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해 설날은 춥지 않았다
■ 김철균
그해 설날은 춥지 않았다. 지구촌 서반구에 위치해 있는 스페인땅, 카나리아군도의 라스팔마스, 그 땅은 세밑이 다가 옴에도 대서양 난류의 영향을 받아 따스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또한 12월 25일 크르스마스 명절의 뒤를 이어 인차 새해를 맞는 라스팔마스는 짙은 명절의 분위기속에 휩싸여 있었다. 길가의 화단에는 이름모를 갖가지 화초들이 활짝 피어 있었고 명절옷차림을 현란하게 한 신사숙녀들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 어리어 있었으며 싼타까타리나 해변가의 해수욕장도 각양각색의 피부를 가진 남녀들로 붐비였었다.
마침 아프리카의 앙골라 해상에서 냉동물고기를 싣고온 우리네 선박 “코리안스타”호도 라스팔마스 빤따랑부두에 정박해 있었다. 그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4명 선원외 다른 사람은 단 한명도 구경할 수 바다에서 설명절을 쇤다면 우리 모두의 심정이 과연 어떻겠가 하는 것은 누구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여자가 없는 한바다에서 설명절을 쇤다고 할 때, 이러한 단조롭고 적적함은 한국선원들을 놓고 말하면 일종 재수 없는 일이요. 곤혹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입항해서 육지에 올라 설명절을 쇤다는 것, 그것은 당시 본선의 주방장이었던 나한테 있어서도 해방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모든 여건이 허락치 않는 해상에서 설을 쇤다면 선원 24명이 먹고 마실 음식은 주방장인 내가 손수 도맡아 장만해야 했으니 말이다. 또한 평소에도 곁에 여자가 없으면 선원들은 그 쌓였던 스트레스를 몽땅 나한테 음식투정을 하는 것으로 풀군 했는데 더군다나 설명절 때 집생각과 여자생각에 그들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보나마나 실컷 일하고도 나중에 욕보는건 나뿐이라는 것이 뻔했다.
한편 본선 선원들의 편리를 위하여 라스팔마스 주재 한국 선일해운의 이탈만 대리점에서는 우리한테 “호텔강촌” 식당과 호텔방을 미리 예약해주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선박에서 고독하고 짜증난 생활을 하였으니 하루밤이나마 편하게 즐기라는 특별혜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선박의 경비를 부두당직일군들한테 맡긴 우리는 봉고차에 나누어 앉아 “호텔강촌”으로 향했다.
“호텔강촌”에 도착하자 진작 대기하고 있던 그곳의 이횡권 사장님과 유혁선 여사 그리고 접대원아가씨들이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었다. 헌데 선박근무시 집행되어 오던 그 분명한 계급차이, 그것이 육지의 식당에서까지 계속될줄이야. 아니, 같은 계급장인 조기장과 갑판장 그리고 주방장도 한국선원과 중국선원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는바 중국선원이며 중방장인 나도 한국선원인 조기장, 갑판장과 동석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우리 중국 조선족선원 4명은 당연히 계급차이를 논하지 않고 함께 앉게 됐다.
식당안의 한구석만 차지한 우리 4명은 설날이란 즐거움을 별로 느낄 수가 없었다. 부모처자에 대한 그리움, 인간보다 금전과 계급과 인종 및 국적을 더 봐주는 한국인세상, 우리는 터져 나오는 울화를 가까스로 참으며 애꿎은 술만을 들이켰다. 한잔, 두잔, 또 한잔… 나중에 우리 4명은 제각각 “진로”표 소주를 한병씩 거꾸로 추켜들고 입안에 쏟아넣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내리는 부두가에 이슬맺힌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 밤도…
어느새 한국선원들은 가라오케반주기를 이용하여 오락판을 벌였다. 허리를 비꼬며 희스테리처럼 괴상한 소리를 질러대는 선원들, 순간 나는 있는체하고 우쭐거리지만 허무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내심세계를 얼마든지 엿볼 수가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기껏 흔들어대고 나니 지쳤는지 그제야 그중 누군가 우리 쪽을 보더니 무작정 나의 손목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나는 워낙 노래를 부르고 싶은 생각도 없었거니와 그닥 노래를 잘 부르는 축도 못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꼭 노래를 불러야 하겠고 또한 부를바엔 그들이 부르는 노래보다 더 차원이 높는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음악반주도, 음향시설도 이용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부른 그 노래, 한국선원들은 물론 중국조선족선원들까지도 눈이 휘둥그래졌다.
“주방장, 이는 아주 유명한 가곡으로 웬간한 가수들도 부르기 힘들어 하는데 주방장 노래실력이 진짜 넘버원인거얘요.”
