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시걱이 힘들면 외식해라”

모처럼 2주간의 년차가 주어졌을 때 나는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가사일을 후딱 해치웠다. 오래동안 여주인의 알뜰한 관심을 가져보지 못한 집안 구석구석을 털어내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했다.
낮에 마트에 가서 여유롭게 장을 봐가지고 매일 따끈한 밥상을 제시간에 차려올렸더니 남편이 “전직”가정주부가 일으킨 혁명에 적응되지 못해 한다.
내가 알고있는 한 언니는 전직가정주부이다. 그녀의 집에 요청받아 갔을 때 나는 중후하고 고급스런 느낌이 나면서도 여주인의 모던한 센스를 잃지 않은 그런 인테리어 분위기에 놀랐다. 현관복도에는 촬영을 좋아하는 그녀의 작품이 몇개 걸려있었는데 전혀 거치장스럽지 않았고 커튼은 우아하면서도 샤방샤방한 쉬폰같은 느낌이였다.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봐도 군더더기 하나 없고 모두 잘 정리된 모습이였다.
나는 집을 거두기 싫을 때면 그 언니네 집을 떠올리고 힘을 냈다. 그러나 주부들이라면 공감할법한 것이 거두기는 쉬워도 유지가 힘들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흐트러진 모습이다가 주말이 돼야 정돈되는 똑같은 레퍼토리가 일년내내 반복된다.
나는 주변의 워킹맘 몇몇의 집을 방문했다가 빈틈이 많은 청소상태에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안도의 숨을 내 쉰적이 있다. 역시 워킹맘들은 낮에는 직장일에 치대고 저녁에는 가사일을 해야 하며 그다음엔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 투잡, 쓰리잡 엄마들이라 다 이렇구나 하는 자기합리화의 구실을 찾았기 때문이다.
우리 딸내미를 유치원 입학전까지 돌봐주다가 한국으로 떠나면서 어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때시걱 하기 힘들면 외식하고 집이 어지러워져도 못본척 해라. 모든 것을 잘 하려고 하지마라. 지친다.” 그 당부는 내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장 잘 받들었던 어머니의 가르침가운데 하나였다.
건강한 자기애란 자신이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는 것이라 한다. 반듯하게 짜놓은 계획을 헝클어놓는 작탄은 꼭 어딘가에서 튀여나온다. 계획이 엉망이 되였다고 원래처럼 되돌려놓으려 애쓰거나 아예 손을 놓고 퍼더버리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일, 잘할수 있는 일만 골라서 하는 것이 방법이다. 물론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들은 능력있다는 칭찬을 듣겠지만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한것이라면 나는 싫다.
누구나 적어도 서너개의 이름표는 붙이고 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앞자리에 놓을 것이다. 만약 뭔가 밑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것은 가차없이 뒤쪽으로 밀어버릴 생각이다. 내 삶의 중심은 내가 돼야 하니까. (연변일보 리련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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