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지) 강효삼
갈수 없는 곳은 고향이 아니다. 추억만 남은것도 고향이 아니다. 고향은 우리가 태줄을 묻고 살면서 고향의 흙에서 물에서 하늘에서 그 혜택을 받는것, 우리의 권리와 의무를 다 할수 있는 곳, 우리의 생명이 존중되고 우리의 존재가 인정받는 곳, 우리 삶의 력사가 있고 우리 삶의 방식이 있고 우리 삶의 개성이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고향에서 꿈을 키워 고향에서 어른이 되여 부모님이 되여 고향의 땅을 다루면서 고향에서 가정을 뭇고 고향을 이어갈 아이들을 낳아 키웠다. 또한 고향에서 한 겨레들끼리 살면서 우리의 말과 글과 풍속과 습관을 자유롭게 행하며 조선족답게 살아왔으니 떠돌이후대인 나에게서 고향의 의미는 참으로 보귀한것이다. 고향이 있어 내가 이 땅에서 조선족으로 살수 있으니 고향이 있기에 우리의 말과 글이 있고 고향이 있기에 우리의 전통과 습관도 있으며 고향이 있기에 우리가 우리로 될수 있지 않았는가! 우리의 력사는 고향을 떠나 더욱 말할수 없으리. 우리 민족의 정착력사를, 우리의 삶을, 우리의 노래를, 우리의 모든 아름다운 시작을… 이제 고향을 버림으로 하여 우리는 자칫 자신을 잃을수가 있다. 고향이 없이 산지사방 흩어져 살아봤기에 우리는 안다. 고향이 우리에게서 얼마나 귀중한가를!
한국 KBS “6시 내 고향”이란 프로에서 몇십년만에 고향을 찾아 향수를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부럽다. 그들에겐 아무때고 고향이 있다. 아무리 고향을 떠나있지만 이미 혈친적으로 뿌리 내려진 고향이 있기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고향을 갈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고향이 있는가? 고향이라고 아무때고 찾으며 사랑할만한 그런 고향이 있느냐말이다. 여기저기 삶의 흔적이 있으니 추억은 있을것이다. 그렇다고 추억 그 자체가 고향은 아니다. 산천은 의구해도 인걸은 없는것처럼 고향이라 찾아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 그것은 이 땅에서 우리의 “고향”은 고향이 아니라 잠시 몸을 붙이고있던 역전이나 다를바 없기때문이다.
고향은 단지 먹고 입고 잠을 잤다는 의미만 아니다. 고향은 고향으로서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뿌리일것이다. 하지만 뿌리를 떠나 노상 떠도는 우리, 제꺽하면 고향을 버리고가는 우리에게서 어디 고향다운 고향이 있는가. 사랑을 줄 곳도 받을 곳도 없이 고향을 주머니에 넣고다니면서는 버리기가 쉽지 가지기가 어렵다. 그리고 애면글면 살다가도 쉽게 외면하고 그만 낡은 물건처럼 버려도 별 섭섭함이 없이 사는 리유는 우리들의 전통과 문화가 이곳에 심겨져있지 않다는것이다. 그만큼 한 민족에게서 문화와 전통은 귀중한것이다. 단지 그때그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았던 의미로밖에 남지 않은 고향, 추억은 있어도 사랑은 없고 아쉬움조차 없는 우리라면 이제 “고향”이란 말은 우리에게서 사라지고있는것이 아닌가.
인류에게서 가장 따뜻하고 친절한 의미는 고향이라 했다. 때문에 고향을 잃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부르고싶고 가고싶은 고향은 어디인가?
