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넘어 차세대 이동통신 6G의 국제표준을 둘러싼 ‘규칙 경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기술을 먼저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세계가 사용할 기술 규칙과 특허를 누가 선점하느냐가 새로운 승부처로 떠올랐다.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 고위 관료를 지낸 매슈 굴드는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서방 국가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기술전쟁에서 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이 6G 등 첨단기술 국제표준에서 장기 전략을 추진하는 동안 서방은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굴드는 미국이 관세와 반도체 수출통제 등 단기간에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중국 정책에 집중한 것과 달리 중국은 국제표준을 만드는 기구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장기 전략을 추진해왔다고 평가했다.
6G 표준 경쟁은 단순한 통신속도 경쟁이 아니다. AI와 통신망의 결합, 통신·센싱 융합, 위성과 지상망 연결 등이 본격화하면 데이터 처리와 보안, 네트워크 구조를 규정하는 표준의 중요성도 커진다. 자국 기업의 특허 기술이 국제표준에 반영되면 통신장비와 관련 산업 생태계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 역량을 강화해왔다. 2021년 발표한 ‘국가표준화 발전요강’은 2035년까지 국제적으로 호환되는 표준체계를 강화한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통신뿐 아니라 AI와 전력망, 고속철도, 배터리 등 경쟁력을 확보한 산업에서도 국제표준에 자국 기술을 반영하는 데 적극적이다.
미국도 대응에 나섰다. 미 상무부 산하 국가통신정보관리청(NTIA)은 지난 7월 27일 ‘6G 리더십과 안보를 위한 행동 촉구’를 발표했다. 한국을 비롯한 20개국 이상의 정부가 참여해 연구개발과 공급망, 보안, 국제표준 분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중국 역시 6G 핵심기술 연구와 표준 개발을 가속하면서 AI·양자기술 등 미래기술을 차세대 통신산업과 연계하고 국제표준 논의에도 적극 참여한다는 전략이다.
다만 국제표준은 어느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각국 정부와 기업, 전문가들이 기술 제안과 검증, 협상을 거쳐 합의를 만들어간다. 결국 승부는 자국 기술과 특허를 국제표준에 얼마나 반영하고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5G 시대 화웨이를 둘러싼 장비와 공급망 문제가 미·중 갈등의 중심이었다면 6G에서는 기술개발 초기부터 특허와 표준, 공급망과 보안 규칙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중 기술패권의 전선이 이제 ‘누가 더 앞선 기술을 만드느냐’를 넘어 ‘누가 미래 기술의 규칙을 만드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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