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조선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연변, 중국동포, 노동자, 대림동….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작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조선족’은 사람보다 이미지가 먼저 따라붙는 말이 됐다.
원래 조선족은 중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연변뿐 아니라 헤이룽장과 랴오닝 등 중국 동북지역 곳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이름이었다.
이 이름의 느낌이 달라진 곳은 한국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많은 중국동포가 한국으로 들어왔다. 말이 통했고 음식과 생활문화도 낯설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이들을 ‘동포’라고 불렀다.
그런데 동포라는 말과 실제 생활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주로 향한 곳은 건설현장과 공장, 식당, 가사·돌봄 현장이었다. 일손이 부족한 곳에서는 이들을 필요로 했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법도 처음부터 같지 않았다. 과거 재외동포법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중국과 옛 소련 등으로 이주한 동포 상당수가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2001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이런 차이는 점차 고쳐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선족’이라는 말에는 다른 이미지도 따라붙었다. 강력사건이 터지면 범죄를 저지른 개인보다 출신이 먼저 거론되는 경우가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범죄자나 청부업자로 그려지곤 했다. 실제로 만나보기도 전에 영화 속 조선족이 더 익숙해진 셈이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한 중국동포에게 물었다.
“평소에는 제가 조선족이라는 걸 알아도 별다른 표정이 없어요. 그런데 의견이 부딪치거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달라집니다. 그때는 ‘중국 사람들은 어떻다’, ‘조선족들은 원래 어떻다’는 식의 말이 나와요. 심할 때는 ‘짱깨’라는 말까지 듣습니다.”
그가 불편해하는 것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 한 사람과의 갈등이 어느 순간 중국인과 조선족 전체에 대한 말로 번지는 일이었다.
개인끼리 다툰 일이라면 개인끼리 끝나야 한다. 그런데 출신이 끼어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제까지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 갈등이 생긴 날에는 다시 ‘조선족’이 된다.
물론 모두가 같은 일을 겪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좋은 이웃과 직장 동료를 만나 살아온 사람도 많다. 중국동포들의 삶 자체가 제각각이다.
한국에서 20년, 30년을 산 사람도 있고 이제 막 들어온 사람도 있다. 공장과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옆에는 사업가와 회사원, 전문직 종사자가 있다. 중국 국적을 유지하는 사람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도 있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와 중국보다 한국이 익숙한 젊은 세대도 있다.
고향도 연변만이 아니다. 헤이룽장과 랴오닝 등 중국 여러 지역에 조선족이 살고 있다. 한국에 정착하기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평생 중국에서 살며 한국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한 단어로 너무 쉽게 설명해 왔다.
그 이름을 버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조선족이라는 이름에는 한 세기가 넘는 이주의 역사와 가족의 기억, 언어와 문화가 들어 있다. 이름을 바꾼다고 오래 쌓인 시선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출신을 알고 나면 어디에 살 것 같고, 무슨 일을 할 것 같고,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은지 먼저 그려질 때가 있다. 정작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은 뒤로 밀려난다.
조선족이라는 이름 뒤에도 각자의 고향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살아온 시간이 있다.
같은 이름으로 불렸을 뿐이다.
그들의 삶까지 같았던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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