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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코로나19 누적환자 500만 명 넘겨
    (사진=신화사 홈페이지 캡쳐)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9일,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이 발표한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동부 시간으로 9일 9시 36분(한국 시간 22시 36분)까지 미국의 코로나19 누적확진자는 500만 603명이었고 누적사망자는 16만 2441명이 되었다고 뉴욕에서 중국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400만명에서 500만명에 이르기까지의 시일은 17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를 두고 미국 유행병 학자들은 현재 미국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새로운 단계>에 처해 있으며 코로나19가 극히 광범위하게 만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현재 미국에서 누적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주로는 캘리포니아 주로서 확진자가 55만 5797명이었고 다음 버금으로 확진자가 많은 주로는 폴로리다 주로 확진자가 52만 6577명이었다. 이 외 확진 사례가 40만명을 넘는 주로는 텍사스 주, 뉴욕 주였고 확진자가 18만명을 넘는 주로는 조지아 주, 일리노이 주, 애리조나 주와 뉴저지 주였다. 그리고 미국의 유행병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세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특점이 있었다. 첫 번째, 확진사례 증가속도가 느리고 사망사례가 지속 상승하고 있었다. 두 번째,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만연되고 젊은 군체의 감염사례가 많은 비율을 점하고 있었다. 세 번째, 백신에 대해 심중하게 낙관해야 한다. 코로나 19 대응과업은 여전히 험준한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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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0
  • 광복 75주년 재일동포 특집콘서트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 개최
    [동포투데이]재외동포재단(이사장 한우성)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재일동포들의 희생과 헌신을 재조명하는 특집콘서트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를 개최한다.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는 대한민국의 독립과, 6.25전쟁, 산업화와 IMF 극복 등 조국의 위기와 시련이 있을 때마다 누구보다 앞장 서 헌신했던 재일동포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기리고, 이들의 애국의 마음과 8.15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될 예정이다. 콘서트를 주관하는 KBS는 8.15 광복절 방송에 걸맞은 웅장한 세트 구현을 통해 다양한 테마가 있는 다큐적 영상구성과 프레젠터, 대규모 무대로 입체감 있게 재일동포를 조명하여 감동을 더할 계획이다. 한우성 이사장은 “누구보다 조국을 위해 앞장섰던 재일동포들의 역사를 통해 5200만 내국민과 750만 재외동포가 하나가 되고, 재외동포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8.15 광복 75주년 특집콘서트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에는 배우 박성웅, 가수 인순이, 박정현, 김호중, 폴킴, 재일동포 국악인 민영치 등이 출연하며, 코로나 여파로 인해 오는 13일 무관중 녹화로 진행되고 15일 저녁 5시 30분부터 6시 55분까지 KBS 1TV를 통해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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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0
  • 中 내몽골 선페스트 확진자 사망, 조기경보 발령
    [동포투데이] 8월 8일 내몽골자치구 바얀눌르시 보건건강위원회에서 발표한 소식에 따르면 2020년 8월 6일 한 환자가 포두의학원 제1부속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8월 7일 새벽 환자는 장기부전으로 구급을 거쳤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 숨졌다. 자치구와 포두시전문가팀은 회진을 거쳐 환자가 선페스트(腺鼠疫)에 걸렸다고 확진했다. 현지 당국은 “자치구 페스트 통제 응급 방안(2020년판)”과 “내몽골 자치구 페스트 조기 경보 실시 방안”의 요구에 따라 페스트 방역통제 3급 조기 경보를 발령했다. 현재 방역당국은 해당 방역통제 사업을 전면적으로 낙착하고 7명의 밀접접촉자에 대해 집중 격리 역학 관찰을 하고 예방성 약품을 제공하였으며 페스트핵산PCR검진을 하였다. 현재 발열 등 이상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페스트 핵산 PCR 검진에서도 음성으로 판정 났다. 페스트는 세균으로 유발되는 독성이 강한 전염병이다. 일단 발병하면 그 상황이 심각하고 치료기를 늦추면 급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 항생제로 페스트를 치료할 수 있어 조기에 사용하면 사망률을 대폭 낮출 수 있다. 페스트는 쥐가 벼룩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또 직접 호흡도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전파된다. 전형적인 증세는 다음과 같다. 1. 선페스트:발열. 대부분이 39도 이상의 고열이 나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두 다리 사이) 또는 기타 부위에 몹시 아픈 종양이 생긴다. 2. 폐페스트: 발열, 흉통, 호흡곤란, 각혈 또는 기침에 피가 섞인 거품 가래. 이는 페스트에서 비교적 심한 폐페스트로서 병상이 심하고 전파속도가 빠르다. 3. 기타 유형: 피부 페스트, 눈 페스트, 위장도 페스트 등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일단 자기가 페스트에 걸렸다고 의심이 가면 확정 여부를 막론하고 즉각 다른 사람들과 멀리하고 단독으로 방에서 격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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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9
