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 (28)
■ 김철균
5
어느 덧 3년이란 문영이도 학업을 원만히 마치고 위생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3년이란 세월은 빨리도 흘렀다. 그 3년간 문영이는 자기한테 친 어머니다운 사랑을 쏟은 순자어머니가 있었기에 보다 쉽게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 문영이한테 있어서 하많은 사연을 남기고 떠나게 된 연변위생학교었고 “북해상점”이었으며 또한 조선족어머니었다.
문영의 졸업식을 앞두고 순자는 일부러 상점의 문을 닫고는 집에서 셋째 며느리가 갖고 온 “베개쌀(시집올 때 베개속에 넣어 갖고 오는 쌀임)”을 가루내어 골무떡을 하였다.
그 날 순자네 집으로 찾아온 학생은 문영이 외 몇명 더 있었다. 기실 순자의 사랑을 받은 학생은 문영이 한명뿐이 아니었다. 화전현에서 온 정수금, 장춘시에서 온 중경림, 훈춘시에서 온 장려 등 무려 6명이었다. 이는 순자의 자식남매 6명과 똑 같은 수였으며 모두가 정도부동하게 순자의 “손등을 씻어 먹으며 학업을 마친 학생들”이었다.
그들 6명이 순자와 인연을 맺고 내왕하며 민족단결의 꽃을 활짝 꽃피워온 사연을 말할라치면 이루다 말할 수가 없다. 이 책에서 문영이 한사람만을 선택해서 주로 취급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그것인즉 문영이가 가장 특수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또한 가장 긴 세월동안 순자와의 인연을 지속하면서 민족단결의 꽃을 피워왔기 때문임을 미리 설명하는 바이다
삼복더위를 하느라고 그러는지 그날은 무척 더웠다. 집안에 그냥 앉아 부채질을 해도 땀이 흐를지경인데 순자는 가마솥에 떡을 쪄내느라고 불까지 지폈다. 거기에 그 17평방미터밖에 되지 않는 방안에 사람이 빼곡히 앉다보니 집안은 찜통을 방불케 했다. 집안 온도는 무려 36도까지 되었다. 그러니 부뚜막을 오르내리며 떡을 하는 순자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물처름 흘러내렸고 잔등 또한 땀으로 푹 젖어 쥐어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지경이었다.
바로 이 때 순자의 큰 딸 영순이가 집안에 들어섰다. 영순이는 이 광경을 보고 어머니를 나무랐다.
“어머니, 지금 어느 철이라고 집에 불을 때고 그래요?!”
“보면 모르겠느냐. 떡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떡이야 뭐 서시장에 가서 사와도 될 걸 왜 힘들게 하느라고 그러세요?”
하긴 그 때는 이미 연길 서시장에 큰 건물이 지어졌고 그 안에서는 여러 가지 매장들이 있었으며 떡을 파는 매장만 해도 찰떡, 골무떡, 송편, 시루떡 등으로 여라문 가지나 되었다. 그닥 비싼 것도 아니고 순자가 만든 것보다 더 맛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순자의 생각은 달랐다. 서시장에 가서 누가 만든 것인지도 모를 떡을 사다가 이 6명의 한족자식들한테 맛보게 하기보다는 아무리 무덥고 고생스럽더라도 자기의 집에서 자기의 손으로 직접 떡을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6명의 한족자식들 또한 순자의 그러한 성의를 잘 알고 있엇다. 그들은 순자가 해주는 것은 단지 떡이 아닌 자기네를 아끼고 사랑하는 순자어머니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 며칠 뒤인 졸업식을 거행하던 날 저녁, 문영이와 몇몇 친구들은 또 순자가 운영하는 “북해상점”에 모여 들었다..
한편 그날 저녁 모인 학생들 중 정수금과 중경림 등은 이튿날 아침기차로 연길을 떠나야 할 몸들이었다.
순자는 그 애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손수 아침밥이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었다.
상점을 돌보아야 하기에 늘 상점과 붙어있는 둘째 딸 영옥이네 집에서 자는 순자는 새벽녘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는 딸네 내외가 한창 달게 자는 때어서 눈치가 보였다. 조심스레 일어나 이부자리를 거두고 조용히 부엌에 내려섰다.
순자는 전등도 켜지 않은 채 손으로 이곳저곳 더듬으며 아침밥을 짓기 시작했다.
순자는 간밤에 미리 준비한 재료들을 갖고 국을 끓이고 반찬 몇가지를 했으며 특히 장춘과 화전 등 먼 곳으로 가게 되는 애들을 위해 도시락도 몇개 마련해 놓았다.
아침 6시쯤 되자 기숙사에서 잠을 잔 애들이 이불짐이 해지고 모여 들었다. 간밤에 아침밥만은 꼭 여기에 와서 먹어야 한다고 순자가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둘째 딸 영옥이네 내외는 한창 달게 자는 아이를 깨워가지고 자리를 비워주었다. 아침밥은 시가에 가서 먹기로 했던 것이다.
“먼길을 떠나자면 속이 든든해야 하기에 갖춘 것이 변변치 않아도 많이들 먹어라.”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 동안 어머니한테서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앞으로 어머니의 은공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애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 애들은 한결같이 순자한테 “어머니”란 칭호를 붙였다. 그만큼 그 3년동안 순자는 이 애들한테 어머니다운 정성을 쏟았고 그 애들 또한 순자를 친어머니처럼 대하면서 믿고 따랐었다.
