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마꽃, 응달에 피다
●김 혁(재중동포 소설가)
진혼곡, 진혼미사곡으로도 불린다. 옛날부터 가톨릭 교회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로 불리웠다. 17세기 트렌토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장례 예식음악으로 확정되였다. 이후 독창·합창·관현악으로 이뤄 진 대규모 연주용 작품으로 발전했다.
그후 미사 음악 쟝르는 쇠퇴했지만 진혼곡은 죽음이라는 주제의 심각성과 특유의 랑만성으로 인해 많은 작곡가들이 진혼곡을 작곡했다. 무려 620여곡의 진혼곡이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작곡되었을 정도다.
가장 오래된 진혼곡은 다성음악의 선구자로 유명한 뒤파이의 작품이다. 그후 모차르트, 베르디, 포레, 브람스, 존 루터등 음악사의 반열에 오른 유명 작곡가들이 다투어 각각의 진혼곡을 남겼다.
음악 거성 모차르트는 대규모의 관현악과 독창, 합창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걸작으로 진혼곡의 전형을 만들었다. 특히 모차르트가 진혼곡을 작곡하다 사망했기에 진혼곡 하면 모차르트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작품인 “진혼곡 d단조”의 작곡을 의뢰받은 것은 1791년 늦은 봄이였다. 어느 날 한 사내가 찾아와 모차르트에게 진혼곡 작곡을 요청했다. 백작인 그는 세상을 떠난 부인을 추도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진혼곡 작곡을 의뢰했던 것이었다.
사실 모차르트는 생애 마지막 해에 들어서면서 잔병 치레를 자주 했던 것으로 전해 진다. 진혼곡의 작곡중에 앓아 누운 모차르트는 곡 중에서도 가장 애통한 감정이 끓어오르는 “눈물의 날”의 작곡을 8마디에서 중단한채 급기야 눈을 감고 말았다.
네거리에 온통 가벼운 류행가요가 란무하는 요즘 전문가들은 “공통 관습 시대의 음악에서 현대음악으로 외연을 넓히기 위한 필청곡(必聽曲)으로 고전음악을 들어야 한다”며 그 곡목들을 추천했다. 그 중에 진혼곡도 들어 있다.
진혼곡을 듣노라면 열음(悅音)의 경지를 느끼게 되고 음악의 울림과 잠재력에 소름이 돋는것을 금할 수 없다.
나의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가 상해원동출판사에 의해 재판되였다.
출간된 지 꼭 10년만에 중판본을 펴낸 것이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나의 창작 생애에 나름 중요한 작품이다.
나의 자서전적 요소를 띄였고 우리 문단의 장편분야에서 흔치않은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했으며 또 중국조선족문화의 발상지이자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인 룡정을 무대로 했다는 의미에서 애초의 나의 창작성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시간의 검증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십여년 간 도합 여섯 부의 장편을 펴냈고 또 인물전기와 역사기행등으로 거의 한 해에 한 두부 꼴로 자칭 "중후한"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첫 장편의 습작이 내게 준 그 엑스터시의 과정을 내내 잊을 수 없다.
순수문학지인 “도라지”잡지에 1998년 경에 발표한 중편소설 “설태를 내보여라, 어제라는 거울에”를 다시 장편화 한 작품은 발표되어서 독자와 평단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제5회 연변작가협회 계약작가 선정작품으로 되였고 “도라지”문학상에 이어 “장백산”문학상과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을 거듭 수상했다.
또 이 작품에 대한 평문도 적지 않게 나와 그중 한 편은 이 작품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따냈고 한 편은 한국방송대학 평론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2012년에는 55회짜리 라디오 소설로 제작, 방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초판본이 수상자들에 대한 특혜로 출간해준 작품이기에 그 출간 수량이 극히 적어 서점가에도 오르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 들어는 보았지만 읽지는 못했다. 작가 자신에게 차려진 책자의 수는 더구나 적어 대부분 문우들에게 증정하지조차 못한 면괴스러움을 내내 안고있다.
그리하여 이번에 새롭게 중판본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현대 중국인들에게 문화대혁명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암흑기다.
부모가 자식을, 안해가 남편을, 학생이 선생을 단죄대에 올리고 주먹질하고 침을 뱉어야 했던 이념 과잉시대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혁에 아버지를 잃고 이름자조차에 그 시대의 각인을 자자(刺字)처럼 아프게 받아야했던 문혁시기 태생의 필자로서는 이 제재를 간과할 수 없었다.
물질풍요의 전성기를 누리고있는 요즘에는 어쩌구려 문혁이라는 말조차도 쉽게 꺼내지 않는다. 수 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10년간 아비지옥(阿鼻地獄), 규환지옥(叫喚地獄)의 맨 밑 바닥에 내쳐져 지옥의 불에 인두질 당하고 능모(凌侮)를 당했지만 요즘은 아무도 거기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 그 상처의 넓이와 깊이에 비해 남아 있는 기록은 우리 문단에서는 한심 할 정도로 미미하다.
흥건하던 상처의 아픔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딱지가 앉고 딱지가 떨어지고 흉터가 아물어가자 사람들은 그 상처를 잊었다. 또 하필이면 그 아픈 상처를 들쑤셔야 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허나 역사란 달력처럼 찢어 웅그려 던지면 그만인 일회용의 망각이 아니다. 그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전제이다. 우리의 현재를 규정짓고 미래와 직결 되는 그 지리멸렬한 과거에 대해 어찌 일신의 향락에 마취되여 잊을 수가 있을가?
물질의 풍요에 꺼둘리고 노곤해져 모두들은 일종의 카르텔(동일 업종의 사람들이 이윤의 증대를 노리고 자유 경쟁을 피하기 위한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되는 안일한 형태)같은 침묵과 회피의 완충지대에서 안일만을 즐기고있다. 이렇게 침중한 과거에 대한 평이와 미온적인 태도가 주는 좌시와 부재가 이 내가 펴 낼 작품이 많음에도 기어이 십 년 전 작품을 뒤적여 다시 중판본을 내는 이유이다.
첫 장편이라 설익은 작품일망정 이 작품이 시대라는 이름의 호랑이 등에 본의아니게 올라타 추썩임을 당해야만 했던 젊은 청춘들, 세상의 폭력과 반인륜적 관습, 그 형극의 틈바구니에서도 유토피아로의 열망과 생존 본능으로 몸부림 한 모든 문혁 경력자들을 위한 진혼곡으로 읽혀지기를 원한다.
- “청우재(聽雨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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