  • 레바논 대통령, 외부세력 베이루트 항 습격가능성 제기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베이루트에서의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7일, 레바논 대통령 미셀 오언은 수도 베이루트 항구구역의 폭파사건은 외부세력의 습격으로 인한 것이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일, 레바논 대통령부에서 주최한 브리핑에서 미셀 오언 대통령은 현재 폭발원인에 대한 조사는 폭발물이 어떻게 항구 창고에 진입되었는가에 집중되는 한편 폭발사건은 방심으로 인한 것인가 아니면 미사일 혹은 폭탄이 <외부개입>으로 들어온 것인가 하는 등 몇 개 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계속하여 미셀 보언은 현재 그는 프랑스 대통령한테 폭파 순간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요구, 사건 발생시 비행기 혹은 미사일의 출현여하를 확정하려고 한다고 했다. 만약 프랑스 측에서 사진을 제공할 수 없다면 기타 국가에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하는데 따르면 이번 폭발로 지난 7일까지 154명이 사망하고 약 5000명이 부상당했으며 수십 명이 실종되었다. 그리고 이 폭발로 약 3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집을 잃었으며 유엔 아동기금회의 추측에 따르면 약 난민 중 약 8만 명은 아동이었다. 한편 구체적인 폭발원인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몇 명의 레바논 관원들에 따르면 2014년부터 많은 양의 질산암모늄이 베이루트 항구 구역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현재 레바논 당국은 7명 베이루트 항 관원의 은행계좌를 동결한 동시에 이들한테 출국금지령이 내렸으며 이 중에는 베이루트 항 총재 쿠레툼과 레바논 세관장 타셀 등이 있었다. 현재 베이루트 항구 구역 폭발사건으로 체포된 이는 16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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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9
  • 英 언론, 갈수록 승격되는 미국의 반중국 전략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영국 언론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본토와 홍콩 관료들을 제재하고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유명한 기술 기업들과 사업을 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반중국 전략이 한층 더 승격되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7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7일 캐리람 홍콩 특별구 행정장관을 포함한 중국 본토와 홍콩 관료 11명을 제재했다. 기사는 홍콩 관료들에 대한 전례 없는 제재가 있기 직전 미국 기업들이 위챗과 틱톡 등 중국 기업과 사업 하는 것을 금지하는 두 가지 행정령을 공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두 가지 움직임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한층 더 승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아시아 문제 수석보좌관이었던 맥아 이븐은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적 대결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반면 중국은 화목하게 지내려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조치를 취하기 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최근 중국과 미국 관계가 수교 이후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또 미국의 코로나19 유행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베이징이 "중국 바이러스"를 전파했다고 반복적으로 비난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과의 경쟁을 앞두고 끊임없이 하락하는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국 압력을 계속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 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틱톡 사용 금지 명령에 관련해 "매우 충격적"이라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위챗의 모기업인 텐센트도 위챗 사용 금지 명령을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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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9
  •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전 수명의 미국인 체포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일전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카(Alexander Lukashenka)는 최근 벨라루스가 수명의 미국공민을 체포, 이들은 미 국무원과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고 민스크에서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보도는 벨라루스 언론을 인용, 벨라루스에 체류하고 있던 적지 않은 미국인들은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 전에 국가의 안정을 파괴하는 음모를 꾸몄으며 이들의 아내는 미국 국무원에서 근무하는 여직원들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알렉산드르 루카셴카 대통령은 지난 6일, 회의를 주최하여 대통령 선거 기간 어떻게 사회 안전을 확보하겠는가 하는 것을 토론하였다. 그리고 8일, 벨라루스 국민회의 대표원(의회 하원) 결의를 통과시켜 8월 9일 대통령 선거를 거행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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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9
