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굴욕으로 온 나라가 몸부림을 치던 중국의 근대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도록 잔인한 전쟁은 14년간 지속된 항일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쟁 중에서 중국인들은 하마터면 자기가 생존하던 국가를 잃을 뻔했고 중화민족 또한 존망 위기의 긴요한 관두에까지 이르게 되었었다.
2차 세계대전 전야의 일본은 이미 명치유신을 진행하여 전반 국가가 나날이 흥성하는 발전단계에 이르렀고 당시 이들은 무사 계층의 통치를 무너뜨렸지만 전반 국가는 도리어 군국주의 사상으로 침습되었다. 당년의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발달한 국가로 이미 서방 자본주의 국가 발전단계에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다. 그 시기, 일본인들은 국내의 자원으로는 일본의 발전 수요를 근본 상 만족시킬 수 없음을 감안했다. 이리하여 일본은 대외 확장 계획을 고안했고 이 확장 계획은 오직 통해서만 이 쟁취해올 수 있다고 인정했던 것이다.
일본의 침략 계획 중의 제1 보는 당연히 곧바로 중국이었다. 20세기 초엽의 중국은 땅덩어리가 크고 물산이 풍부했지만 상대적으로 국력은 매우 무능하였기에 어떻게 봐도 침략하기 아주 쉬운 좋은 상대였다.
일본은 자체로 조작해 낸 ‘9.18 사변’ 이후 짧디짧은 수개 월 내에 전반 동북을 집어삼켰다. 당시 일본은 중국의 땅만 탐낸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사상을 동화시키려고 시도, 조금 조금씩 중국을 잠식해갔다. 동북이 함락된 후 일본은 이곳에 만주국으로 명명된 위 정권을 건립했고 아울러 일본 국내로부터 수많은 일본 민간인들을 동북으로 운송하여 이곳에서 생활하게 하였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본토로부터 적어도 30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을 중국 동북으로 운송, 이 중에는 10만 명에 달하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의 계획은 동북으로 이주한 여인들이 중국 남성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면 혈통 상 중국과 일본 이란 두 나라의 국민으로 되기에 후에 중국을 전면 점령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런 일본 여성들은 일본 사회에서의 지위가 아주 낮기에 그들의 운명은 완전히 상층에 있는 남자들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여성들은 일본 군부에 의해 중국을 동화시키는데 사용되는 장기 쪽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록 일본인들의 계획은 이렇듯 완미했지만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은 중국 동북지구를 점령하는 데는 짧은 수 개 월이었지만 전반 중국을 집어삼키려고 보니 14년도 부족했으며 아울러 최종엔 그들 자신이 패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무조건 투항을 선포한 후 일본 군대 및 중국 경내에서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모두 반드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중국 동북에서 생활하던 10만 명에 달하는 일본 여성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 정부가 귀국시킨 일본인들은 대부분이 사지가 건장하고 노동능력이 강한 일본 남자로서 이 부분의 남자들이야말로 귀국 후 일정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전후 국가를 재건하려면 필경 많은 노동력이 매우 수요 되었던 것, 실제로 이런 남자들은 일본으로 돌아간 후 즉시 전후 국가 재건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북에 남은 불쌍한 일본 여성들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진작 이런 여인성들에 대해 염두에도 없었던 것이다.
흔히 일본 여성들을 보면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 시기 일본군의 행위를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환호하던 이들이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남편이 참군하는 것을 고무 격려했는가 하면 어떤 여인들은 자원해서 군 위안부로 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그녀들은 자기들이 중국 동북으로 운송되어와 동북에서 살게 된다고 하자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녀들의 눈에는 그것이 ‘천황폐하로부터 하사받은 지고 무상의 은공’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이 일본에 의해 중국 동북에 버려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과연 그녀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일본이 망한 뒤 이런 일본 여인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버림을 받은 뒤 중국의 거리에서 유랑 생활을 했던 것이다. 당시 전쟁이 갓 결속된 시기라 일본군에 분노한 중국의 백성들은 그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중국 백성들도 일본군의 만행과 불쌍한 여성들을 구분해보기 시작, 그녀들을 동정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여성들은 중국 남자와 결혼해 자녀를 낳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들도 점차 일본 정부의 불평등에 한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년에 이런 일본 여성들이 중국으로 오게 된 것은 이른바 ‘대동아공영’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으나 패전한 뒤 그녀들은 버린 일본 정부의 행위는 사람들로 하여금 재차 일본 이란 나라에 대해 실망하게 하고 있다.
오늘에 와서 이런 여성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 사람들이 잊어버린 듯하다. 그리고 일본 정부 역시 줄곧 그녀들을 데려가지 않았다. 본국 국민을 포기하는 행위는 국제 인도주의를 엄중히 위반한 것이기에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이 깨끗하지 못한 이왕지사에 대해 함구무언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BEST 뉴스
-
‘청와대의 저주’는 미신이 아니었다
글|안대주 무기징역. 전직 대통령 윤석열에게 내려진 형량이다. 한국 헌정사에서 이보다 더 추락한 대통령은 없다. 흔히 ‘청와대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이번 사안은 미신의 영역이 아니다. 권력을 사유화한 결과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준 정치적·사법적 결론이다. 윤석열은 끝까... -
야당이 된 보수의 기이한 충성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 날,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국민 앞에 섰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사과였고, 최소한의 거리두기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법부에 대한 공격과 “계엄은 곧 내란이 아니다”라는 궤변이었다. 보수 정당 대표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 -
“여성을 수입품으로 부른 공직자, 그 말이 정책인가”
인구가 아니라, 사람을 모욕했다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사람을 모욕하는 순간, 그 정치는 이미 자격을 상실한다. 전남 진도군수 김희수의 발언은 그 선을 명확히 넘었다. “스리랑카나 베트남 쪽 젊은 처녀를 수입해 농촌 총각 장가를 보내자”는 말은 정책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폭언이다. 인구 소멸을 걱정한... -
왜 중국인은 설이면 해바라기씨를 까먹을까
[인터내셔널포커스]설이 오면 중국의 거실 풍경은 묘하게 닮아 있다. 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오르지만, 대화의 중심에는 늘 차탁 위에 놓인 해바라기씨 한 접시가 있다. 손에 쥐고 하나씩 까먹는 이 단순한 간식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중국 설날의 배경음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중국의 화가이자 산... -
‘한국인 vs 조선족’ 논쟁에 가려진 윤동주의 정체성
최근 윤동주를 둘러싼 논쟁은 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쟁점은 단순해 보인다. 윤동주는 한국인인가, 아니면 조선족인가.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정확한 정체성인 ‘조선인’이 논의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윤동주를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라고 주장한다. ... -
숫양이 새끼를 낳는 날까지… 소무, 19년 충절의 기록
소무(蘇武)는 한나라 시기의 사신(외교관)이자, 오늘날까지도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북해에서 양을 쳤다’는 유명한 일화 뒤에는, 개인의 삶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지켜낸 한 인간의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선택이 담겨 있다. 소무는 한무제 시대에 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