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슈퍼축구팬의 수기 (8 )이 내 인생에서의 하나의 이정비
■ 허 헌
중국축구협회 전국축구팬좌담회에 참가했던 나날

많은 사람들이 얘기가 좀 길어지다보면 의례 자기 자랑이 나오기 마련이다. 제 잘난 멋에 산다는 말과 같이 자신의 부족점을 감추고 우점만 골라 자랑하는 본성은 나를 포함해 누구나 다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도 한 때 날린 남자야”란 한국가요에서 반영된 가사구절처럼 날린 시기는 한 시기뿐이고 날리지 못한 인생이 대부분이다. 좋았던 시기를 생각하면서 부족하거나 어려운 인생을 보내고 있다면 이 노래의 가사는 너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나도 한 때 날린 남자야”란 가사에 맞춰 내가 “날리던 지나간 기억”들을 더듬어 되풀이하려고 보니 어쩐지 벌써부터 가슴이 훌렁거린다.
치과의사로 일한지도 어느덧 지구의 자전으로 태양주위를 돌고 돌아 40년 세월이 흘렀지만 항상 들뜬 마음과 생기로 넘쳤던 나로서는 지루하게 치과의사로만 살아온 것만은 아니었다.
20대에는 음악예술을 해보았고, 30대에는 장사를 해보았으며, 40대에는 취미로 낚시와 축구에도 참여해 보았는가 하면 50대에는 연변 축구팬협회 회장직까지 맡아보기도 했다.
한편 음악예술은 중도포기를 했고 장사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다보니 부모와 형제들에게 경제적 타격과 정신적 고통만 안겨주었고 나 자신은 또 삶의 용기마저 잃었었다.
그러다가 이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면 축구팬협회에서 활동할 때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고 그 때는 확실히 나 역시 날린 것 같다고나 할까?
1999년 8월, 연변 축구팬협회에 가입, 이듬해 협회 부회장으로 발탁……2010년 연변 축구팬협회 회장ㅡ 축구팬협회의 일개 말단회원으로부터 10년만에 회장직에까지 오르게 된 나였다. 헌데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해 10월, 당시 김광주 감독이 이끄는 연변팀이 한창 갑급의 강자들을 꺾으며 승승장구(최종 갑급 3위)하고 있을 때인 어느날 갑자기 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허헌 회장이십니까? 여기는 주 축구협회입니다.”
“예, 제가 바로 허헌입니다.”
“예, 중국 축구협회로부터 전해온 긴급통지로서 북경에서 전국 축구팬좌담회의가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허회장이 연변축구팬을 대표하여 북경으로 가야 할까 봅니다.”
뭐라?! 이게 무슨 자다가 콩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내가 뭐 수도 북경에 가서 중국 축구협회에서 조직하는 회의에 참가하게 되다니…
사실 역대적으로 중국 축구협회에서 축구팬대표를 초청한 일은 전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축구팬협회 회장으로 추대된 해에 운 좋게도 그런 영광이 차례지다니. 이게 꿈인가? 아니면 생시인가?…
1
2010년 10월 12일, 내가 앉은 보통 쾌속열차는 제시간에 맞춰 북경을 향해 연길역을 떠났다. 나는 오랫동안 침대석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창곁의 의자에 않아 창밖을 내다보며 한없는 흥분에 잠겼다. 그 순간, 차창밖을 언뜻언뜻 스쳐지나는 가을의 경치도 이내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지어는 내가 기차에 앉았다는 것마저 망각될 정도었다.
한편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즉 연변의 축구팬 대표라는 막중한 책임감이 나의 두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했다. 북경에 간 후 나의 일거일동이 전부 연변축구팬들의 위망과 연관되겠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디 북경으로 가십니까?”
앞에 앉았던 점잖게 생긴 손님이 문득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예, 그렇습니다.”
“북경에는 무슨 일로 가는지요?”
그러자 나는 더는 에돌지 않고 곧이 곧대로 “중국 축구협회의 초청으로 회의하러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대뜸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럼 무슨 사업을 하고 계시는지요?”
“예, 올해부터 연변 축구팬협회를 맡아하고 있는데 허헌이라고 합니다.”
“아, 정말 대단합니다. 저도 사실은 연변축구를 사랑하는 축구팬입니다.”
손님은 진짜 반가워하였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우리 침대칸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 없이 서로 자기가 갖고 온 술과 반찬들을 내놓았다.
바로 이때 윗층 침대에 있던 꽤나 나이가 있는 부부로 돼보이는 두분이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며 알은체를 했다.
“위에서 듣고 보니 선생님은 참 좋은 일을 하는 분이시구만요. 실례이지만 우리 함께 술이나 한잔 합시다.”
그러자 앞좌석의 손님과 나의 대답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예, 그럽시다.”
술이 몇순배 돌고 있을 때 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 지금 어디서 뭘하십니까?”
나의 큰 딸이 광주로부터 걸어온 전화였다.
나의 큰 딸 허리나와 작은 딸 허영미는 광주에 있는 한국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둘 다 인물체격이 나무람할 곳이 없다.
“오, 내딸 리나구나. 아빠는 지금 중국 축구협회의 초청으로 연변축구팬을 대표하여 북경으로 회의하러 가는 중이란다.”
나의 말은 어느덧 술기운으로 흥분되어 있었다. “아버지, 정말 대단합니다. 축하합니다.”
이렇듯 기쁜 일이었건만 어쩐지 큰 딸은 울고 있었고 나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 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보고 싶다구? 너는 서로 사랑하는 남자친구 그리고 또 동생 영미와 함께 있겠는데 그리움은 나보다 더 할까?…
2