  • 中 국내 최대 직경 해저터널 전면 관통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7일, 중신그룹(中信集团)이 투자하고 중국 철도터널 설계시공 주식 유한회사가 도맡은 중국 내 최대 직경의 월해 해저터널 산터우 하이완(汕头海湾) 서쪽 라인 터널이 관통되었다고 8일 중국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지난 5월 16일, 동쪽 라인 터널이 관통된 후 이 프로젝트의 또 하나의 중대한 절점으로 되고 있으며 산터우 하이완 터널이 성공적으로 전 라인에 거쳐 관통을 실현했음을 보여준다. 산터우 하이완 터널은 전반 길이가 6680미터, 이 중 해저터널 구간은 3047미터였으며 왕복의 6차선이었고 설계 시속은 60킬로미터였다. 작업시 해저구간은 각각 15.01미터와 15.03미터가 되는 슈퍼 직경의 실드 굴진기(盾构机)로 시공하였다고 한다. 그 중 중국철도 터널국과 중국철도 장비국 및 중신중공업이 공동으로 연구제작한 중국의 첫 15.03미터의 슈퍼 직경 실드 굴진기는 8도 지진 열도구地震烈度区) 등 시공 <금지구>에서 660일이나 견지하면서 원만하게 임무를 완수하기도 했다. 산터우 하이완 터널은 중국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진 열도구에 건설된 해저터널로서 종합적 난항도가 극히 컸는바 이 건설현장을 여러 번 찾은 중국공정원 첸치후(钱七虎) 등 전문가들은 산터우 하이완 터널을 두고 <세계 급 도전성 프로젝트>라고 칭했다고 한다. 한편 건설과정에서 중신그룹과 중국철도 터널국은 전문 굴진기술 국가중점 실험실 및 현장 실험실을 설립, 여러 차례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공략 세미나를 조직했으며 전문 기술인원들은 선후로 고석군 지층(孤石群地层), 고점도 연토 지층(高粘度软土地层) 굴진, 장거리 천복토(浅覆土) 고수압 굴진 등 세계급 시공난제를 공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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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9
  • 中 항저우 아내 '토막살해'한 남편 체포
    [동포투데이] 8월 6일 항주시 인민검찰청은 고의살인 혐의로 쉬궈리(许国利)에 대하여 체포를 허가하였다. 2020년 7월 5일 새벽 쉬궈리는 가정생활 갈등을 겪던 중 항주시 강간구(江干区) 자택에서 아내가 잠든 틈을 타 살해한 후 시체를 토막내 여러 곳에 나누어 유기하고 부분적인 신체 조직은 변기를 통해 정화조로 흘려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 관영 CCTV 보도에 따르면 7월 30일 항주시 공안국은 고의살인 혐의로 쉬궈리에 대한 체포를 신청하였다. 항주시 인민검찰원은 심사를 거쳐 쉬궈리는 범죄 수단이 잔인하고 성질이 악랄하며 고의살인죄 혐의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8월 6일 체포 신청을 허가하였다. 7월 6일 20시 07분 항주시 강간구 공안분국은 라이 씨 여성의 실종 신고를 받았다고 항주시 공안국은 통보하였다. 경찰은 아파트 단지 내 6개동 1만여㎡ 등 공공장소의 은밀한 부분에 대하여 전후로 4차례 이 잡듯이 수색하였다. 전담팀 기동대는 정화조에서 뽑아올린 38차량의 분뇨에 대하여 세척하고 걸러낸 결과 인체조직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며 DNA 검식 결과 라이 씨의 인체조직으로 판명되었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경우 라이 씨는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녀의 남편인 쉬궈리의 범죄 혐의가 명확해졌다. 경찰조사에서 쉬궈리는 가정생활 갈등으로 아내 라이 씨에게 불만이 쌓인 자신은 7월 5일 새벽 집에서 라이 씨가 잠든 틈을 타서 그녀를 살해하고 토막 내서 정화조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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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9
  • 인도 여객기 착륙 사고로 두동강… 18명 사망
    ▲현지 방송에 따르면 여객기는 활주로를 벗어난 후 두 동강이 났으며 활주로 도처에 여객기 잔해물들이 널려 있었다.ⓒ신화사 [동포투데이] 인도 에어인디아 익스프레스 소속 보잉 737 여객기가 7일 저녁 인도 남부 케랄라주 캘리컷 국제공항에서 착륙하던 중 활주로를 벗어나는 사고가 발생해 적어도 18명이 사망하고 123명이 부상했다. 여객기에는 10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84명의 승객과 7명의 승무조 인원이 탑승해 있었다. 현지 시간으로 7일 저녁 7시 40분경, 여객기가 캘리컷 공항에서 착륙도중 활주로를 벗어나 약 9미터 깊이의 비탈길로 추락했으며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 인도 터러스트통신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고로 이미 두 명의 비행사를 포함한 18명이 사망하고 123명이 부상했으며 그중 15명은 중상을 입었다. 사고 후 모디 인도 총리 등 여러 명 정계요인들이 여객기 사고에 애통함을 표시하고 사망자 가족들에 대해 위문을 표시했다. 동시에 구조작업에 최선을 다 할 것을 요구했다. 사고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여객기 착륙당시 폭우날씨가 지속되었고 열악한 날씨가 여객기 사고의 주요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한편 여객기 착륙 도중 랜딩 기어에 문제가 나타났다는 보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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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8
  • 미모의 中 천재소녀, 년봉 2억 6천만 원
