훈춘 통상구로 들어온다. 여기서 다시 중국 각지의 수산시장과 식당으로 운송된다.
현지 발표 자료에 따르면 훈춘을 통해 연간 150만 마리 이상의 킹크랩이 수입되며 거래액은 33억 위안을 웃돈다. 중국 시장에서 유통되는 러시아산 킹크랩 가운데 80% 이상이 훈춘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킹크랩의 도시’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활수산물 물류의 핵심은 신선도를 지키기 위한 시간 단축이다. 훈춘 통상구에는 신선 수산물을 위한 별도 통관체계가 구축돼 있으며 세관은 24시간 검사체계를 운영한다. 러시아 해역에서 포획된 킹크랩이 운송과 통관을 거쳐 중국 유통망에 진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이르면 약 14시간까지 단축됐다.
그러나 최근 훈춘의 변화는 킹크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국경을 넘는 상품과 물류 방식 자체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다. 2018년 4300만 위안에 불과했던 훈춘의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 규모는 2025년 141억 위안으로 확대됐다. 올해 상반기에는 이미 100억 위안을 넘어 전년 동기 대비 106.9% 증가했다. 중국산 가구와 3C 전자제품, 생활용품 등이 훈춘을 거쳐 러시아로 향하고 일부 물량은 유럽 시장까지 연결되고 있다.
자동차도 새로운 주력 수출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1분기 훈춘을 통한 중국산 완성차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1.2% 급증했다. 같은 기간 통상구 화물 처리량은 13.0%, 출입국 인원은 56.3%, 출입국 차량은 43.2% 늘었다. 훈춘 전체 수출입액 역시 98억 위안으로 전년 동기보다 110.8% 증가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30년 넘게 이어진 개방 인프라 확충이 있다. 훈춘은 1992년 중국 국무원이 대외개방 변경도시로 지정한 이후 변경경제합작구와 수출가공구, 종합보세구,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 종합시험구 등 각종 개방 플랫폼을 구축해왔다. 최근에는 중러 도로 국제통상구 시설 개선과 철도·도로 복합운송망 확충도 추진되고 있다.
훈춘의 전략적 가치는 지도를 펼쳐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중국 영토상 바다와 직접 맞닿아 있지는 않지만 러시아 극동 항만을 활용하면 동해로 연결된다. 서쪽으로는 중국 동북지역의 철도·도로망, 동쪽으로는 러시아 연해주와 항만이 이어지고 남쪽에는 북한이 자리한다. 중국 내륙과 러시아 극동, 동해 항로를 연결할 수 있는 독특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셈이다.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킹크랩과 국경 밖으로 향하는 중국산 자동차는 오늘날 훈춘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신선식품이 중국 시장으로 들어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국산 공산품이 러시아와 유럽을 향한다.
과거에는 국경이 훈춘의 지리적 한계였다면 이제는 오히려 도시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킹크랩으로 이름을 알린 작은 변경도시가 중국 동북지역과 러시아 극동을 연결하는 물류 거점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동북아 교역망에서 훈춘이 차지하는 비중도 한층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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