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부속청교 교정의
전경
“유랑은 언제까지? 도망은 어디까지? ” 70여년 전 어느날 유명한 <류망삼부곡 (流亡三部曲)>이 충칭 칭무관(靑木關) 민중
교육관에서 울려 퍼졌다. 노래를 불렀던 이들은 이곳까지 피난 온 학생들이었다.
당시 국립 중앙
대학 부속 중학교 학생으로서, 올해 85세인 쾅하오원(况浩文)씨는 이러한 광경이 아직도 인상이 깊다.
1939년 5월,
국민정부교육부는 충칭 칭무관으로 이전하였고, 국내 유명한 대학, 중학, 초등 학교들도 잇달아 이곳으로 이전하거나, 새로 지어졌다. 칭무관
위안지아거우(袁家沟)의 중대부속중학교도 그 중 하나이다.
항일 전쟁시기
충칭에서도 중대 부속 중학교는 둘로 나뉘는데, 칭무관에 있는 하나는 중대부중청교(中大附中青校)이고, 다른 하나는 사핑바(沙坪坝)에 있는 곳으로
1942년 증설된 중대부속분교로 중대부중사교(中大附中沙校)이다. 쾅하오원 씨는 1946년 청교와 사교가 난징으로 다시 이전된 후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현재의 난징사범대학부속중학교)
그 당시,
중대부중청교에 다니던 학생들의 대부분은 가족을 따라 충칭으로 피난온 학생이나 보육생이었고, 일부는 칭무관 현지에서 모집된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 수가 가장 많을 때는 1500명이 넘었다. 그러나 학교 시설은 매우 열악하였다.
학교 운영의 어려움
속에서 중대부속중학교는 국가의 기둥이 되는 인재들을 배출해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자랑이라고 불리는 중국공정원(中国工程院) 원사(院士)
딩헝가오(丁衡高)도 중대부중청교에 다녔었던 것이다.
한국학생 10명의
특별 입학
중대부속중에는
중국학생뿐만 아니라 외국 학생도 있었다. 항일 전쟁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충칭으로 이전되어 왔는데, 임시정부관원과 가족들도 잇달아 충칭으로
오게되었다.
1938년 말,
국민정부교육부부장 천리부(陈立夫) 특별 승인을 받아, 중대부속청교는 10명의 임시정부관원 자녀들을 받았는데, 그 중 1명은 임시정부주석 김구의
차남 김신이었다. (재학시절 이름은 김신강)
쾅하오원씨는 김신이
고관(高官)의 자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의 생활은 다른 사람과 같이 어려웠다고 한다. 25년전 그들은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김신이
말하기를 그 당시 식탐을 참을 수 없어, 그는 종종 집에서 준 차비를 아껴, 몇 십리 산길을 걸어서 학교에 갔는데, 이는 단지
츠치커우(磁器口)를 지날 시 마오쉐왕(毛血旺) 한 그릇과 땅콩 반 근을 먹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김신은 아직도 그 때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충칭에서 생활한지
5년이 되어서 김신은 충칭 말도 매우 유창하게 하였고, <류망삼부곡>도 잘 부르게 되었다.
중대부속중학교를
졸업한후, 그는 쿤밍(昆明)에 있는 서남연대(西南联大)에 입학하였고, 1944년 입대를 하였고, 나중에는 미국공군학교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
1993년 김신은
뿌리를 찾기 위해 충칭으로 돌아왔는데, 칭무관으로 가서 모교의 유적을 돌아보았다. 반세기가 흘렀어도, 그에게는 어두운 등불 아래서 공부를 하던
그때 그 모습이 바로 어제의 일같이 느껴졌다.
김동철 역
ⓒ 인터내셔널포커스 & 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서울 3년 살며 깨달은 한국의 민낯
영하 12도의 서울. 바람은 칼날처럼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홍대 입구에 서 있었다. 움직이는 이불 더미처럼 꽁꽁 싸매고, 온몸을 떨면서. 그때 정면에서 한국 여자 셋이 걸어왔다. 모직 코트는 활짝 열려 있고, 안에는 얇은 셔츠 하나. 아래는 짧은 치마. ‘광택 스타킹?’ 그런 거 없다. 그... -
마두로 체포 이후, 북한은 무엇을 보았나
글|안대주 국제 정치는 종종 사건 자체보다 ‘언제’ 벌어졌는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전격 체포한 직후,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 일정과 맞물려 북한이 고초음속 미사일 발사 훈련을 공개했다. 단순한 군사 훈련의 공개로 보기에는 시점... -
같은 혼잡, 다른 선택: 한국과 중국의 운전 문화
글|화영 한국에서 운전하다 보면 반복해서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차선을 바꾸기 위해 방향지시등을 켜는 순간, 뒤차가 속도를 높인다. 비켜주기는커녕, 들어올 틈을 원천 차단한다. 마치 양보가 곧 패배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 장면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도로에서는 ‘내가 우선’이... -
“왜 이렇게 다른데도 모두 자신을 ‘중국인’이라 부를까”
글|화영 해외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종종 비슷한 의문이 제기된다. 남북으로 3000km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 영하 50도에서 영상 20도를 오가는 극단적인 기후, 서로 알아듣기 힘든 방언과 전혀 다른 음식 문화까지. 이처럼 차이가 극심한데도 중국인들은 자신을 ... -
중국산 혐오하면서 중국산으로 살아가는 나라
중국산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중국산 없이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사회의 중국산 혐오는 이미 감정의 영역에 들어섰다. “중국산은 못 믿겠다”, “짝퉁 아니냐”는 말은 습관처럼 반복된다. 하지만 이 말은 대부분 소비 현장에서 힘을 잃는다. 불신은 말... -
같은 동포, 다른 대우… 재외동포 정책의 오래된 차별
글 |화영 재외동포 정책은 한 국가의 품격을 비춘다. 국경 밖에 사는 동포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그 나라가 공동체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설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외교부·통일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행정 점검을 넘어, 재외동...
NEWS TOP 5
실시간뉴스
-
[기획 연재 ①] 황제의 방종, 백성의 금욕
-
서울에서 2년, 드라마가 말하지 않는 ‘한국의 계급’
-
“홍콩 반환, 무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
역사 속 첫 여성 첩자 ‘여애(女艾)’… 고대의 권력 판도를 뒤집은 지략과 용기의 주인공
-
백두산 현장르포④ | 용정의 새벽, 백두산 아래에서 다시 부르는 독립의 노래
-
[기획연재③]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북간도 교회와 신앙 공동체의 항일운동
-
백두산 현장르포③ | 지하삼림, 천지의 그늘 아래 살아 숨 쉬는 또 하나의 세계
-
백두산 현장르포② | 폭포 앞에서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
-
[기획연재②]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교육·신앙·항일의 불씨
-
[기획연재①]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문학, 민족, 그리고 기억의 장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