    ▲중국의 천재소녀 야오팅(姚婷) [동포투데이] “화웨이 천재소년 장제(张霁) 연봉 3억 4천만(201만 위안)”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다. 후난성 천재소녀 야오팅(姚婷)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야오팅의 연봉은 2억 6천만원(156만 위안)에 달한다. 그는 후난성 창사시 주남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녀에 대해 선생님들의 인상은 매우 깊다. 창사시 주남중학교 한 선생님에 따르면 야오팅은 맑고 사랑스러운 어린 여자 아이였으며 고중(고등학교)입학시험에서 두 과목이 A학점 나머지 네 과목은 B 학점을 받고 입학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노력과 좋은 학습 습관을 기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 야오팅은 현재 화중과학기술대학 컴퓨터시스템구조학과 박사 5학년을 다니고 있다. 그는 서부 데이터사에서 3개월의 실습 경험이 있다. 당시 그녀는 대학교에서 발전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력서를 내지 않았다. 고중 3학년 시절 담임교사는 고중시절 야오팅은 성적이 특별히 뛰여난것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자율적이였다고 밝혔다. 창사시 주남중학고 담임선생님은 야오팅은 자각성이 강한 학생이라 선생님이 많이 걱정 안 해도 되는 착한 아이였다.그는 자신의 학습에 대해 계획이 있고 언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학생 이였다. 침실에서 전등을 끄면 그는 더 이상 보충 수업을 할려고 교실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교실에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을 학습에 쏟아붓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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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8

사람들 검색결과

  • 12년의 젊음을 과외교육에 바친 오미화 씨
    [동포투데이] 오미화 교원(41세)은 조선족 교육사업에 대한 불타는 신념과 의력으로 장장 12년동안 과외교육에 몸과 마음을 이바지하고 있다. 1997년 9월에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대학사범분원 한어문(중국어)전업을 졸업한 오미화는 선후로 왕청림업국 조선족학교에서 4년, 한국에서 중국어 강사로 6년동안 활약하면서 번 돈으로 연변자치주 왕청현좋은미래과외학습센터를 설립하고 교육 사업에 대한 일편단심과 전력투구로 풍성한 성과를 거두어 학부모와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왕청현좋은미래과외학습센터 오미화 교원 과외학습센터를 설립한 첫해에 40여 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중 양부모가 없는 어린이 8명, 홀부모어린이 10명, 한족 어린이 9명으로서 한족, 결손가정 어린이는 인수의 65%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결손가정 어린이들은 친척 집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서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며 성격이 활달하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우울하고 괴벽했다. 오미화는 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늘 사랑으로 어린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하나하나 녹여주고 부모들이 외국으로 돈벌이를 가고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한 남자애는 늘 집에 가 거짓말을 하여 노인이 교원을 오해하게 하였고 노인이 간혹 어린이의 필기장을 들여다보고는 전후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담임교원만 탓했다. 오미화는 노인과 어린이에 대한 고까운 생각보다 우선 어린이가 거짓말을 하게 된 원인부터 찾기에 노력했으며 정황을 상세히 요해한 후에는 평소보다 더 따뜻한 사랑을 몰 부었다. 차츰 우울하던 어린이는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선생님을 잘 따르고 학급활동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으며 하루는 “우리 엄마가 한국에서 오면 꼭 선생님께 고운 옷을 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 오미화의 마음을 울려놓기도 하였다. 오미화는 어린이들의 정황을 요해하기 위해 늘 여유시간을 이용해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이들 특히 결손가정 어린이들의 심리를 장악하였으며 자그마한 우점이라고 보이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신심과 용기를 북돋우어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한 남자애는 주먹이 세고 남의 음식을 잘 빼앗아먹고 수업시간 규율을 지키지 않았으며 다른 애들이 벗어놓은 신을 변기에 처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어린이는 반급 청소와 좋은 일을 하는 습관도 있어 오미화는 이와 같은 우점을 칭찬하면서 남을 때리고 욕하는 나쁜 습관만 고치면 반장감이라고 하였더니 그 애는 신심과 용기가 생겨 나쁜 습관을 차차 고치기 시작하였다. 그 어린이가 된 감기에 걸려 학습센터에 오지 못했을 때에도 오미화는 학급 어린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담은 과일 구럭을 들고 찾아가 집단의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 하여 이 어린이는 학습과 생활면에서 많은 진보를 가져왔으며 소학교에 입학해서는 이제껏 반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오미화의 엄마와도 같은 사랑에 받들려 많은 결손가정 어린이들이 제 궤도에 들어섰고 마음껏 배움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어린이들의 매 하나의 성적과 진보에 학부모들은 너무도 고마워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오미화의 좋은미래강습과외학습센터는 처음의 50평방미터로부터 300평방미터로 늘어나고 어린이도 처음의 50명으로부터 지금의 150명으로 늘어났으며 교원대오도 처음의 2명으로부터 지금은 10명으로 늘어났다. 이외에도 오미화는 빈곤 어린이들의 학비는 면제해 주거나 1년에 300, 500위안씩 면제해 주어 학부모들의 뒷근심을 덜어주고 있으며 왕청현회중아동애심협회, 왕청현애심어머니협회에도 해마다 500, 1000위안씩 기부하고 있다. 오미화는“학부모들의 인정을 받을 때마다 교원 사업의 신성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고 학부모들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백배로, 천배로 되는 힘을 얻게 된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후대 양성사업에 혼신을 다 바쳐가고 있다.
