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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정치권은 왜 다시 야스쿠니로 향하나…전후 81년에도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 허훈 기자
  • 입력 2026.08.1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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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패전일을 맞아 다시 논란이 된 야스쿠니신사와 일본의 전후 역사인식 문제를 형상화한 AI 생성 이미지. [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일본의 패전일인 8월 15일, 일본 정치권 인사들이 다시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직접 참배하지 않고 공물 비용을 봉납했지만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 등 현직 각료와 자민당 주요 인사들이 참배하면서 주변국의 반발을 불렀다.


전쟁이 끝난 지 81년이 지났지만 일본에서는 왜 침략전쟁과 전쟁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 배경에는 일본의 전후 처리와 역사기억이 형성된 과정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는 패전 직후 전쟁 책임 청산이다.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는 천황제를 존속시켰고 쇼와 천황도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도쿄재판 등을 통해 책임이 군부와 일부 정치 지도자에게 집중되면서 일본 사회가 침략전쟁에 어떻게 동원됐는지에 대한 성찰은 상대적으로 제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둘째는 ‘피해의 기억’이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과 도쿄 대공습은 막대한 민간인 희생을 낳았고 일본의 집단기억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벌인 침략과 식민지배가 함께 기억되지 않을 경우 ‘가해국’보다 ‘전쟁 피해국’이라는 인식이 강해질 수 있다.


셋째는 냉전이다. 미·소 대립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대일정책은 일본을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경제·안보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공직에서 추방됐던 일부 인사가 복귀했고, 훗날 총리가 된 기시 노부스케 등 보수 정치인들도 정치권 중심부로 돌아왔다.


넷째는 야스쿠니신사다. 1978년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되면서 정치인의 참배는 단순한 전몰자 추모를 넘어 역사·외교 문제로 확대됐다. 부설 전쟁박물관 유슈칸의 역사 서술 역시 일본의 침략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둘러싸고 논란을 불러왔다.


다섯째는 교육과 세대교체다. 일본에서는 교과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난징대학살, 강제동원 등의 표현을 둘러싼 논쟁이 반복돼 왔다. 전쟁 경험 세대가 줄면서 젊은 세대가 역사를 접하는 학교와 언론, 인터넷 등 공적 기억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다만 일본 사회 전체를 하나의 역사관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일본 내부에도 침략과 식민지배의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으며 역대 정부도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등을 통해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패전일마다 야스쿠니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일본의 전후 역사인식이 여전히 현재의 정치 문제임을 보여준다. 결국 핵심은 자국민이 겪은 전쟁의 고통과 일본이 다른 나라에 가한 침략의 고통을 하나의 역사 속에서 함께 기억할 수 있느냐에 있다. 전후 81년에도 야스쿠니가 동아시아 역사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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