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훈
최근 온라인 공간에 떠도는 ‘중국인 괴담’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내년까지 중국인 2천만 명이 무비자로 들어온다”, “아이들이 납치돼 장기 적출을 당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버젓이 퍼지고 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임에도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수십 차례 공유하면서 확산되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댓글창 풍경이다. “중국 무비자 절대 반대”, “역사 왜곡 국가 중국은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혐오 발언이 난무한다. “무비자 반대가 최고의 치료약”이라는 조롱까지 달린다. 이것이 단순한 온라인 해프닝인가? 아니다. 사회적 불안과 증오를 의도적으로 키우는 선동에 가깝다.
우리 사회에 반중 감정이 깊게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 경제 보복, 외교적 오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괴담과 혐오가 결합해 무책임하게 퍼져나간다는 데 있다. 사회 불만을 외국인 탓으로 돌리는 방식은 언제나 가장 손쉬운 선동이다. 결국 희생양만 남기고, 냉정해야 할 국익 논의는 실종된다.
정부의 태도도 도마에 올라야 한다. 무비자 제도와 관련해 명확한 설명도, 가짜뉴스를 차단하려는 의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사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팩트’처럼 소비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반중 정서를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듯한 행태까지 보인다. 정부와 정치가 책임을 방기한 사이, 사회는 혐오에 잠식되고 있다.
방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괴담이 일상을 지배하고, 혐오가 정치를 대신한다. 이주민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현실이 되고, 한국 사회는 분열과 불신의 늪으로 빠져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선동이 아니라, 차분하고 냉정한 대응이다. 괴담으로 키운 혐오를 방치하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가 떠안게 될 것이다.
BEST 뉴스
-
하영에게 증조부의 죄까지 물을 것인가
배우 하영이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 의혹과 관련해 결국 고개를 숙였다. 하영은 12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가족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논란 이후 관련 자료를 직접 ... -
건보 땐 ‘먹튀’, 연금 땐 ‘꼼수’…또 조선족 때리기인가
국내에서 불과 한 달가량 국민연금에 가입한 뒤 추후납부 제도를 이용해 가입기간 10년을 채우고 노령연금을 받는 중국인 사례가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보도는 최근 외국인의 추납 신청과 연금 수급 사례가 늘고 있다며 “특히 한국계 중국인을 중심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 -
[민국의 그림자 ⑦] 패망을 감지한 밀정들…‘76호’의 붕괴와 특무들의 마지막 선택
1943년 후반, 상하이의 공기는 달라지고 있었다. 태평양전쟁의 흐름이 일본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왕징웨이 정권 내부에서도 동요가 시작됐다. 겉으로는 여전히 일본과의 협력을 외쳤지만, 일부 고위 인사들은 이미 일본이 패전할 경우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계산하고 있... -
중국을 깎아내리면 한국이 강해지는가
한국 사회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유난히 차갑다. 온라인에서는 중국 제품의 품질을 조롱하는 표현이 어렵지 않게 등장하고, 중국인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혐오성 발언도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와 유튜버들은 중국 경제의 위기나 기술적 한계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중국의 성장을 평가절하하기도 한... -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배우들 ①] 선아오, 연변에서 중국 영화의 중심으로
중국영화 금계장 시상식에서 트로피와 수상증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선아오(申奥) 감독. [사진=1905영화망]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영화계에서 최근 주목받는 젊은 감독 가운데 한 명인 선아오(申奥). ‘수익인’(受益人)과 ‘고주일척’(孤注一掷)에 이어 ‘난징사진관’(南京照相馆... -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배우들 ②] 장률, 국경을 넘어 세계영화의 ‘지음’을 찾다
중국 조선족 영화감독 장률(张律)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을 이야기할 때 장률(张律)은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다.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던 그는 마흔을 전후해 뒤늦게 카메라를 잡았지만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해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