순자는 먼저 떠나는 정수금과 중경림 등 몇몇 애들한테 도시락과 함께 부모님들한테 대접하라고 술과 사탕, 과자 따위를 짐속에 넣어 보내기도 했다. 애들이 극구 사양했으나 연변에 있는 이 조선족 어머니의 성의라며 무작정 밀어 넣었다.
먼 곳으로 떠나는 애들을 바랜 뒤 순자는 버스부에 가서 훈춘으로 가는 장려한테 돈 10위안을 손에 쥐여주며 부디 잘 살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냥 보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에 장려도 눈물을 흘렸다. 순자의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려가 버스에 올라 떠나는 것을 보고야 순자는 발길을 돌렸다. 이번에는 제일 마지막으로 떠나는 문영이를 바래기 위해 연길역으로 가야 했다. 그야말로 숨쉴 틈도 없이 팽이처럼 바삐 돌아쳐야 했다.
3선 버스에 앉아 부랴부랴 연길역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기차시간은 아직 얼마간 남아 있었다. 대합실에 들어서자 때마침 문영이가 자주 출입문쪽에 얼굴을 돌리며 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영이를 만난 뒤 순자는 마음속으로 준비했던 말이 가득했으나 눈물이 앞을 가리면서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는 떠나는 문영이도 마찬가지었다.
순자는 옷섭을 헤치고 돈 100위안을 꺼내서는 문영의 손에 말없이 쥐여주었다. 순자의 마음을 잘 아는 문영이는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해봤자 소용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도문에서 발차한 도문-장춘행 렬차가 연길역에 도착했다.
순자는 아쉬운대로 문영이와 작별해야 했다.
기차에 올라 자리를 차창쪽으로 자리를 골라잡은 문영이는 오랫동안 손을 흔들며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여러번 웨치고는 아까 순자한테서 받았던 돈을 차창밖으로 내던졌다.
100위안짜리 돈은 바람에 날리며 공교롭게도 기차바퀴밑에 떨어졌다. 순자가 렬차바퀴 밑으로 내려가 돈 100위안을 주어갖고 올라오는 순간 기차역 순라일군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아주머니,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까? 기차가 당장 떠나겠는데 기차밑으로 들어가다니 얼마나 위험합니까?”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럴 사연이 있어서요.”
순자는 머리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었다. 그러고는 부랴부랴 기차에 오르려는 열차승무원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이 돈을 7호 바곤의 이문영이란 처녀애한테 전해달라고 사정하였다. 그 승무원은 생각밖으로 순자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후에 들을라니 그 돈 100위안이 제대로 문영이한테 전달됐었다.
그날 순자는 맨 나중에야 플래홈을 빠져 나오다가 문을 지키는 일군한테 굼뜨다고 한바탕 꾸중을 들었다.
“모두들 아주머니처럼 굼뜨면 우리가 어떻게 이 일을 해요?”
이에 순자는 그 문지기 일군의 언행에 한마디 해줄가 하다가 그 생각을 도로 접고 말았다. 문영이를 떠나 보내는 날에 구태여 남과 다투고 싶지가 않았다.
“금방 돈화로 떠나는 딸을 배웅하다보니 그렇게 됐수다. 어떻게 하겠수. 미안하니 양해하우다.”
말을 남긴 순자는 무거운 다리를 끌며 막 떠나려는 3선 버스의 문을 두드려 문을 열게 했다. 헌데 3선 버스에 올라 버스표를 사자고 보니 단돈 20전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야단맞을 일이었다.
순자는 얼굴이 뜨거워나는대로 자신의 신분증을 내보이며 버스 승무원한테 사정했다. 급히 딸을 배웅하러 나오면서 깜빡 잊고 돈을 적게 갖고 나왔으니 내일 이 버스번호대로 돈을 꼭 갚겠다고 말이다. 그러자 아까 그 연길역의 문지기 일군과는 달리 3선 버스의 승무원은 아주 친절하게 자기가 대신 물어 드릴테니 근심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처녀 승무원의 소행에 순자는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하지만 20전이 적은 돈이라고 그냥 지나쳐버릴 순자가 아니었다.
이튿날 순자는 버스부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버스표값 체불금” 20전을 갚았다. 그러자 순자의 소행에 감동된 버스부 재무과의 일군은 이상스레 순자를 뜯어보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순자가 집이 신흥가두에 있고 이름이 아무개라고 알려주자 그제야 그 일군은 순자의 손을 덥썩 잡으며 반색했다.
“선생님, 저를 모르겠습니까? 선생님의 신흥소학교 보도원 선생님 사업을 할 때 제가 학생이었습니다. 영남이의 동창생이기도 하고요.”
이 역시 순자로서는 아주 뜻밖의 일이었다. 순자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 일군의 모습은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일군은 신문을 통해 선생님의 사적을 많이 읽었다면서 잔돈 20전마저 갚는 선생님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뇌봉이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순자는 여전히 그 일군이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긴 길가에서, 그 어떤 행사에서와 다른 장소에서 순자는 이렇에 남들의 인사를 받을 때가 여러 번 잘되었다.
하지만 이는 난감한 일이기도 했다. 남들은 순자를 알아보지만 순자 본인은 그들을 알아볼 수 없으니 말이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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