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중동 핵심 천연가스 시설이 마비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허브 가운데 하나인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가 타격을 입으면서, 유럽연합(EU)은 장기적인 에너지 공급 위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공급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로 다가온 상황이다.
2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는 위기감이 노골적으로 표출됐다. 회원국 정상들은 중동 전쟁이 에너지 인프라를 직접 겨냥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며,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 충돌 속에서 에너지 시설 공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에너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경고했고, 네덜란드의 로브 예텐 총리도 “공격이 계속되면 글로벌 충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천연가스 가격은 3년 만의 최고치로 급등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유로존 물가 상승률이 최대 6.3%까지 치솟고 경기 침체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2주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추가 부담된 비용만 70억 유로에 달한다. 이미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경쟁력이 약화된 유럽 경제에 또 한 번의 충격이 가해진 셈이다.
이번 위기의 진원지는 카타르 라스라판이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이 지역 LNG 시설이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고, 카타르 에너지 측은 전체 수출의 약 17%를 담당하는 생산 설비 일부가 가동 중단됐다고 밝혔다. 복구에는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생산 능력 자체가 훼손되면 전쟁의 파장은 훨씬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EU는 중동 충돌이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공급 자체를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EU 내부 석유조정기구는 “호르무즈 해협의 에너지 흐름이 장기간 차단될 경우 공급 안정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특히 디젤과 항공유처럼 특정 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구조가 취약점으로 지목됐다.
문제는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일부 국가는 전력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만 이는 재정 적자를 키울 수 있고,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완화 역시 재생에너지 투자 동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유럽은 석유와 가스가 아니라 태양과 풍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전쟁 여파는 글로벌 경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 2026년 상품 무역 증가율이 0.5%포인트, 서비스 무역은 0.7%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U 역시 올해 경제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최대 0.4%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재정 대응은 반드시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과도한 개입을 경계했다.
결국 최대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란의 봉쇄 위협으로 사실상 기능이 마비될 경우, 이번 위기는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뒤흔드는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그리고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이 해협이 언제 다시 정상화될지가 세계 경제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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