(전국축구팬 대표좌담회에 참가하였을 때 남긴 기념사진)
10월 13일, 드디어 북경에 도착, 북경역 출입구를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타니 10분도 안되어 북경시 동성구에 있는 중국 축구협회에 도착했고 건물 출입문옆에 중국축구협회라는 작은 간판이 어슴프레 눈앞에 안겨왔다. 거리는 조용하였으며 좀 오래된 건물에 8층으로 된 중국축구협회 청사였다. 좀 실망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찌 생각하면 소박한 건물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출입문을 떼고 들어서니 보안인원이 다가오며 어디에서 오셨는가고 물었다. 이에 내가 “연변에서 온 대표”라고 대답하니 보안인원은 차렷 자세를 취하더니 거수경례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어 그 보안인원은 엘리베이터에 나를 안내하고는 8층까지 동행했다가 사업인원한테 소개한 뒤에야 자리를 떴다. 사업인원은 나한테 악수를 청하며 “중국축구협회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대표께서는 제일 먼저 온 첫 손님입니다”라고 하며 나한테 차물을 권했다.
첫 손님이라구? 하긴 그럴 수밖에. 오후 4시까지 집결하라는 통지를 받았지만 내가 오전에 도착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30분이 지났을가 했을 때 두번째 손님이 도착, 젊은 나이로 보였지만 꽤 성숙된 것 같았다. 그는 한국의 “마귀감독” 리장수가 거느리는 광주항대에서 온 축구팬 대표였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말을 번다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통하는데가 있었던지 우리는 누구의 제의라 없이 식당으로 발길을 옮겨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우리는 함께 주위를 거닐었다. 그 와 중 문득 눈앞에 뜻밖에도 삼국연의의 명장 관운장의 동사이 우뚝 솟아있는게 아니겠는가! 나는 절로 감탄이 터져나왔다. 선량하고 남자답게 의리를 중히 여기는 대단한 장군의 동상이었다.
오후 3시가 되자 전국 29개 지구에서 온 축구팬 대표들이 하나 둘씩 모이었고 풋면목이었지만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경기장에서는 서로 “적수”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서로 친구마냥, 또한 의리를 중히 여기는 관운장처럼 의협심이 강한 친구처럼 되여가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되니 우리는 중국축구협회의 전용버스에 올라 하북성 향하에 있는 중국축구협회 훈련기지로 향하였다.

(중국축구협회 하북성 향하훈련기지에서 남긴 기념사진, 오른쪽 네번째 사람이 필자)
출발한지 2시간만에 향하에 있는 중국축구협회 훈련기지에 도착하자 기지의 1일자인 위주임이라는 분이 직접 마중나와서는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어 그는 우리가 투숙할 호텔방을 배치, 한개 방에 2명씩 들게 되어 나와 광주에서 온 대표가 함께 한방에 들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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