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듣고 싶은 아버지의 “잔소리”
■ 이진숙
나의 아버지는 한평생 교원이었다. 직업병이라 할까? 고질병이라 할까? 딱 온집식구가 밥상에 마주 앉으면 단 한마디라도 “잔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버지셨다.
어릴 적 그 시절엔 그 “잔소리”가 정말 싫었다. 언니나 동생에게 “옷에 탐 적게 내고 신문이나 한 글자 더 봐라”하며 했던 말 또 한다. 그리고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 “사람은 먹물을 먹어야 한다”, “빈 바게스는 소리뿐이야”
“…”
생각해보면 자식들더러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지만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듣기 싫다 했다. 나중에 아버지의 훈시가 잔소리로만 들리면서 반감이 생겨 마이동풍격으로 됐다.
“너희들은 절대 교원질을 하지 말라. 훈장의 똥은 개도 안 먹느니라.”
우리가 점점 커가니 아버지는 이게 또 걱정인 모양이다. 하지만 귀에 못박히게 들어온 아버지의 말씀은 잔소리로 흘려 보냈는지 운명은 묘하게도 5형제중 오빠, 언니, 나까지 셋이나 교원사업에 몸을 담구게 했다.
내가 대학을 나와 교육사업에 금방 발을 들여놓자 아버지의 “훈시”는 끝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한 사발의 물을 주려면 물 한동이는 물을 준비해야 하느니라.”
“애들에게 절대 손을 대지 말아.”
“힘들어도 담임을 해라. 그래야 보람이 있고 후날에라도 찾아오는 애들이 있다.”
“…”
얼마나 현명한 말씀인가. 황금 천냥인양 주옥같은 아버지의 말씀은 감로수마냥 마음속에 흘러들어 교원생활의 초행길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참, 나중엔 너무도 귀찮았다. 잔소리로 생각된 그 순간부터 나는 말머리를 돌리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다른 일을 하는척 했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하면 후회된다. 그때 아버지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첩약 한 두첩 먹고 효과를 보니 나중엔 상을 찡그리며 대충 먹고는 버리는 격이다. 배은망덕이 또 따로 있을까.
짜증나는 잔소리 또 있다. 밥상에 마주 앉으면 어김없이 되풀이 하는 말 “먹던 오이나 파를 그대로 장그릇에 넣어 찍어먹지 말라. 위생적이 못돼.”
“밥을 먹을 때 쩝쩝, 후룩후룩 소리를 내지 말라.”
“…”
아버지가 필경 “량반전”을 읽으신 분은 아닌데 남들의 말처럼 틀림없는 “량반”이요 “선비”였다.
그것은 지난 세기 60연대 초 온 나라가 굶주리던 대식품시기였다. 한참 자라는 때라 엄마는 우리가 배를 곯을가봐 모진 애를 쓰셨다. 산에 가서 가둑나무잎을 뜯어 말리워 가루를 낸 후 물에다 수십번 우려서 떡을 만들고 또 술찌꺼기를 얻어다 떡을 만들었며 눈속을 뚜져 누런 배추떡잎을 줏어다 삶아서는 장국이라도 걸게 끓여 우리의 배를 불려주었다.
부지런한 엄마덕에 우리는 똥배를 잔뜩 늘구었다.
어느 설날, 엄마는 이삭을 주어 모은 입쌀로 죽을 끓였다. 그 시절엔 정말 희귀한 음식이었다. 군침을 꼴깍 삼키며 밥상에 마주 앉은 나는 후후 불며 급히 먹다가 나중엔 아예 사발채로 후루룩 소리내며 마셨다. 웬걸, 여기서 그만 사달이 났다.
“너 무슨 음식버릇이야, 추물스럽게 말이다…”
그 말에 나는 화가 울컥 치밀었다. 나는 뒤 말은 더 듣지도 않은 채 숟가락을 탕 놓고 울면서 휑-하니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미웠다. 엄마는 설날 아침에 웬 잔소리냐며 아버지를 나무람했다.
