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2(월)
 
[인터뷰=동포세계신문 김용필  편집국장]경기도 안산시 선부동 ‘땟골’은 고려인촌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집주인을 빼고는 세들어 사는 사람이 거의 다 고려인 동포라고 하다. 안산시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5천여명, 그 중 땟골에 2천명 가까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부분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온 사람들이고,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온 사람도 있다.

올해는 고려인 이주 150주년이 되는 해, 한국언론도 고려인을 조명하는 기사를 내고, 국회에서도 고려인을 위한 지원특별법 제정 문제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27일엔 국회에서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회 발족을 위한 세미나도 개최하는 등 관심이 무척 높아지고 있다.

이런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있어 지난 15여년간 현장에서 활동한 동포활동가인 김승력(46)씨를 빼놓을 수가 없다. 김승력씨는 1997년 10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가서 13년간 고려인 지원활동을 펼치고, 2010년 한국에 와서는 한국에 온 고려인을 돕는데 모든 것을 다 바쳐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기자는 지난 1월 3일 오후 안산시 선부동 땟골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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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선부동은 중국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원곡동과 바로 인접한 지역이다. 안산역과 가까운 원곡동은 다문화특구지역으로 지정될만큼 외국인 밀집거주지역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선부동은 외진 곳으로 겉으로 많이 드러나지 않은 곳이다. 고려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땟골’이라는 이름과 함께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마 김승력씨가 2011년 11월 처음 이곳에 와서 고려인을 위한 한글야학 교실을 열고,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고충상담을 해주는 별별상담소를 열게 되면서 외부에 고려인촌의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 온 고려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말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동포들은 한국어 소통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어려움을 겪게 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많고,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지만, 고려인 동포들은 한국말을 할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한국인도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고려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찾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김승력씨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쉬운 일이 아닐텐데 어떻게 해서 고려인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들어보았다.

그는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다녔다. 20대 청년시절 그는 문학도 꿈을 키워갔고, 사회주의, 민족, 통일, 민주주의 등 문제를 놓고 고민도 많이 하게 되면서, ND계열, 즉 레닌주의에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학생운동에 참여를 하였다고 한다.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 사회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하고, 또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그는 1997년 10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고리끼문학관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였다. 마침 우수리스크대학 사범대학에서 한국어강사로 활동을 하게 되어 학비 면제에 약간의 생활비도 보조받으며 생활을 하였다. 1999년 5월경 한국의 민간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재외동포사업부에서 고려인 생활실태조사를 하는데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고려인 사역은 본격화 되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고려인 학생들을 만나지만 고려인 생활 내면을 알기는 어려웠죠, 우리민족서로돕기 의뢰로 고려인 실태조사를 하면서, 고려인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어요.”

우수리스크에서 생활하는 고려인들은 군인들이 사용하고 떠난 군막사에서 생활할 정도로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전기도 끊어지고 물도 안들어오고, 유리창은 깨어져 있고, 거의 피난민과 같은 생활이었죠. 100가구, 200가구 … 엄청나게 많은데, 연해주는 엄청나게 추운 곳이잖아요. 이분들을 어떻게 도울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재외동포사업부는 명칭을 동북아평화연대로 별도 단체를 만들어 지원활동을 펼쳐갔다. 김승력씨도 참여를 하였다. 그리고 2010년 10월까지 꼭 13년 동안 러시아에 살면서 고려인 돕기 활동을 펼쳐왔다.

그런데, 한국에 나와 다시 러시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지만, 러시아비자가 나오지 않아 못들어가고 한국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김승력씨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도 러시아 비자를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정부측에서 한국인들이 러시아땅에 들어와 고려인들을 한데 모아 집단을 이루게 하고 지원활동을 펼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고 내린 조치로 보고 있다.

“그 바람에 러시아에 모든 것을 두고 몸만 한국에 남게 되었죠, 어떻게 보면 오히려 잘 되었다. 이참에 다른 일을 하자, 이렇게 생각을 하였어요.”

러시아에서 13년간 고려인을 도와 온 그의 사역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김승력씨는 러시아에 다시 못들어가게 되자, 강화도의 한적한 시골에 집까지 마련해 두고 그곳에서 글을 쓰며 보낼 참이었는데, 사업을 하는 고려인 친구의 통역을 도와주기 위해 안산에 와보게 되고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고려인 동포들이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렵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고려인을 돕는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쩔수 없는 제 인생의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김승력씨는 말한다. 그는 제일 먼저 고려인 동포들의 상황에 맞춰 땟골에 한글야학 교실을 열고, 상담소를 열고, 여기서 거의 생활하다시피 보내고 있다. 그가 만들어가는 공동체 이름은 『너머』이다.

“국경 너머, 차별 너머”를 함축한 뜻이라고 한다. 또 상담소 이름도 별별상담소이다. “임금체불. 의료문제, 일자리 문제 등 별별 상담을 다 하다보니 별별상담소라고 정했는데, 또 생각해보니 동포들에게 희망을 주는 별 같은 공간이 되게 해야겠다 생각해 별별상담소라고 이름짓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고 묻자. “일반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내주어 유지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고려인 150주년을 맞이하여, 안산시에서도 고려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국회 내에서도 고려인종합지원센터 설립 등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말들이 나오면 으레 여기 저기서 생색을 내며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15년 넘게 청춘을 바쳐가며 고려인 동포 지원활동을 해온 김승력씨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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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돕는 활동 15년 넘게 펼쳐 온『너머』대표 김승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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