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대동강 물로 반죽한 냉면입니다. 연길 냉면과 차이를 느껴보시겠어요?"
심양 서탑거리 '옥류관'에서 김순희(가명) 종업원이 구리 대접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청자 접시 테두리에 맺힌 물방울이 천장 조명을 반사해 반짝인다. 그녀의 손목에는 붉은 실로 엮은 '3년 매듭'이 걸려있었는데, 중국에 파견되는 북한 여성들이 공통으로 소지하는 이 장식품은 1080개의 매듭으로 36개월을 상징하며, 매일 하나씩 끊는 방식이다.
천리마 목조각이 문간을 장식한 식당 안은 평양의 한 조각을 옮겨놓은 듯하다. 여종업원들은 흰색 치마저고리에 머리를 빨간 비단 리본으로 묶은 채 허리를 90도로 굽힌다. 미동도 없는 치맛자락은 '국제서비스 인재반' 3년 과정의 결과물이다.
"우린 모두 3대 청백입니다" 순희가 말머리를 뗐다. 조부모부터 부모까지 3대 가족력 청백, 주체사상에 대한 확고한 입장, 사회관계의 투명함이 필수 조건이다. 이곳에 서기 위해선 15세부터 '국제서비스 인재반'에 선발되어 HSK 5급 취득, 정치사상 검증, 예의범절 평가 등 12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최종 합격률은 3%에 불과하다.
이들의 월급 2,000위안 중 1,800위안은 북한 국고로 송금된다. 동시에 중국의 첨단 시스템을 배우는 임무도 있다. 순희의 노트에는 메이퇀(美团) 배달 시스템 분석이 빼곡히 적혀 있다. "원산 신형 호텔에 QR코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인다.
시내에서 40분 거리 외곽의 분홍색 기숙사 벽면에는 진달래꽃이 수놓아져 있다. 매일 밤 9시 단장이 대문을 잠그면 옥상 '학습실'이 활기를 띤다. 순희는 위챗 미니프로그램 사용법을 가르치고, 미연(가명)은 중국 인기 노래에 조선어 가사를 입혀 녹화한다. 막내 혜린은 배달 봉투를 책 표지로 재단하며 "고향 동생 선물"이라며 수줍게 웃는다.
주중 유일한 외출 시간인 수요일 오후, 사복으로 갈아입은 처녀들은 팔짱을 끼고 완다(萬達) 광장을 거닐며 외화증표로 샴푸와 비타민을 구입한다. 지난 겨울 순희가 김치 전용 밀폐용기를 발견해 20개를 구매한 일화는 현지에서 전설이 됐다. "이 용기들 덕에 원산 김치 공장 수출량이 15% 증가했대요."
저녁 7시 공연 시간이 되면 식당은 생기가 넘친다. 7색 긴 소매를 휘날리며 추는 <방울춤>에 맞춰 대형 스크린엔 평양 모란봉의 봄풍경이 펼쳐진다. <애아중화(愛我中華)> 선율이 울리면 객석에서도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단장 리경희(가명)는 "문화교류는 서로의 맛을 섞는 김장 같은 일"이라며, 공연 후 순희가 손님들에게 조선어로 '우정' 쓰기를 가르치는 모습을 지켜본다. 지난달 은퇴 외교관이 1950년대 배운 '동무(同志)'를 써내리자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할아버지도 중국 인민지원군이 평양-신의주 철도 복구를 도왔던 이야길 하셨죠."
새벽 6시, 주방 배송구에선 중국 요리사 왕셰프가 북한 청년들에게 자소엽을 보여준다. "이 잎사귀를 넣으면 국물이 한층 깊어져요." 미연은 뤄스펀(螺蛳粉)의 신죽 발효 과정을 도표로 그리며 "북한식 발효 기술과 결합시켜야지"라고 중얼거린다.
모바일 결제 시스템은 가장 큰 충격이었다. 순희가 평양백화점에 설치한 1호 POS기는 하루에 200건 이상의 거래를 처리한다. "QR코드가 지하철 개표기 같다"는 그녀의 설명이 현장 직원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계약 종료 전날, 각자 '기억 보따리'를 받는다. 3년간의 배달 영수증, 슈퍼마켓 계산서, 버블티 컵, 손님이 선물한 경극 가면 책갈피 등이 담긴다. 순희 상자 맨 아래엔 누런 쇼핑 리스트가 있는데, 뒷면에 단골 노교수가 써준 시 한 수가 있다.
"한강물에 목 축이며 두 나라 봄을 보네"
단둥 우의교에서 마지막 매듭을 풀 때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다리 난간에 매달린 수천 개의 빨간 리본이 바람에 펄럭인다. 이제 이들은 평양 스마트팜의 수직 농장, 원산항 컨테이너 항만의 디지털 관리 시스템, 묘향산 관광객용 민박집에서 중국에서 배운 지식을 전파할 예정이다.
이 특별한 레스토랑을 찾는 이들에게 종업원들은 종종 김치 물만두를 권한다. 얇은 만두피 속에는 고추가루의 매운맛보다 더 진한 것이 들어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청년들의 땀방울, 그리고 그들이 품은 희망의 싹이 영글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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