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장기화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비상 플랜(B계획)’을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건설된 길이 약 1200km의 동서(東西) 송유관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우회로’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에 따르면 이 송유관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구축된 시설로, 아라비아 반도 동부 유전지대에서 서부 홍해 연안 도시 연부(얀부·Yanbu)까지 연결된다. 최근 연부 항구에는 원유 선적을 기다리는 유조선들이 대거 집결하고 있으며, 현재 수출 물량은 미·이란 충돌 이전의 절반 수준이지만 과거 대비로는 약 4배까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 송유관이 사실상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라이스대 에너지연구소의 짐 크레인 연구원은 “이 동서 송유관은 지금 와서 보면 매우 결정적인 인프라”라며 “이 파이프라인이 없다면 미국이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해협 호위를 더욱 강하게 요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안정 효과도 거론된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크리스톨에너지의 캐럴 나흘레 최고경영자(CEO)는 “대체 수송로는 시장을 진정시키고, 해당 지역의 원유 수출이 완전히 막히지 않았다는 신호를 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연부 항구와 송유관에 지속적으로 부담이 가해진다면 이는 곧 분쟁이 한 단계 더 격화됐음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향후 시장의 핵심 변수는 두 가지다. 우선 최근 수요 급증으로 하루 최대 400만 배럴을 선적하는 사례까지 등장했지만, 물류 비용 상승과 운송 부담이 커지고 있다. 또 하나의 변수는 연부를 오가는 선박들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다.
특히 이 해협 인근에서 활동하는 예멘 후티 반군의 움직임이 결정적 변수로 떠올랐다. 크레인 연구원은 “후티 반군은 사실상 사우디의 홍해 원유 수출에 대해 ‘거부권’을 쥔 상황”이라며 “이들이 이란을 지원하며 또 다른 수송로까지 봉쇄할 경우, 국제 유가는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의 캐런 영 연구원도 “이 송유관이 하루 700만 배럴 수준까지 안정적으로 수송할 수 있다면 글로벌 시장의 ‘압력 해소 장치’가 될 것”이라면서도 “결국 관건은 항만 적재 능력과 시설 안전”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동 긴장이 단기간 내 완화되지 않을 경우, 이 동서 송유관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또 다른 병목 지점에서의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에너지 시장 변동성은 한층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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