    • 사람들
    2020-07-11

오피니언 검색결과

  • 中 해방전쟁 시기 실패한 미국의 대 중국 침투 전략
    [동포투데이] 중국의 국내 해방전쟁은 중국인민이 부패한 장개석 독재정권을 뒤엎고 자유와 독립해방을 쟁취하는 대 결전이었으며 중국의 두 가지 운명, 두 가지 전도를 가름하는 최후의 대 결전이었다. 이 대 결전 중 중국 국민당정권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컸으며 미국 또한 국민당 정권에 대한 원조를 대폭 늘이기도 했다. 이렇듯 엄준한 정세에 직면하여 중국공산당은 2차 대전 후의 국내 외 형세를 전면 분석, 미국을 두려워하고 미국을 숭배하는 당과 군대 내의 불안심리를 극복하면서 대 미국 투쟁의 책략에 대해 심중하게 정하였으며 일련의 유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미국이 중국 내전에 개입하는 것을 될수록 억제시켰으며 최종 미국이 국민당정권에 실망하여 중국 내전에서 손을 떼도록 하였다. <중간 지대> 형성과 <양대 진영> 이론으로 사상을 통일 냉전초기, 미소가 전시 군사실력 균등의 기초에서 건립한 얄타 체계는 실질상 유럽의 정치판도와 미소의 세력범위를 다시 획분하였다. 당시 소련은 종합실력은 미국보다 한참 뒤 떨어졌기에 극동에서 미국과 타협하여 현 상태를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동시에 스탈린은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을 전승할 수 있겠는가를 의심하면서 장개석이 곧 이겨서 중국을 통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중국인민의 해방전쟁은 바로 이런 국제적 환경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러자 당시 국제형세에 대해 확실한 안광을 가진 모택동은 <중간 지대(中间地带)>와 <양대 진영(两大阵营)>의 이론을 제기, 이것으로 전 당과 전 군의 사상을 통일시켰다. 1946년 8월 6일, 모택동은 미국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과의 담화에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광활한 지대가 가로막혀 있다. 여기에는 유럽,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허다한 자본주의 국가와 식민지 그리고 반 식민지 국가들이 있다. 가령 미국반동파들이 이런 국가들을 힘으로 굴복시키기 전에는 절대 소련을 진공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했다. 모택동은 이 <중간 지대> 이론으로 반소반공을 외치는 미국의 직접적인 목적은 “반소의 구호 아래에 발광적으로 미국 노동자와 민주인사들을 진압하는 것과 대외확장의 일체 대상국으로 하여금 모두 미국의 부속물로 만드는 것”이라고 폭로하면서 미소 양대 진영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독립된 역량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냈던 것이다. 모택동은 <중간 지대> 이론을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지어는 <양대 진영> 사이의 평행제약 외교를 신봉, 하지만 미소와 중국공산당과의 관계는 본질적인 구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은 중국공산당 지지자였으나 미국은 도리어 중국혁명운동의 반대자였다. 그리고 중국의 정치형세가 격렬하고도 근본적인 변동이 발생할 시기마다 이런 본질적인 구별은 각 일방의 정치적 연변(演变)의 추향을 결정하군 했다. 미국정부가 장개석 정부를 부축하는 정책을 실행하기에 냉전이 폭발하자 모택동은 미국과 관계개선의 노력을 포기했다. 이렇게 중국공산당은 외교정책을 제정하는 관건적인 단계에 들어 미국은 중국의 내부 사무를 간섭할 시도를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간파, 반드시 <양대 진영의 한쪽에 쏠리는(一边倒)> 외교 총 방침을 실행하기로 했다. <일체 반동파는 모두 종이범>이란 전략 논단으로 공미심리(恐美心理) 극복 항일 전쟁 후기와 항일전쟁 이 금방 끝난 뒤 미국정부의 정책과 행동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판단은 “미국은 유럽에서는 그리스를 놓고 영국과 쟁탈전을 펼칠 것이고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쟁탈전을 벌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즉 인민해방군이 남경과 상해와 같은 대 도시를 점령하면 미국은 필연코 간섭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개입은 결정적인바 다르다면 강경개입인가 아니면 <연한 개입>인가 그리고 그 개입 역도의 크고 작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미국이 생각하는 2차 대전 결속 후의 세계판도 중 중국은 의연히 민국시기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고자원 유출지구에 농부산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공업산품의 시장 및 원자재 생산지로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의 피라미드 중 중국은 반드시 최하층에 위치해 있으면서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공산당의 욕망은 혁명을 통해 제국주의의 동방전선을 무너뜨리고 독립지위를 수립하는 것이고 아울러 자주적으로 현대화건설을 진행하는 것으로 피라미드 최하층 같은 지위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이 추구하는 전략 목표와 매우 심각하게 모순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미국은 악랄하게 중국공산당의 집정을 반대해 왔으며 더욱이는 공산당을 대표로 하는 민족독립의 추구와 국가발전의 염원까지도 한사코 반대해 왔다. 