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 훈
한국 정부가 중국 단체관광객에 한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겉으로는 양국 교류 확대를 말하지만, 세부 규정은 자유여행객을 철저히 배제하고 8개 지정 여행사만 이용하도록 했다. 한마디로 관광을 ‘공공 외교’가 아닌 ‘특정 기업 수익사업’으로 보는 발상이다.
정책의 속내는 통계가 말해준다. 한국 경제 성장률은 0.2%로 주저앉았고, 면세점 매출은 30% 넘게 떨어졌다. 중국인 관광객 수는 절반으로 줄었지만, 그들의 1인당 소비액은 여전히 미국인·일본인보다 훨씬 많다. 이번 지정제는 이 소비력을 ‘관계 기업’이 독점하도록 설계된 구조다.
문제는 한국이 ‘상호주의’는커녕 오히려 역차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인에게 전면 무비자를 시행했다. 반면 한국은 자유여행객에게는 단체보다 더 비싼 비자 수수료를 매기고, 아예 무비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명분은 ‘관광 질서’지만, 속뜻은 ‘개별 손님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계산이다.
더 심각한 건 과거의 차별 관행이 그대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2017년 사드 사태 당시, 서방 관광객은 10분 만에 입국했지만 중국인은 3시간 넘게 대기해야 했다. 이번에도 제주만 무비자, 다른 지역은 승인제라는 이중 기준을 유지한다. ‘안전’이나 ‘관리’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본심은 분명하다.
강제 쇼핑과 바가지 상술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무비자를 ‘미끼’로 삼아 관광객을 지정 상권으로 몰아넣고, 정해진 금액을 쓰지 않으면 입국 자격을 취소하겠다는 협박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관광객은 손님이 아니라 ‘이동식 지갑’에 불과하다.
중국 내 관광시장은 활황이다. 하이난, 윈난, 쓰촨 등지에서 국내 소비가 폭발하고 있다. 베이징~연길 고속철은 성수기 요금이 올라가도 매진이지만, 서울행 항공권은 가격을 내려도 팔리지 않는다. 이런 흐름 속에 한국 정부가 단기 ‘APEC 특수’를 노려 단체관광객만 붙잡는다면, 그 결과가 뻔하지 않은가.
관광은 단기 매출로만 재단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상호 신뢰와 공정한 대우, 그리고 자유로운 선택권이다. ‘관광객 독점’이라는 구태를 벗지 못한다면, 한국이 얻는 것은 잠깐의 매출 증가일 뿐, 신뢰와 재방문이라는 더 큰 자산은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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