고향의 길에서 "길"을 사고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오불고불한데다 수레 한대 지나가면 비켜서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길, 게다가 좌우엔 엎친데 덮치기로 풀이 가득 기생해서 길인지 풀밭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고 웬만큼 비가 와도 길이 온통 엉망이 되여 힘꼴 쓰는 황소를 메워야 겨우 빈수레도 빠져나올수 있던 락후한 농촌의 길들이 새농촌건설붐에 힘입어 하나 또 하나 시대의 문명을 상징하는 세멘트포장길로 탈바꿈하고있다. 오랜 세월 조상들의 념원이 이제 현실이 되였으니 실로 격세지감이라 할가 한국땅에 오랜 세월 가있으면서 장기간 고향에 다녀가지 않은 사람들이 한번 와 보면 놀라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이제 현성에서 향과 진으로 통하는 길은 말할것 없고 향에서 촌, 촌에서 툰까지 통하는 길도 거의가 세멘트포장길로 변한것이다,
나는 이렇게 놀라웁게 변한 농촌의 길, 특히 조선족농촌 길을 볼적마다 우선 그 옛날 고생고생하며 이 길을 걷던 우리네 조상들을 생각한다.만일 그들이 살아서 오늘의 이 길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였을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반겼으련만 이제 그네들은 언녕 저세상 사람이 되였다. 헌데 더더욱 안타까운것은 그네들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기때문에 이런 길에서 향수를 누리지 못한다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이런 길의 향수를 누리지 못한다는것이다. 그들인즉 바로 이제는 농촌을 떠나 대도시로 갔거나 아니면 장기간 한국에 가 로무에 종사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야말로 길은 멋지게 훤하게 잘 닦아졌는데 이 좋은 길을 걸으며 향수 느끼는 조선족촌민들의 모습은 거의 볼수 없어 때론 누구를 위하여 닦은 길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는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옛날 낡은 길에서 빨리 탈출해나간 덕분에 언녕 이 길보다 더 넓고 좋은 길을 걸어다닐것이다. 그런것을 생각하면 다소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길에서 “길”을 련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길에서 “길”을 생각한다는것은 사람이 걷는 길만이 아닌 우리가 지나온 력사의 길을 뒤돌아보고싶다는것이다. 옛삶의 터전을 잃고 망향의 길 걸어 이 땅에 와서부터 우리네 족속들이 개척한 첫 정착의 길로부터 시작하여 갈래 많은 력사의 길, 곡절 많은 시대의 길을 우리는 얼마나 힘겹게 걸어왔던가. 해방을 맞아 난생 처음 제 땅이라 분배받은 그 기쁨의 길로부터 소위 공동부유의 넓은 길이라고 하여 틀린것도 무작정 고집하고 내몰았던 호조조, 합작화, 인민공사 복잡다단했던 길로부터 대채의 길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런 길은 걷고걸어도 가난을 진정코 뿌리 뽑을수 없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듯 호도거리를 포함한 상품경제의 길을 걸으면서, 전면적인 개혁개방의 큰 길을 걸으면서야 가난하던 살림이 훨씬 펴이게 되였다. 길은 갈수록 넓어져 상품경제의 길이 전면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통하면서 조선족은 출국로무의 길, 대도시진출의 길을 거쳐 어제날 가난할 때 감히 상상도 못하던 획기적인 치부의 길로 들어서게 되였다. 하여 더는 락후한 시골의 흙길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고 더 좋은 길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의 이 길을 비우고 떠나버린것이다.
하지만 보다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하여 더 좋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것을 잘못된 처사라고는 할수 없지만 새롭게 변한 길을 보면 볼수록 어제날 길이 없던 곳에 남먼저 길을 내고도 오늘 길이 이렇게 좋아졌는데도 이 길에서 향수하는 겨레들이 많지 않아 아쉽고 또 아쉽다. 출국로무와 도시의 그 좋은 길을 걸을 때는 걸을지라도 이 길에 돌아와 누군가가 계속 걸으면서 명실공히 이 길을 우리의 길로 유지해나갈수는 없는것인가?
그래서 더더욱 길을 보며 길을 사고하고싶다.