이는 항일전쟁 시기와 전후 초기의 태세가 이것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시, 중국공산당의 전쟁 상대는 몹시 강대했다. 2차 대전 후의 미국은 경제 및 군사 실력이 극도로 증강되었고 과학기술 역량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진정한 세계 제1의 군사강국으로 군림하였다. 하지만 1946년 중국의 전면 내전이 폭발한 후 모택동은 “일체 반동파는 모두 종이범”이란 이론을 제기, 전략상에서 적을 무시하면서 적과 날카롭게 맞서 싸울 것을 전국인민들에게 호소하였다. 미국과 장개석의 압력과 무리한 요구 앞에서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물론 우리는 어느 정도 양보하여야 한다. 하지만 주요한 정책은 양보가 아니라 투쟁이다. 만약 우리 당이 상당한 양보를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재차 무리한 압박과 요구와 두 번, 세 번이 되는 투쟁을 해야 하고 결과는 더욱 큰 양보를 해야 할 것이며 만약 견결히 투쟁하는 정신마저 없다면 결과는 곧 더욱 나빠지기 마련이다…” ▲1945년 8월 충칭(重慶)에서 열린 국공담판에서 만난 장개석(가운데)와 모택동(오른쪽). 미국이 중국 내전에 개입한 주요한 수단은 물자원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국공 담판이 진행되던 1946년 상반년만 해도 미국정부가 국민당정부에 제공한 각종 물자는 그 가치가 13.5억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중국 내 전면 내전이 폭발한 후 미국정부는 또 국민당 군에 131척의 함정을 지원하였으며 일본이 투항한 후부터 1946년까지 미국의 해군과 공군이 내전 전선으로 수송한 국민당 군대는 도합 54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정부의 통이 큰 부축에도 불구하고 국민당정부는 부패했고 국민당 군대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으며 이로 인하여 투르먼 정부의 대 장개석정부 지원은 미국 내 여론의 물매를 맞았다. 한편 인민해방군은 방방곡곡에서 승전의 첩보를 올렸으며 특히 1948년부터 1949년의 5개 월 사이에 인민해방군은 전략적 대 결전을 강행, 연속 요심 전역, 회해 전역과 평진 전역을 펼쳐 5개 월 내 도합 154만 명의 국민당 군을 섬멸하였다. 이렇게 되자 미국정부는 부득불 국민당정부가 군사상에서의 실패가 이미 기정사실로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주중 미국대사 존 레이튼 스튜어트(John Leighton Stuart, 1876-1962)가 1948년 미 국무장관 마셜한테 보낸 전보문에서 “우리는 매우 원하지 않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당 현 정부의 붕괴는 조만간 피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는 형식으로 반영되었다. 그 뒤 미국정부는 국민당정부에 대한 원조의 수량과 차수를 줄이면서 대 중국 정책을 개변하기 시작했다. 한 방면으로 미국은 여전히 매 주 400만 달러 가치에 달하는 군수품을 국민당정부에 제공하는 한편 다른 한 방면으로는 장개석의 일부 요구에 대해 거절하면서 다른 출로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1949년 1월 2일, 미국정부는 국민당 군대에 실시하던 군사훈련을 정식으로 중단한다고 선포, 동시에 주중 미국 연합 군사고문단 단장 파다비를 귀국시켰으며 1월 27일에는 주중 미국 군사고문단을 전부 철수한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미국정부는 장개석을 두고 더 이상 이상적인 인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대 중국 이익은 이미 성사보다는 망치는 일이 더 많다고 인정하였다. 그 뒤 미국은 <중도환마(中途换马)>를 목적으로 국민당의 2인자 이종인과 접촉, 최종 장개석을 압박하여 은퇴하게 하고 이종인더러 대권을 잡게 했다. 헌데 유감스러운 것은 미국의 부축 하에 대권을 잡은 이종인이었건만 그 역시 국민당의 독재정치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아울러 장개석 또한 진짜 은퇴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어 1949년 봄에 북경에서 있는 국공 양당의 평화담판은 철저히 파탄되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중국 내정 개입>의 목적이 실패로 돌아가자 백서를 발표하여 책임을 국민당 정권에 떠밀면서 더 이상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표했다. 이렇게 되어 중국공산당은 중국내정에 개입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억제시키는 역사적인 승리를 취득하였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10
