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시로 스타디움. 환호가 가득해야 할 올림픽 개막식 현장에서, 미국을 향한 거센 야유가 울려 퍼졌다.
현지시간 2월 6일 밤 열린 밀라노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 부통령 밴스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치고 미국 선수단이 입장하자, 관중석 곳곳에서 야유와 휘파람, 조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웅장한 음악도, 흔들리는 성조기도 현장의 불편한 기류를 가리지 못했다. 세계인의 축제 한복판에서 미국은 이례적인 ‘집단 항의’의 대상이 됐다.
왜 올림픽의 무대에서 미국이 표적이 됐을까. 이탈리아 현지 여론은 최근 미국 이민·치안 정책을 둘러싼 논란, 특히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강경한 집행 방식에 대한 국제적 반감이 응축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당방위” 해명에도 쌓이는 의혹…ICE 논란이 불씨
야유의 직접적 배경으로 지목된 것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다. 미국 내에서 최근 벌어진 두 건의 치명적 사건을 두고 ICE가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공개된 영상과 목격자 증언이 잇따르며 과잉 집행 논란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생명 존중과 절차적 정당성”을 중시하는 유럽의 법 집행 기준과 충돌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탈리아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미국이 올림픽 기간 중 ICE 인력을 안전·지원 명목으로 파견하려 했다는 보도에 강하게 반발했다. 밀라노 시장 주세페 살라는 “이탈리아의 안전 기준과 맞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시민단체들은 “폭력적 집행의 상징을 올림픽에 들일 수 없다”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명칭 변경’과 선긋기…의혹은 가라앉지 않아
미국 측은 파견 인력이 현장 치안에 관여하지 않으며 기술적 지원에 그친다고 해명했다. 이탈리아 내무부도 “미국 인력은 외교시설 내부 업무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잦아들지 않자, ‘ICE’와 혼동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부 시설 명칭을 급히 바꾸는 등 ‘선 긋기’에 나섰다. 현지 언론은 이를 두고 “본질을 피해 가는 상징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개막식 당일, 밀라노 도심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밴스는 떠나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앞서 수백 명이 모인 집회에서는 ICE를 역사적 폭력 조직에 비유하는 강한 구호도 등장했다.
미·유럽 간 인식 차이, 올림픽에서 표면화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법 집행과 주권을 둘러싼 미·유럽 간 인식 차이가 올림픽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드러난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생명과 규칙을 중시하는 유럽의 기준과, 강경한 집행을 앞세운 미국식 관행 사이의 간극이 분명해졌다는 평가다.
산시로 스타디움의 야유는 곧 잦아들겠지만, 그 의미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무대에서 드러난 불만은 미국의 대외 이미지와 동맹 관계에까지 파장을 남겼다.
빙판 위의 축제는 이제 막 시작됐다. 하지만 ‘존중·규칙·주권’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막과 동시에 국제 사회의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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