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적·인종 향한 모욕과 혐오, 어디까지 자유인가

외국인을 향해 욕설을 한다. 국적을 들먹이며 조롱하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모욕한다. 처음에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다 밀치고 침을 뱉고, 심하면 주먹까지 나간다.
여기까지 와서도 ‘표현의 자유’를 말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가 쉽게 양보해서는 안 되는 권리다. 중국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판하면 된다. 미국의 외교정책에 반대할 수도 있고 일본의 역사 인식을 거칠게 비판할 수도 있다. 정부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불편하고 날카로울수록 보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은 같은 대상이 아니다.
중국 정부에 화가 났다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중국인에게 욕설을 퍼부을 이유는 없다. 한 나라의 외교정책이 싫다고 길에서 만난 그 나라 사람을 위협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 단순한 구분이 요즘 자꾸 흐려진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특정 국가·국민·인종에 대한 허위사실 명예훼손과 모욕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논쟁이 커졌다. 양 의원이 ‘혐중 집회’를 사례로 들면서 중국을 위한 법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반대로 국적과 인종을 겨냥한 노골적인 혐오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이냐는 문제 제기도 있다.
법안은 법안대로 따져봐야 한다. 무엇을 모욕으로 판단할지부터 쉽지 않다. 국가나 정부를 향한 거친 풍자까지 처벌 대상에 들어가서는 곤란하다.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법을 적용할 여지가 없는지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따져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표현의 자유’라는 네 글자로 덮을 일도 아니다.
특히 허위사실을 만들어 특정 국민이나 인종을 공격하는 것과 정치적 의견을 밝히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욕설과 위협을 반복하다 실제 폭행으로 이어진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주먹은 의견이 아니다.
입장을 바꿔보면 훨씬 선명해진다.
한국인이 외국의 거리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욕설을 들었다고 해보자. 한국말을 한다고 조롱당하고, 태극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위협을 받았다. 급기야 누군가 밀치거나 때렸다.
그 나라에서 “표현의 자유니까 참으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그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과 인천의 거리에서도 기준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
한국은 이미 외국인 관광객과 유학생, 노동자와 기업인이 일상적으로 오가는 나라다. 한국인 역시 세계 곳곳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사업한다.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국적 때문에 공격받지 않기를 바란다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더구나 한국은 관광객을 더 유치하겠다며 세계를 향해 문을 두드리고 있다. 기업은 해외시장을 뛰고 K팝과 한국 드라마는 국경을 넘는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거리에서는 누군가가 국적과 인종 때문에 모욕당하고 폭행당한다면,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은 어떻게 비치겠는가.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막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충분히 열어둬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국적과 피부색을 공격하는 일까지 정치적 비판이라고 포장할 필요는 없다.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욕설을 하고, 위협하고, 폭행하면서 마지막에 ‘표현의 자유’를 갖다 붙인다고 그 행동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자유는 중요하다. 그래서 더 함부로 가져다 써서는 안 된다.
한국인이 세계 어느 거리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받지 않기를 바란다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도 똑같은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남의 나라에서 우리 국민이 당하면 분노할 일을, 우리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그게 국제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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