  • [연재] '삼국지' 재해석②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삼국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먼저 한나라 말기 시대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실제로 <삼국지>는 한나라 말기 시대배경을 그리고 있긴 한데 역사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렵다. 그래서 당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삼국지> 재해석 제2편으로 ‘한나라 말기 환관과 외척의 권력 다툼’을 잡았다. 여느 왕조가 다 그러했듯이 왕조말기에 천하가 대혼란 상태에 빠져 있긴 했으나 한나라 말기 시대배경은 굉장히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중국역사에서 통일제국의 문을 연 것은 진(秦)나라이지만 천년만년 이어가리라던 진 왕조는 15년 만에 홀딱 망해버렸다. 진 제국이 망하고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유방과 항우의 땅 따먹기 게임인 초와 한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자가 되어 한나라를 건립한다. 한나라는 서한과 동한을 전후하여 거의 400년 가까이 수명을 유지한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화폐, 도량형, 차바퀴 등 일련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15년이란 세월이 너무 촉박하여 완전한 통일은 한나라에 이르러 이뤄졌던 것이다. 중국문자를 한자, 중국말을 한어, 중국 주체민족을 한족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유방이 세운 한나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왕조라는 개념은 왕족혈통의 세습제를 의미한다. 유씨가 나라를 세웠으면 유씨 혈통이 황위(皇位)를 이어받는 것이 바로 세습왕조이다. 그런데 문제가 복잡하다. 황제가 아들이 있는데 너무 어려 황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황제로 등극시키는데 아들이 없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이 경우 붕어한 황제의 친동생을 황위에 앉히느냐, 조카 중 서열을 따져 앉히느냐는 쟁투가 벌어진다. 또는 종실의 번왕(藩王)들 중에서 후계자를 찾기도 하였다. 유씨 가문의 왕조를 이어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한의 황제 13명 중 10명이 마흔 살도 못 살았고 4명은 아들이 없었다. 또한 제위를 계승할 때 11명이 20살 이하였으며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이가 19살의 장제(章帝), 가장 어렸던 이가 100일도 안 된 상제(傷帝)였다. 충제(冲帝)는 겨우 2살, 질제(質帝)는 겨우 8살이었다. 황제가 나이 어려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그 어미인 태후가 섭정한다. 태후가 섭정하게 되면 정권은 자연스레 외척이 잡게 된다. 한 화제(和帝) 때는 두태후(竇太后)가 국정을 맡고 두헌(竇憲)이 정권을 잡았고, 한 안제(安帝) 때는 등태후(鄧太后)가 국정을 맡고 등즐(鄧騭)이 정권을 잡았으며, 북향후(北鄕候) 때는 염태후(閻太后)가 국정을 맡고 염현(閻顯)이 정권을 잡았다. 또 한 환제(桓帝) 때는 양태후(梁太后)가 국정을 맡고 양기(梁冀)가 정권을 잡았고 한 영제 때는 두태후가 국정을 맡고 두무(竇武)가 정권을 잡았으며 소제(少帝) 때는 하태후(何太后)가 국정을 맡고 하진(何進)이 정권을 잡았다. 이렇듯 태후가 여섯 번 국정을 맡고 역시 여섯 번 외척이 정권을 잡았던 것이다. 태후가 섭정하고 외척이 정권을 잡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선 황제가 기분이 나쁘다. 어미와 외삼촌한테 휘둘리다 보니 자신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 없게 된다. 이 문제는 황제가 나이를 먹어 성인으로 향해 성장해가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즉 황제는 자기주장을 세우려는데 어미와 외척이 양보를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권력의 맛이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이렇게 되면 황제는 어미와 외척을 제거하려 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한 허수아비가 되기 때문이다. 권력 구조에서 세력이 없는 어린 황제는 누구한테 기대야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바로 환관 무리다. 밤낮으로 황제 곁에 붙어 있는 것은 환관들이이니까 그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환관의 역사는 지구상 중국만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물론 이웃나라인 조선에도 환관역사가 있긴 하지만 ‘흉내’를 내는데 그칠 뿐 중국처럼 환관이 역사를 바꿀 만큼의 세력으로 역사무대에서 쥐락펴락하지는 못했다. 진 시황 때 환관 조고는 황제가 궁녀들과 운우지정을 나누는 장소에서 한쪽 모퉁이에서 쪽걸상에 앉아 지켜볼 정도로 하루 12시진(지금의 24시간)을 황제에게 붙어 있었다. 황제가 죽자 결국 조고가 천하를 쥐락펴락하였고 심지어 황제의 유서를 조작하여 장자를 밀어내고 둘째 호해(胡亥)를 황위에 앉힐 만큼 세도를 부렸던 것이다. 그 유명한 사슴보고 말이라고 하는 ‘지록위마’ 고사의 주인공이 바로 조고였다. 진나라가 15년 만에 망한 이유 중에 환관 조고의 탓이 크다고 필자는 본다. 당나라가 전성기를 달리던 때 당 현종은 양귀비한테 빠져 정사를 뒷전으로 하고 환관 고력사(高力士)가 황제의 옥쇄를 쥐고 국정을 맡아보기까지 했다. 명나라 때는 10만의 환관도 모자라 조선에서 빌려 갔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환관은 생리상 불구로 남자의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권력과 재산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 왔고 눈에 밟히는 가족(처자)이 없기 때문에 권력다툼에서 마음이 독하다는 속설이 있다. 어찌되었든 환관들은 황제의 신변에 늘 머물고 있기 때문에 황제의 믿음을 얻고 있었다. 