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룡성 현대화 실패 직격… “이력만 보고 쓰는 간부 인사, 이제 끝내야”
[인터내셔널포커스] “소달구지는 소가 끄는 것이다, 염소가 소달구지를 끌 수 있겠는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1월 19일 룡성기계연합기업소 1단계 현대화 개조 공사 준공식 현장에서 부총리 양승호를 공개 질책한 뒤 즉각 파면했다. 중국 시사 주간지 중국신문주간은 “김정은이 능력 부족과 책임 회피를 이유로 고위 경제 관료를 현장에서 해임한 것은 간부 인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경고”라고 전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22일까지 해당 장면을 방송하지 않았지만,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김정은 연설 전문에는 파면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담겼다. 김정은은 먼저 ‘염소가 소달구지를 끈다’는 비유로 양승호의 직무 수행을 비판한 뒤 박태성 총리에게 “정부를 개편할 때 이 부총리를 대신할 다른 인물을 임명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양승호를 향해 “아직 스스로 사임할 수 있을 때, 늦기 전에 사임하라”고 말했고, 곧바로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부총리를 파면한다”고 선언했다.
‘공개 질책’ 또다시… 인사 시스템 겨냥
김정은의 새해 공개 질책은 처음이 아니다. 2025년 음력 설날에도 김정은은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지방 간부들이 “당 규율을 난폭하게 위반하고 특권과 특혜를 남용했다”고 질책하며, 이례적으로 한 군(郡)급 당위원회를 현장에서 해산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은 2025년을 ‘혁명적 당풍 확립의 해’로 규정했다.
이번 파면의 초점 역시 개인 문책을 넘어선다. 김정은은 현장에서 “믿을 수 있고 능력 있는 간부 집단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현재의 간부 임용 체계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력만 보고 추천하는 관행”을 정면 비판하며 “과거의 방식과 결별해야 한다”고 했다.
‘초고속 승진’의 상징, 왜 몰락했나
양승호는 한때 김정은 시대 ‘고속 승진’의 상징이었다. 김정은 집권 초 그는 남포시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지배인이었다. 대형 공장 책임자는 북한 고위 경제 관료로 가는 전통적 경로다.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는 김일성이 직접 입지를 정하고 김정일이 수차례 시찰한 핵심 공장으로, 김정은은 집권 후 이 공장을 국가 핵심 설비 생산기지로 지정했다.
양승호는 성과를 인정받아 2016년 노동당 7차 대회에서 중앙위원 후보로 선출됐고, 2019년 4월 기계공업상, 같은 해 12월 중앙위원으로 승진했다. 이후 김정은이 ‘내각 책임제·내각 중심제’를 강조하며 지방 성과형 간부들을 중앙으로 끌어올리자, 양승호는 2020년 4월 공업 담당 부총리로 조기 발탁됐다. 당시 다른 부총리들이 2021년 노동당 8차 대회를 전후해 교체된 것과 대비되는 이례적 인사였다.
2021년 새 내각에서도 양승호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며 위상이 높아졌고, 2022년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총리·재정상 다음 순서로 연단에 섰다. 2025년까지도 그는 산업 전반을 총괄하며 관영 매체에 빈번히 등장했고, 김영남 전 국가수반 국장위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결정타는 ‘룡성 현대화’
전환점은 룡성기계연합기업소 현대화 사업이었다. 김정은에 따르면 2025년 12월 노동당 8기 13차 전원회의에서 이미 양승호는 이 사업과 관련해 공개 비판을 받았다. 룡성 공장은 북한의 핵심 대형 설비 제조기지로, 한·미 정보당국이 군수 산업과 연계된 전략 시설로 주시해온 곳이다.
2023년 12월 당 중앙은 룡성을 전면 현대화의 ‘모범 공장’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군수 산업 확장 국면에서 룡성의 설비 제조 능력은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규정됐다. 당과 내각, 지방 정부는 자재·설비를 최우선 배정했고, 관영 매체는 연일 “자력갱생의 본보기”를 강조했다.
그러나 막바지에 ‘인위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이 드러났다. 김정은은 “생산 공정 현대화 방안 자체가 황당무계했다”고 지적했고, 군수공업부 전문가들이 전면 재검토에 나섰다. 그 결과 시정 사항만 60여 건, 일부 공정은 자동화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됐다.
김정은은 이는 “초기 단계부터 잘못된 사업”이라며, 해당 프로젝트를 총괄한 ‘권위 있는 내각 간부’의 책임을 물었다. 그 인물이 바로 양승호였다. 전원회의에서의 형식적 자기비판 이후에도 개선이 없자, 김정은은 “그의 행동 어디에서도 책임 의식을 찾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고, 준공식 현장에서 파면을 단행했다.
내각 전반 ‘재검증’ 신호
이번 파면으로 2021년 노동당 8차 대회 이후 구성된 내각 부총리 7명 가운데 단 1명만이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당시 총리였던 김덕훈도 2024년 12월 박태성으로 교체됐다. 김정은은 이번 연설에서 여러 차례 ‘전임 총리’와 ‘이전 내각’을 직접 지칭하지 않은 채, 자질·능력·태도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중국신문주간 등 중국 매체들은 이를 두고 “김정은 집권 이후 빠르게 발탁된 경제 관료들에 대한 전면 재검증, 나아가 추가 인사 교체의 신호탄”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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