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아프리카 서북부의 나라 모리타니. 이곳에선 여전히 수십만 명이 법적·사실상 '노예'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국제사회가 거듭 폐지를 요구해왔지만,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노예제, 인간 문명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대 중국과 이집트 제국을 거쳐 유럽의 대서양 흑인노예 무역까지, 인류는 오랜 세월 노예를 ‘자산’으로 삼았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노예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지구상엔 아직도 노예가 있다. 2025년 현재, 모리타니는사실상 세계 유일의 ‘노예제 국가’로 남아 있다. 유엔은 반복해서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나라에선 여전히 약 70만 명이 노예로 취급받으며 살아간다.
"노예도 사람이다"…그러나 모리타니에선 여전히 예외
모리타니는 사하라 사막 서쪽 끝, 대서양과 접한 나라다. 인구는 약 480만 명, 그중 상당수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문제는 그중 10명 중 1~2명꼴로 노예 신분이라는 사실이다. 주로 흑인계 하르딘(Haratin) 공동체 출신으로, 아랍계나 베르베르계 상류층에게 세습적으로 종속된 이들이다.
이 제도는 단지 관행이나 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노예들은 주거, 노동, 결혼, 이동의 자유가 없고,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면서도 법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한다.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 접근도 제한된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인 이들은, 평생 그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독립국이 된 후에도…노예제는 ‘체제의 일부’
모리타니의 노예제는 식민지 시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중세 이슬람 왕조부터 시작해 20세기 초까지, 귀족 계층이 흑인 노예를 거느리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프랑스 식민 지배기에도 제도는 본질적으로 유지됐다.
1958년 독립 이후, 표면적으로는 ‘공화국’이었지만, 실질적인 사회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독립 후 수차례 쿠데타가 이어졌고, 권력을 장악한 정치·군사 엘리트는 노예제를 ‘효율적인 노동력 확보 수단’으로 간주하며 사실상 유지했다.
노예제를 폐지한다는 법은 존재하지만, 단 한 건의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유엔도 손쓰지 못하는 이유
유엔은 수차례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노예제 철폐를 권고했지만 모리타니 정부는 미온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뚜렷하다. 이 나라는 세계 경제에서 영향력이 거의 없고, 전략적 이해관계도 크지 않다.
게다가 국제사회가 이 문제에 개입할 실익이 적다고 판단한 이상, 구속력 있는 조치는 나오기 어렵다. 무력 개입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모리타니의 정치·군사 엘리트는 오히려 이런 국제사회의 무관심을 방패로 삼아, 노예제를 체제 유지의 도구로 삼고 있다.
경제 발전 없이 인권도 없다
모리타니가 노예제를 유지하는 가장 깊은 배경에는, 극심한 빈곤과 경제적 낙후가 있다. 사막으로 뒤덮인 국토, 낮은 교육 수준, 불안정한 정치 체계 속에서 ‘값싼 노동력’은 국가의 유일한 자원이 돼버렸다.
결국, 노예제를 없애는 길은 경제와 사회의 구조적 개혁을 동반해야 한다.단순히 법을 만들고 캠페인을 벌인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빈곤 타개와 사회 기반시설 확대, 교육 인프라에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노예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가능한가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고, 민간 차원에서도 인권 운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모리타니 내부에서도 소수지만 노예제 폐지를 외치는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도 만만치 않다.
노예제는 단지 ‘지나간 제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삶을 옥죄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폭력이다.
모리타니에서 노예가 사라지는 그날, 그것은 단지 한 나라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국제사회의 도덕성과 실천력을 입증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그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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