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중국)
어릴 때 내가 살던 마을의 어느 한족 부부가 늘 싸움을 했는데 승자는 항상 아내였다. 그 시기에 조선족 여성들이 남편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지만 한족들은 달랐다. 한족들의 경우 남자들이 아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다.
그 한족 부부는 싸운다 하면 동네가 떠들썩하게 싸우군 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싸우다가 아내가 매를 들면 남편은 무서워 밖으로 달아나군 했다. 나는 그 집의 아내가 남편을 밖에까지 쫓아오며 구타하는 장면을 서너 번 목격했다. 아내는 달아나는 남편을 따라잡은 후 한 손으로 남편의 멱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남편의 뺨을 짝짝 소리 나게 때렸다.
그 시기에 한족 남자들이 아내에게 쥐여사는 공처가였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아내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조선족의 경우 여자가 남편을 구타하는 일은 더구나 보고 죽자 해도 없었다.

그런데 개혁개방 후 세상이 달라졌다. 조선족 남자들도 아내에게 쥐여사는 과거의 한족 남자들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간 큰 남자 시리즈까지 나왔다. 반찬 투정하거나 아내에게 말대꾸를 해도 간 큰 남자가 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여자들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1990년대에 연변에서 잠자는 남편을 도끼로 찍어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여자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했으면 남편을 죽였겠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그 여자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고 해도 그 잔인한 살인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
어느 날 퇴근하는데 한 20대의 여자가 길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40대의 남자가 몇 초동안 그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담배 피우던 여자가 그 남자를 쏘아보면서 “보긴 뭘 봐?”하고 꽥 소리 질렀다. 여자의 고함소리에 겁에 질린 남자는 찍소리도 못하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작년의 어느 날 새벽 3시쯤에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여나 창밖을 내다보니 세 청년이 한 청년을 사정없이 구타하고 있는데 한 젊은 녀성이 곁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청년이 맞아서 반죽음이 되여서야 세 청년은 손을 떼고 가는데 그중 한 청년이 구경하던 젊은 여성을 보고 “저쯤 패주면 되니?”하고 물었고 그 여성이 흡족하다는 듯 “만족이요!”하고 대답했다.
작년의 어느 날 밤에 술자리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20대의 세 여성이 한 남성을 주먹으로 치고 발길로 차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금년 여름의 어느 날 밤에 또 한 20대의 여성이 손으로 한 남자를 가리키며 “이 아새끼, 죽여 버린다!”하고 고함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여자가 남자를 구타하는 건 일도 아니다. 이제는 여자가 어린이의 눈알을 뽑기도 하고 자신이 갓 낳은 핏덩이를 가차 없이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한다. 중국에서 남편이나 동거남의 생식기를 잘라버리는 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여자가 남자를 구타하는 것쯤은 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여자가 무섭다. 여자에게 죄를 짓지 말라. 여자를 화나게 하지 말라. 함부로 여자를 건드리지 말라. 섣불리 여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말라. 잠을 자다가 어느 순간에 여자의 가위에 거시기가 잘리거나 여자의 도끼에 죽음을 당할지 모른다.
폭력은 남자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오늘날에는 여자도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한다고 해도 여성들이 남자들과 폭력 따위를 공유해서는 안된다. 남존여비사상이 지배하던 과거에 여자들이 아무리 수난을 당했다고 해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며 그런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더구나 안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남자는 남자다, 여자는 여자답게 온순해야 한다, 이런 뜻이 아니다.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여자도 평등을 주장하며 같이 담배를 피운다면 자신의 건강만 해칠 뿐이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서 평등을 주장하며 같이 폭력을 휘두른다면 결국 감옥행, 자신만 해칠 뿐이다.
그럼 여자들보다 10배, 100배는 더 많고 악렬한 남자들의 천인공노할 폭행은 묵과해도 좋단 말인가?! 단죄하려면 남자들부터 단죄해야 할 게 아닌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남자들의 폭행은 더없이 잔인하고 악렬하기에 본받지 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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