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호르무즈해협을 피해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으로 원유를 빼내면 된다는 계산이 흔들리고 있다.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와 홍해 연안 얀부를 연결하는 동서횡단 송유관이 공격을 받아 가동에 차질을 빚으면서다. 홍해 남쪽 밥 알만뎁까지 불안한 상황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의 우회 수송망을 다시 따져봐야 할 때가 됐다.
정부도 수송로 점검에 들어갔다. 외교부는 17일 주요 산유국과 대체수송로·수급선 관련국 주재 11개 재외공관을 화상으로 연결했다. 호르무즈와 홍해 상황뿐 아니라 원유·LNG·나프타 공급망, 대체수송로와 수입선 다변화가 논의됐다. 산업통상부도 14일 정유·해운업계와 원유 수급 상황을 점검했다. 9~10월 도입 물량은 전년 같은 기간의 90% 이상 확보돼 당장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판단이다.
지금까지 가장 현실적인 우회로는 얀부였다. 사우디 동부에서 생산된 원유를 육상 송유관으로 홍해까지 보내 선적하면 호르무즈를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지난 10일 여러 펌프장이 공격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에너지·해운 분석업체 Kpler에 따르면 11일 이후 얀부에서는 원유 선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우디 측은 손상 구간을 우회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상 복구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됐다.
얀부가 흔들리면서 UAE 푸자이라와 오만 소하르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푸자이라는 호르무즈 바깥 오만만에 있어 UAE산 원유를 해협 통과 없이 선적할 수 있다. 소하르 역시 선박 간 환적을 통해 걸프 안쪽 원유를 바깥으로 넘기는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쪽도 여유가 크지 않다. Kpler는 푸자이라와 소하르의 선박 간 환적 능력이 이미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얀부 물량까지 한꺼번에 몰리면 새로운 병목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홍해 남쪽까지 막히면 길은 더 복잡해진다. 얀부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수에즈운하 또는 이집트 수메드(SUMED) 송유관을 거쳐 지중해로 원유를 빼낸 뒤, 지브롤터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보내는 방법이 있다. 항로가 길어지는 만큼 유조선 회전율은 떨어지고 운임과 보험료 부담은 커진다. 원유를 확보하고도 한국 도착이 늦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이미 수입 지도를 바꾸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자료를 인용한 최근 국내 보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동산 원유 수입은 2억9118만 배럴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5% 감소했다. 전체 원유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8.7%에서 62.3%로 낮아졌다.
반대쪽에서는 미국산이 14%, 아프리카산이 150% 이상 늘었다. 특히 아프리카산 증가율은 157%에 달했다. 사우디 얀부와 UAE 푸자이라를 이용하는 것과 동시에 아예 중동 밖에서 원유를 가져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셈이다.
그렇다고 중동산을 단기간에 모두 바꾸기는 어렵다. 정유시설은 원유의 성질에 맞춰 운영된다. 중동산을 다른 원유로 대규모 교체하면 정제 효율과 제품 생산 비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장거리 수송에 필요한 유조선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문제도 따른다.
결국 한국이 준비해야 할 것은 하나의 ‘대체 항로’가 아니다.
호르무즈가 흔들리면 얀부와 푸자이라가 필요하고, 얀부가 멈추면 소하르 등 다른 환적 거점을 찾아야 한다. 홍해까지 어려워지면 수에즈·수메드와 희망봉을 계산해야 한다. 여기에 미국·아프리카 등 비중동산 원유와 국내 비축유가 붙는다.
당장 원유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 9~10월 도입 물량도 상당 부분 확보돼 있다. 그러나 얀부 송유관 공격은 그동안 안전판으로 여겨졌던 우회로 역시 언제든 막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정부가 17일 산유국뿐 아니라 ‘대체수송로·수급선 관련국’ 공관까지 한꺼번에 불러 점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원유 공급망의 질문은 이제 ‘얼마나 확보했느냐’에서 ‘어느 길이 막혀도 가져올 수 있느냐’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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