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약해도 여권만큼은 당당했다…청나라 여권의 뜻밖의 역사
[인터내셔널포커스] 188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광둥성 출신 중국인 노동자 황화요(黄华饶)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청나라 여권을 발급받았다. 오늘날처럼 손바닥만 한 책자가 아니었다. 가로 27.3㎝, 세로 42.6㎝에 이르는 커다란 종이 문서였다.
여권에는 사진도 없었다. 대신 키와 얼굴빛 등 신체적 특징을 글로 적어 신분을 확인했다. 사진 기술은 이미 존재했지만 당시 여권에는 아직 사진 부착이 일반화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부분은 여권에 담긴 외국 관리들을 향한 요청이다. 소지자의 신분을 확인해 통행을 허용하고, 조약에 따라 보호하며, 부당하게 방해하거나 지체시키지 말라는 취지였다.
당시 청나라의 처지를 생각하면 제법 당당한 요구였다.
19세기 후반 청나라는 두 차례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뒤 서구 열강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했다. 항구와 무역에서 외국의 영향력이 커졌고, 외교적 입지도 크게 흔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