지금껏 우리가 걸은 길을 보면 늘 시작은 먼저 또 열렬하지만 종당에 끝까지 닿지 못하고 곧잘 중도에 버리여 누구보다 길을 개척하고 건설하느라 고생하고도 자신은 길을 잃고 길을 찾아 맴돌이친다. 이것이 어쩌면 이 땅 우리 겨레의 “길”걷기가 아닌가? 하다면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어떤 력사의 길인가? 길에서 “길”을 사고하면서 이제 우리는 어느 길을 가야 하는것인가를 사고하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갈수 없는 곳은 고향이 아니다. 추억만 남은것도 고향이 아니다. 고향은 우리가 태줄을 묻고 살면서 고향의 흙에서 물에서 하늘에서 그 혜택을 받는것, 우리의 권리와 의무를 다 할수 있는 곳, 우리의 생명이 존중되고 우리의 존재가 인정받는 곳, 우리 삶의 력사가 있고 우리 삶의 방식이 있고 우리 삶의 개성이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고향에서 꿈을 키워 고향에서 어른이 되여 부모님이 되여 고향의 땅을 다루면서 고향에서 가정을 뭇고 고향을 이어갈 아이들을 낳아 키웠다. 또한 고향에서 한 겨레들끼리 살면서 우리의 말과 글과 풍속과 습관을 자유롭게 행하며 조선족답게 살아왔으니 떠돌이후대인 나에게서 고향의 의미는 참으로 보귀한것이다. 고향이 있어 내가 이 땅에서 조선족으로 살수 있으니 고향이 있기에 우리의 말과 글이 있고 고향이 있기에 우리의 전통과 습관도 있으며 고향이 있기에 우리가 우리로 될수 있지 않았는가! 우리의 력사는 고향을 떠나 더욱 말할수 없으리. 우리 민족의 정착력사를, 우리의 삶을, 우리의 노래를, 우리의 모든 아름다운 시작을… 이제 고향을 버림으로 하여 우리는 자칫 자신을 잃을수가 있다. 고향이 없이 산지사방 흩어져 살아봤기에 우리는 안다. 고향이 우리에게서 얼마나 귀중한가를!
한국 KBS “6시 내 고향”이란 프로에서 몇십년만에 고향을 찾아 향수를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부럽다. 그들에겐 아무때고 고향이 있다. 아무리 고향을 떠나있지만 이미 혈친적으로 뿌리 내려진 고향이 있기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고향을 갈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고향이 있는가? 고향이라고 아무때고 찾으며 사랑할만한 그런 고향이 있느냐말이다. 여기저기 삶의 흔적이 있으니 추억은 있을것이다. 그렇다고 추억 그 자체가 고향은 아니다. 산천은 의구해도 인걸은 없는것처럼 고향이라 찾아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 그것은 이 땅에서 우리의 “고향”은 고향이 아니라 잠시 몸을 붙이고있던 역전이나 다를바 없기때문이다.
고향은 단지 먹고 입고 잠을 잤다는 의미만 아니다. 고향은 고향으로서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뿌리일것이다. 하지만 뿌리를 떠나 노상 떠도는 우리, 제꺽하면 고향을 버리고가는 우리에게서 어디 고향다운 고향이 있는가. 사랑을 줄 곳도 받을 곳도 없이 고향을 주머니에 넣고다니면서는 버리기가 쉽지 가지기가 어렵다. 그리고 애면글면 살다가도 쉽게 외면하고 그만 낡은 물건처럼 버려도 별 섭섭함이 없이 사는 리유는 우리들의 전통과 문화가 이곳에 심겨져있지 않다는것이다. 그만큼 한 민족에게서 문화와 전통은 귀중한것이다. 단지 그때그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았던 의미로밖에 남지 않은 고향, 추억은 있어도 사랑은 없고 아쉬움조차 없는 우리라면 이제 “고향”이란 말은 우리에게서 사라지고있는것이 아닌가.
인류에게서 가장 따뜻하고 친절한 의미는 고향이라 했다. 때문에 고향을 잃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부르고싶고 가고싶은 고향은 어디인가?
