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운과 세파속의 민국여성들[시리즈③]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곽부라 완용(郭布罗·婉容)은 자가 <모홍(慕鸿)>이고 호는 <식련(植莲)>으로 중국의 말대 황후이다. 완용은 별명으로 영월화(荣月华), 이리싸 백(伊丽莎白) 등이 있으며 중국의 만청시대 및 민국시대를 겪으면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한명이었고 또한 시대의 희생품으로 된 비운의 여인이기도 했다.
1931년 말, 일본 여간첩인 가와시와 요시코(川岛芳子)가 일본 관동군의 명령에 의해 천진에 가서 완용을 만주로 데려오게 된다. 그 뒤 1932년 1월, 일본인들의 유혹하에 완용은 여순(旅顺)에서 그녀보다 앞서 그 곳에 도착한 부의와 상봉하게 되었다. 그 시기의 부의는 이미 일본 관동군에 의해 조종되는 괴뢰로 되었으며 완용 역시 일본인들의 음모에 말려들게 된다. 당시 만주에서의 완용은 모든 것을 일본인들의 배치에 복종해야 했으며 그녀의 일거일동 모두가 일본인들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이는 <모덴여성>이었던 완용으로 하여금 가장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결국 완용은 도주를 결심하였다.
남경 국민정부의 제1임 외교장관이었던 고유균(顾维钧)의 회고에 따르면 일찍 완용은 만주국정부내의 한 사람을 고물상으로 가장시켜 고유균한테 파견, 자기의 탈출을 도와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고유균 역시 신분상 완용의 탈출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뒤에도 완용은 탈출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1933년 8-9월 기간, 위만주국 입법원의 조흔백의 부인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자 완용은 그녀한테 자기의 탈출을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 그 때 오직 자기만 탈출에 성공하면 후에 부의까지 탈출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당시 한 일본인 첩자가 이를 알아채고는 부의한테 밀고하여 완용의 탈출시도는 재차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그 후 완용은 더는 탈출기회를 찾을 수 없게 됐다.
1934년, 3월 1일, 완용은 만주제국의 황후로 책정되었지만 매일 마약과 접촉하면서 세월을 보내며 병태적인 생활을 지속, 때로는 예쁘게 치장하고 황궁내의 정원을 거닐기도 했다.
바로 그 시기, 만주국 황궁에서는 완용과 시중꾼 사이의 간통사건이 터지었다. 당시 부의의 말대로라면 완용이 문수를 내쫓자 부의는 완용에 대한 반감이 생기면서 아주 오랫동안 완용은 부의로부터 냉대를 받아왔다. 하지만 황후라는 존호를 잃을 수 없었는가 하면 부의와 이혼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반대로 정상적인 생리수요가 있는 여성이었기에 사통이라는 불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완용은 선후로 부의의 시중꾼 이체육(李体育), 기계충(祁继忠) 등과 간통, 나중에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완용의 마약흡입으로부터 사통에 이르기까지에는 오빠의 역할이 컸다는 설도 있다. 일찍 천진에서 대련으로 오는 동안 오빠는 일종의 이익을 챙기고는 자기의 여동생을 한 일본군 장교한테 팔아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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