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념 하나로 살아온 파란만장한 인생길
■ 리강춘 (중국 왕천현)
나는 이 세상에 “남자”로 태여나 가정에서는 기둥으로, 안해에게는 훌륭한 남편으로, 자식에게는 떳떳한 아버지가 되려는 굳센 신념 하나로 다른 사람이 상상도 못할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힘들게 걸어왔다.
1980년 1월 22일 아침, 음악교원으로 있던 나는 갑자기 건 피소변이 나가면서 아래배가 아파 연변병원에 호송되여 수술대에 올랐다. 29세 꽃나이에“악성방광암말기”라는 진단을 받을줄이야.
매일 체온이 40도로 오르내리고 동통을 참다 못해 헛소리를 치다가는 혼수상태에 빠지군 했다. 그때 나의 생명은 꺼져가는 불찌와도 같이 가물거렸다. 수술한지 일주일이 지난후 수술실을 뽑으니 응당 아물어야 할 수술자리에서 고름이 왈칵 터져 나왔다.
마취제를 쓰지 않으면 수술자리가 빨리 아문다는 말을 들은 나는 이를 악물고 마취제를 쓰지 않은 대수술을 두번이나 받아냈다. 6개월만에 수술자리가 겨우 아물자 나는 안해한테 업혀 천진시공안병원에 가 한달동안 화학치료를 받았다. 머리가 몽땅 빠지고 체중이 32킬로그람으로 줄어 이 세상에서 남은 시간이 석달밖에 안된다는 “시한부선고”를 받고 고향에 돌아왔다.
7개월만에 고향땅을 밟게된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보다 안해가 더 기뻐했다.안해는 나를 부축하고 고향땅을 한발자국 두발자국 내 디디며 언젠가? 내가 배원준 노래를 조용히 불렀다.“종다리 울어 예는 하늘아래 진달래 곱게핀 고향이로세...”안해의 은은한 노래소리는 나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 주었다.갈수록 심산이라고 그 기쁨은 얼마 가지 못하고 비극으로 넘어갔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딸애가 귀신처럼 변해버린 아버지가 무섭다며 내 곁에 오지도 않았고 밖에 나가 해볕쪼임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남들이 나를 보고 놀라 할가봐 감히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할수 없이 나는 안해가 갖추어 주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날이 밝기 전에 마을과 4리나 떨어진 남산 락엽송밭에 가서 하루를 보내다 날이 어두워 캄캄해져야 산에서 내려오군 했다. 두해 여름을 산에서 이름 모를 산나물을 뜯어 먹으며 하루하루 보냈다. 지루하고 고독하고 막막했다. 이제 오래 지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서러웠고 맹인이나 지체장애자들이 부러웠다. “시한부선고”를 받지 않은 그들이기 때문에...
병마와의 싸움은 점점 악렬했다. 수술자리가 아물지 않아 동통이 심해 맞은 강통정(强痛定)주사에 은이 박혀 하루라도 주사를 맞지 않으면 못 견디는 상황이였다.
나는 왕청현내의 크고작은 향진과 촌툰 위생소를 찾아다니며 손이야 발이야 빌면서 강통정을 사다가 위생실에 주사기를 감추어두고 아침 저녁으로 맞았다. 강통제에 의거해 사는 나는 마약중독자나 다름없었다. 주사를 맞지 않으면 온 몸에 진땀이 줄줄 나고 발광이 나고 닥치는대로 마스고 부수고 했다.
그러던 1983년 8월의 어느날, 왕청현 대흥구진병원의 리동렬원장이 나를 찾아와 “젊은 나이에 이게 무슨 짓이요? 남들은 대수술을 하고도 하루에 주사 한대를 맞으면 그만인데 하루에 열대씩 맞으면 한달도 살지 못하오”하며 강통정(强痛定)을 떼라고 진심으로 권고했다. 그 말에 나는 “암말기”라는 사형진단을 받고도 버티고 일어섰을라니 강통정을 떼다 죽더라도 주사를 떼봐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3년이나 맞아온 강통제주사를 떼자니 쉬운 일이 아니였다. 대흥구병원에 입원한 나는 주사생각이 난다 하면 속이 답답하고 발광이 나면서 맞고있는 링게르를 잡아당겨 복도창문으로 내던져 주사병이 맞은켠 병실벽에 맞아 박산나기도 했다. 환자들은 병 떼러 왔다가 심장병을 얻겠다며 출원하겠다고 야단쳤다.
병원에서는 나를 철침대에 꽁꽁 묶어놓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나는 발광하다 맥이 빠져 쓰러지군 했다. 나는 사내대장부라면 안해를 위해, 자식을 위해 죽지 말고 꼭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아픔과 약중독을 이겨내리라 마음먹고 견디고 또 견뎌냈다.
석달동안의 치료를 거쳐 나는 기적적으로 마약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였고 혼 나간 사람처럼 동분서주하면서 강통제를 구걸하던 력사를 종말짓게 되였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안해의 정성에 염라대왕이 손을 들었는지 아니면 나의 굳센 삶의 욕망이 기적을 낳았는지? 1986년 2월 나는 건강회복이 빠르고 대체상 치유되였다는 결론을 받았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았으니 사회, 가정, 안해와 자식을 위해 보람있는 삶을 사는것이 나의 삶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우선 남편을 넘어지지 않게 뒤받침을 해준 안해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안해를 글로 쓰기로 하고 신문, 잡지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1년동안 26번이나 퇴고를 받으면서 쓴 “나의 안해”라는 실화문학이 “청년생활”, “연변녀성” 등 잡지에 발표되였다. 그때로부터 나는 그렇게 애착해오던 음악을 포기하고 신문보도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의 노력으로 12년째 해마다 기사 수백편이 언론매체에 발표되면서 “흑룔강신문”,“로년세계”,“연변로인의 벗”등 아홉개 신문매체의 특약기자로 초빙되었다.
또한 왕청현 신문보도센터의 주임, 왕청지구통신련협회 부주석,중앙인민방송국 연변조선말방송애청자협회 왕청분회 회장,왕청현음악가협회조선족중로년성악예술협회회장,“연변로인의 벗” 왕청현기자소 소장 등 직무를 맡고 선후로 “길림성우수지원자”,“연변주조선어문사업선진개인”,“연변주후대관심사업선진개인”,“왕청감동인물”,“왕청현로년사업선진개인”,“왕청현민족단결선진개인”등 수많은 영예를 받아안아 왕청현을 대외에 홍보하는 중요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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