고향의 길에서 "길"을 사고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오불고불한데다 수레 한대 지나가면 비켜서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길, 게다가 좌우엔 엎친데 덮치기로 풀이 가득 기생해서 길인지 풀밭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고 웬만큼 비가 와도 길이 온통 엉망이 되여 힘꼴 쓰는 황소를 메워야 겨우 빈수레도 빠져나올수 있던 락후한 농촌의 길들이 새농촌건설붐에 힘입어 하나 또 하나 시대의 문명을 상징하는 세멘트포장길로 탈바꿈하고있다. 오랜 세월 조상들의 념원이 이제 현실이 되였으니 실로 격세지감이라 할가 한국땅에 오랜 세월 가있으면서 장기간 고향에 다녀가지 않은 사람들이 한번 와 보면 놀라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이제 현성에서 향과 진으로 통하는 길은 말할것 없고 향에서 촌, 촌에서 툰까지 통하는 길도 거의가 세멘트포장길로 변한것이다,
나는 이렇게 놀라웁게 변한 농촌의 길, 특히 조선족농촌 길을 볼적마다 우선 그 옛날 고생고생하며 이 길을 걷던 우리네 조상들을 생각한다.만일 그들이 살아서 오늘의 이 길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였을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반겼으련만 이제 그네들은 언녕 저세상 사람이 되였다. 헌데 더더욱 안타까운것은 그네들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기때문에 이런 길에서 향수를 누리지 못한다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이런 길의 향수를 누리지 못한다는것이다. 그들인즉 바로 이제는 농촌을 떠나 대도시로 갔거나 아니면 장기간 한국에 가 로무에 종사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야말로 길은 멋지게 훤하게 잘 닦아졌는데 이 좋은 길을 걸으며 향수 느끼는 조선족촌민들의 모습은 거의 볼수 없어 때론 누구를 위하여 닦은 길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는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옛날 낡은 길에서 빨리 탈출해나간 덕분에 언녕 이 길보다 더 넓고 좋은 길을 걸어다닐것이다. 그런것을 생각하면 다소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길에서 “길”을 련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길에서 “길”을 생각한다는것은 사람이 걷는 길만이 아닌 우리가 지나온 력사의 길을 뒤돌아보고싶다는것이다. 옛삶의 터전을 잃고 망향의 길 걸어 이 땅에 와서부터 우리네 족속들이 개척한 첫 정착의 길로부터 시작하여 갈래 많은 력사의 길, 곡절 많은 시대의 길을 우리는 얼마나 힘겹게 걸어왔던가. 해방을 맞아 난생 처음 제 땅이라 분배받은 그 기쁨의 길로부터 소위 공동부유의 넓은 길이라고 하여 틀린것도 무작정 고집하고 내몰았던 호조조, 합작화, 인민공사 복잡다단했던 길로부터 대채의 길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런 길은 걷고걸어도 가난을 진정코 뿌리 뽑을수 없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듯 호도거리를 포함한 상품경제의 길을 걸으면서, 전면적인 개혁개방의 큰 길을 걸으면서야 가난하던 살림이 훨씬 펴이게 되였다. 길은 갈수록 넓어져 상품경제의 길이 전면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통하면서 조선족은 출국로무의 길, 대도시진출의 길을 거쳐 어제날 가난할 때 감히 상상도 못하던 획기적인 치부의 길로 들어서게 되였다. 하여 더는 락후한 시골의 흙길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고 더 좋은 길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의 이 길을 비우고 떠나버린것이다.
하지만 보다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하여 더 좋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것을 잘못된 처사라고는 할수 없지만 새롭게 변한 길을 보면 볼수록 어제날 길이 없던 곳에 남먼저 길을 내고도 오늘 길이 이렇게 좋아졌는데도 이 길에서 향수하는 겨레들이 많지 않아 아쉽고 또 아쉽다. 출국로무와 도시의 그 좋은 길을 걸을 때는 걸을지라도 이 길에 돌아와 누군가가 계속 걸으면서 명실공히 이 길을 우리의 길로 유지해나갈수는 없는것인가?
그래서 더더욱 길을 보며 길을 사고하고싶다.
지금껏 우리가 걸은 길을 보면 늘 시작은 먼저 또 열렬하지만 종당에 끝까지 닿지 못하고 곧잘 중도에 버리여 누구보다 길을 개척하고 건설하느라 고생하고도 자신은 길을 잃고 길을 찾아 맴돌이친다. 이것이 어쩌면 이 땅 우리 겨레의 “길”걷기가 아닌가? 하다면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어떤 력사의 길인가? 길에서 “길”을 사고하면서 이제 우리는 어느 길을 가야 하는것인가를 사고하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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