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과 더불어 새롭게 인식되는 역사
■ 김철균
대남정찰
아버지가 소속된 조선인민군 제 7 군단은 원산에 도착한 즉시로 긴장한 훈련에 돌입하였다. 훈련은 야간기습, 지뢰제거 및 포위섬멸과 고지점령 등이였는데 어쩐지 이상했다는 것이 아버지의 추억이었다. 조국을 보위하려면 저격전, 진지전 및 참호파기 등이 위주인 것이 상식이었지만 그것과는 정반대인 모양이었다.
한편 아버지네 부대는 가끔씩 밤중이면 원산항에 가서 군수물품 하역작업에도 동원되었었는데 군함에 싣고온 군수물품은 전부 탱크, 대포와 기관단총 및 따발총과 탄약 등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어딘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바로 그럴즈음 1949년 5월초, 한국군내 2명의 대대장이 각각 자기의 대대를 이끌고 월북귀순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평양방송을 통해 “남조선 괴로군이 북진통일을 부르짖고있다”는 것도 자주 듣군 했다.
남조선군이 북진해온다면 인민군은 반드시 그들을 저격하는 훈련을 해야할텐데 왜 훈련하는 건 그것과는 정반대지?
아버지한테는 그때로부터 전쟁은 기필코 터진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밤, 아버지와 기타 2명의 사병한테 특수명령이 하달됐다. 즉 그날밤으로 38선을 넘어가 원주까지 통하는 교통요도의 다리와 한국군 진지배치 등을 정찰해오라는 것이었다.
그날밤 밤의 장막을 이용해 아버지네 일행 3명이 38선을 넘어 산발을 타고 약 20리 정도 걸었을가 할 때 날이 희붐히 밝아왔고 앞에는 고향의 두만강과 거의 비슷한 폭으로 됨직한 강이 보이였고 다리도 있었다. 아버지네 일행 정찰병들은 다리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그 주위의 병력배치를 살폈다. 얼핏 봐서는 다리 양측에 그저 4명의 보초만 있을뿐 토치카같은 강한 화력망은 없어보였다.
아버지네 일행이 약 한시간 정도를 숲속에 엎드린채 주의깊게 살폈으나 다리쪽에서는 여전히 별다른 동정이 없었다.
“남조선 군대의 경비가 몹시 허술해 보입니다.”
“아니,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 보이지 않는 초소가 꼭 어디에 있을거야.”
동료의 말에 아버지는 좀 더 살펴보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가 과연 얼마후 빈 통조림통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다리주위의 사처에서 한국군 사병들이 모여드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왁작지껄 떠들면서 소란스러웠다. 아마 아침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대충 짐작해도 20여명은 푼히 되는듯 싶었다. 전시도 아닌데 다리 하나를 놓고 군인 20여명이나 지키다니? 이 다리의 전략적위치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네 정찰병들은 보다 더 지켜보기로 했다. 화력망을 더 정확히 파악해야 했고 강의 수심도 알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친 한국군 사병들은 재차 어디론가 제각각 사라졌다. 다리위는 또 새벽녘처럼 고요했다.
그러자 동료 정찰병 2명은 또 이젠 그만 관찰하고 돌아가자고 졸라댔다. 아버지 역시 더 이상 알아낼 방법이 없는지라 돌아가기로 했다.
바로 이 때 다리 남쪽으로부터 군인들을 가득 실은 군용트럭 2대가 나타나더니 다리목에 와서 멈춰섰고 곧바로 그 군인들이 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이는 한국군측에서도 전쟁에 대해 뭔가 낌새를 챘으며 이 다리만은 결사적으로 리용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꼭 이 다리에 대해 더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직접 나섰다. 아버지는 기타 2명의 동료한테 뭔가를 지시하고는 자신이 직접 모험하기로 작심했다. 아버지는 숲에 몸을 숨기면서 강가로 접근한 후 돌을 던져 수심의 깊이를 관찰, 다행히도 수심은 사람의 키를 넘을 것 같지 않았다.
이어 아버지는 교두보를 지키고 있는 한국군 초병을 향해 권총 두방을 쏘았다. 한국군 화력망을 시탐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가 한국군 토치카들에서 불을 내뿜었는데 교두보에 있는 토치카 말고도 산기슭의 여러 군데 보이지 않는 화력망이 배비돼 있었다. 아버지는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는 그 토치카들의 위치를 그려넣었다.
한편 숲속에 숨어있던 아버지의 동료 2명도 총을 쏘며 아버지를 엄호했고 아버지는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며 산등성이에 매달렸다.
이어 밤이 되자 아버지네는 강을 건너 계속 남으로 향하면서 교통요도와 한국군의 막사, 포진지 등을 정찰, 원주시가지가 보이는 산마루에 도착한 후 다시 귀로에 올랐다.
그것이 바로 6.25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 중순경이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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