어느새 다가와서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통신장 이덕수씨, 이에 나는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는듯 손을 홱 내젓고는 벽에 걸려있는 동관악기 트럼벳을 갖다가는 세계명곡 “拉德斯基进行曲”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는 선원들은 물론 주방인원들까지 나와 선율에 맞춰 박수로 호응하는 것이었다…
나의 연주가 끝나자 역시 통신장 이덕수씨가 다가와 박수를 치면서 한곡 더 연주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술을 많이 마셔 더는 트럼벳을 불기 힘들다는 이유로 깍듯이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아예 식당홀을 나와버렸다.
이렇게 한국인 선원들한테 본때를 보이고 밖으로 나왔으나 어딘가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설날이어서 더욱 그랬다.
내가 밖으로 나오자 기타 중국 조선족선원 3명도 따라 나왔다. 그들도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기 멋적었던 모양이었다.
이때 누군가 마침 “호텔강촌”에서 멀지 않은 싼타까타리나 공원 노천무대에서 설맞이공연이 한창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리로 욱 ㅡ 하고 몰려갔다.
진작 시작한 공연은 독특한 스페인민족의 노래와 춤으로 클라이막스에 치달아올랐다. 남성독창 “베사메무쵸”, 민속춤 “스페인세뇨리따(아가씨)” 등 종목들은 그 예술적 감화력과 설명절의 분위기로 우리를 황홀경으로 이끌어갔으며 식당에서 있었던 언짢았던 감정도 일시적이나마 잊을 수 있게 하였다.
이때 불현듯 그렇게 도 익숙했던 중국말이 이내 등뒤로부터 들려왔다. 다시 귀를 기울렸으나 그것은 중국말이 분명했다.
이에 돌아서서 그 말소리 주인공들과 마주선 나.
“아, 닌호우? 워예쓰 쭝궈런, 쭝궈더 초센주(啊, 您好?. 我也是中国人. 中国的朝鲜族).”
뒤이어 우리는 대뚬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알고 보니 그들 역시 중국선박 “안월강 2호”의 선원들이었는데 본부의 지시에 의해 라스팔마스에서 설명절을 쇤다는 것이었다.
미구하여 그들은 우리의 손목을 잡아끌면서 자기네 선박으로 돌아가 설날 밤을 함께 보내자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그저 스쳐지날 수도 있는 사람들, 하지만 머나먼 해외에서 그것도 설날에 만나고 보니 우리들 서로가 고향의 친지를 만난 것처럼 그토록 반가웠다. 순간 우리는 “호텔강촌”으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어졌다. 호화로운 호텔방도, 요염한 아가씨들도 역겨워났다. 해외에서의 또 하나의 중국의 세계 ㅡ 우리는 그 세계로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다.
중국선박 “안월강 2호”에 도착하자 우리는 곧바로 선내음식청에 안내되었다. 벽에 드리워져 있는 오성홍기 그리고 그 양옆에 걸려있는 만리장성 그림과 계림의 산수화, 아 그것은 정녕 우리가 오매에도 그리던 중국땅이나 다름이 없었다.
뒤이어 음식들이 나왔고 “안월강 2호”의 당서기와 선장이 직접 세계명주인 모태주병을 들고 나와 우리한테 한잔씩 부어주는 것이었다. 한없이 도량이 넓은 중국인들의 관심, 그 순간 우리의 눈앞은 이로하여 또다시 흐려졌다. 해외에서의 나날, 인간으로선느 최하층 대우를 받던 우리, 조금만 잘못해도 독방이나 냉장창고같은 곳에 갇히어 기합을 당해야만 했던 우리 중국 조선족로무자들, 중국사회가 좋다는것은 바로 우리처럼 중국땅을 떠나봤던 사람들만이 가장 잘 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때 누군가 흥분에 젖어 선창을 뗐다.
오성홍기 휘날리고 승리노래 우렁차다/ 노래하자 사랑하는 조국 부강에로 달리는 조국
그러자 그것은 그 누구의 제의와 지휘도 없이 합창으로 번져졌다. 그 속에는 “안월강 2호”의 당서기와 선장도 함께 끼어 있었다.
산을 넘고 들을 지나 황하장강을 뛰어 넘어/ 우리 인민은 근로용감하고 새 일대 씩씩하게 자라난다…
설날 저녁의 그 노래, 그 노래소리는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되어 산설고 물선 대서양바다의 군도인 라스팔마스항 상공에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그렇다. 1992년의 첫 날, 그 해의 설날은 춥지 않았다.
스페인 라스팔마스 무에그랑데 해변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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