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과 더불어 새롭게 인식되는 역사
■ 김철균
아버지가 감추고 있었던 비밀
“이 애비는 너 엄마한테 잘해주지 못했다. 미안한 일도 많이 했다. 그러니 후에 엄마한테 잘해드려라. 이 애비의 부탁이란다…”
어렸을 때 나는 이러한 아버지의 말씀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다. 그냥 술주정을 부리고 밥상을 뒤엎고 하여 미안하게 생각하는줄로만 알았었다. 헌데 크면서 타인들한테서 듣고 또한 지난 세기 80연대에 조선으로부터 누나라는 분까지 찾아오면서 다시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노라니 어디 뭔가 짚이는데가 있었다.
일찍 1950년 가을, 교하에 있는 조선인민군 제2야전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버지의 상처는 너무 중한 건 아니었으나 얼마든지 퇴역할 수는 있을 정도였다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퇴역은커녕 상처가 낫자마자 재차 탄원해 전선으로 나갔다 한다. 지어 교하에 입원해있는 동안 처자가 있는 집으로 와보지도 않았고 편지 한통 쓰지도 않았었다. 그러니 맘에 없는 엄마와 사는 것이 전선으로 나가기보다도 싫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전선으로 다시 나간 아버지었건만 그 뒤 많은 전투도 겪었으련만 용케도 아버지의 몸은 번마다 적탄을 피해갔으며 1953년 7월 27일 정전이 될 때까지 크게 부상도 당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헌데 전쟁이 끝났건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정전 이듬해엔가 나의 넷째할아버지와 다섯째할아버지가 조선으로 나가 아버지를 붙잡아 끌고 왔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가 조선에서 어떻게 살고 있었고 또한 노인네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끌고 왔는지는 알 바가 없다. 노인네들이 말하지 않았고 아버지 또한 함구무언하니 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다투거나 싸울적마다 어머니는 “왜 조선에서 계속 살거지 돌아왔는가”, “당신은 몸만 집에 있지 속은 조선에 가있다”고 하면서 하소연하군 했었다.
하다면 당시의 상황을 분석해보면 아버지의 생각도 그렇게 되리라는 짐작이다. 당시 조선상황을 놓고 보면 많은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죽은지라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터라 다리 한쪽이 없는 잔페군인도 새파란 처녀한테 장가를 갈 수 있었다고 하니 가뜩이나 집으로 돌아오기 싫어하는 아버지로 놓고 보면 이른바 “봉건식 혼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한 “자유혼인”을 지킬 수는 없었다. “봉건통”이라고 할 수 있는 넷째할아버지와 다섯째 할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은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어머니곁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은 항상 조선의 그 여자분한테 있었을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왜 자꾸 술마시면 주정하고 또 어머니한테 트집을 잡군 했는가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며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고 저주하기 앞서 아버지가 봉건혼인의 희생품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아 생기게 된다.
또한 아버지 역시 나이가 썩 많아진 뒤에는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기기도 했고 나한테 어머니에 대해 많이 말해주기도 했다. 어느 정도 양심적 가책도 느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에 두고온 그 여자분한테도 양심적 가책을 느끼긴 마찬가지었을게 아닐까? 같은 남자로서, 또한 아들로서 나 역시 당시 아버지의 심정에 대해 헤아려 보게 되기도 한다. 말그대로 아버지를 나쁘다고 할 수 없는가 하면 어머니를 나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조선에 있었다는 그 여자분을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특수한 시대에 생겨난 특수한 혼인비극이라고 해야 가장 정확할 것 같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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