“내가 틀린 말 했수? 그렇게 애들을 감싸고 돌아보지, 쯧쯧…”
언제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였다.
공자는 “60이 이순(60而耳顺)”이라 했다.
그 후 오랜 세월속에서 더구나 이순의 막 끝에 오른 지금에 와서 나는 종종 아버지를 떠올리며 미안과 후회로 가슴을 뜯는다. 아, 단 한번만이라도 아버지의 그 잔소리를 들어봤으면…
항상 자식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가정교육”이란 이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우리 자녀들더러 인생을 당당하게 살라고 가르친 것이었겠는데 왜 그 때는 몰랐을가? 방법상 잠시 자녀들의 반감을 자아내긴 했어도 아버지의 그 잔소리 때문에 우리는 한결같이 인생을 참답게,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던가.
현대사람들처럼 그 때 만약 “긍정적 사고방식”과 “이해 만세”를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섭섭하게 하지 않았을텐데…
지금은 생각이 완연 바뀌었다. 아버지도 세상뜬지가 오래고 우리 세 자매 모두 흰 머리와 주름살로 세월의 흔적을 안고 살지만 아버지 잔소리에 대한 마음의 천평과 양심의 호소는 더욱 눈부시게 찬란하다.
“그 애비에 그 딸”이라고나 할까? 나도 자식들에게 아버지처럼 “잔소리 교육학”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그들한테 옳바른 삶을 기대한다.
어느 날, 우리 세 자매는 입체조를 하면서 그 옛날 아버지의 잔소리를 앞다투어 떠올렸다.
“뒤에서 다른 사람의 흉을 절대 하지 말라, 바람 안 새는 벽은 없느니라.”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 친구 잃고 돈 잃는다. 남과 돈거래를 하지 말라.” “동네 어른 보면 공순히 인사 드려라.”
“…”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잔소리 틀린 말 한마디도 없어, 모두가 우릴 위한 말씀이었는데…”
셋은 한입을 모았다.
“지혜의 말이 네게 보약이 되리라. 보약이 사람의 배속까지 스며들어 몸을 튼튼하게 해주듯 네가 옳바르게 삶을 살아가게 해 주리라.”
옛날 이스라엘의 지혜의 왕 솔로몬이 한 말이다.
아버지의 잔소리는 정녕 보약이였다. 아, 꿈결에라도 듣고 싶은 아버지의 그 잔소리, 지금도 정말 듣고 싶다!
2014년 2월 연길에서
BEST 뉴스
-
‘TACO의 순간’에도 물러서지 못하는 트럼프의 전쟁
요즘 국제 정치에서 ‘타코(TACO)’라는 말이 유행한다. 원래는 멕시코 음식 이름이지만, 지금은 “트럼프는 결국 먼저 물러난다(Trump Always Chickens Out)”는 조롱 섞인 정치 은어가 됐다. 문제는 이번 이란 전쟁에서는 그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없는 전쟁에 들어섰다.  ... -
“동포라 부르지 마라?”… 이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동포라 부르지 마라.” 한국 사회는 지금, ‘같은 민족’보다 ‘다른 나라 사람’을 먼저 선택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그들은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일 뿐”이라며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동포’라는 말에는 거부감이 따라붙고, ‘조... -
“이 나라는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한국에서 본 현실”
나는 한국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본 적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밤이 되면 유리처럼 반짝이는 도시, 완벽한 얼굴을 한 사람들, 사랑과 성공이 정교하게 배치된 이야기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한국은 어... -
시속 300km의 고속철, 금연 정책은 정지궤도
중국 출장길,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첨단 고속철에서 내린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의 잔상이었다.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승강장을 가득 채운 매캐한 담배 연기가 밀려왔다. 줄을 선 승객들 사이, 열차 출입구 주변, 이동 통로까지 곳곳에서 당연하다는 듯 불꽃이 일었다. 처음에는 단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