한 순제(順帝) 때 외척 두목인 염현을 환관들이 황제와 논의도 없이 자기네들이 알아서 죽였던 것이다. 한 환제의 어미 양태후는 황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독살했다. 뿐만 아니라 황제가 28살이 되도록 국정을 맡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황제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손을 써야 했다. 그런데 외척의 세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황제는 비밀모의를 화장실에서 꾸밀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 비밀모의는 성공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외척 양기 부부는 자살했고 양씨 가문은 전부 참수되어 조리돌림을 당했다. 그리고 양기와 관련 있는 관리 300여 명을 파면하고서야 정권을 바로 잡을 수가 있었다. 2015년 12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정윤회 문건’ 파동 사건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 주변에서 국정을 농단한 자들을 가리켜 ‘십상시’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 ‘십상시’의 유래가 바로 한나라 영제(靈帝) 때에 환관(宦官) 장양(張讓)·조충(趙忠)·하운(夏惲)·곽승(郭勝)·손장(孫璋)·필남(畢嵐)·율숭(栗嵩)·단규(段珪)·고망(高望)·장공(張恭)·한리(韓悝) 등 10인을 가리키는데 영제는 어린 나이로 황제가 되어 전혀 통치 능력이 없었으므로, ‘십상시’는 영제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주색에 빠지게끔 만들고, 하진(何進)의 누이를 바친다. 장성한 뒤에도 십상시의 농간에 놀아나 정치를 돌보지 않자,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그 중에서도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黃巾賊)의 세력이 가장 컸고 황건적의 난이 평정되자 ‘십상시’는 모두 열후(列侯)에 봉해진다. 십상시가 멋대로 천자의 칙명을 내리자, 하진이 누이의 세력을 빌려 ‘십상시’와 권력을 다투게 되고, 하진이 제후(諸侯)들을 불러 모아 ‘십상시’를 제거하려 하다 오히려 죽임을 당하게 된다. 남을 물에 빠뜨리려다가 자신이 물에 빠진 격이었다. 환관무리와 외척 사이 권력투쟁에 ‘보리알’처럼 끼어든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영제를 지키던 근위군의 두 번째 인물인 원소이다. “장군이 천하를 위해 그 화근을 제거하신다면 틀림없이 길이 이름을 남길 겁니다.” 원소가 환관을 모조리 죽이라고 하진을 선동한 말이다. 그러나 하진은 망설였다. 이유가 있었다. 원래 돼지백정이었던 하진은 누이동생이 황후가 되는 바람에 대장군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하진이 환관무리를 몰살할 배포도 그럴만한 간도 크지 못했다. 하진의 누이동생 하태후도 환관을 죽일 마음이 없었다. 그 이유는 환관들한테 빚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녀가 유협의 생모 왕미인을 독살했을 때 환관들이 황제에게 사정해 겨우 재난을 모면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하태후는 이렇게 말했다. “환관이 황궁을 관리하는 것은 전래의 법이자 제도인데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하물며 선제가 막 붕어하셔서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노골적으로 사대부의 편에 서겠습니까?” 태후가 허락하지 않자 하진은 더욱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살벌한 권력다툼에서 과감히 결단을 내리지 못한 하진은 결국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진의 죽음은 일개 대장군의 개인의 목숨이 아니라 사대부 집단과 군벌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하진이 피살된 후 혼란에 빠진 낙양성에서 하씨와 원씨 두 가문이 각기 군사를 일으켰는데 원소가 더 적극적이었다. 군대를 이끌고 성 안에서 환관들을 색출해 죽였다. 수염 안 난 남자만 보면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많은 젊은이가 부득이하게 바지를 벗어 보여야 했다. 마치 나치 독일에서 유태인과 비유태인을 가리는 방법인 ‘바지 벗기 증명’과 비슷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환관 중에도 선행을 베푼 환관들도 있었고 기타 좋은 일을 남긴 환관도 있었건만 물불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하여 죽은 자가 모두 2000여 명에 달했다. 환관도 죽고 외척도 죽었다. 이 두 집단의 다툼은 장장 90여 년간 벌어졌다. 매번 외척의 패배로 투쟁이 끝났지만 이번에는 양쪽 다 파멸되었다. 문제는 어린 황제였다. 외척도 환관도 모두 죽었으니 누구에게 기대야 하나? 천하지존이었던 대제국의 천자가 졸지에 몸도 의탁할 곳 없는 구차한 ‘난민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때 원소의 부름을 받고 성으로 향해 진군하던 서량(西涼)의 호족 동탁(董卓)이 칠흑 같은 야밤에 황하의 강 언덕에서 우연하게 피난길에서 방황하던 황제 변(辯)을 발견한다. 이 발견이 동탁에게는 로또를 맞은 셈이었다. 하늘이 준 기회를 동탁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황제를 모시고 입성하여 궁정을 장악하고 횡포를 부리게 된다. 이때부터 천하는 대혼란에 빠지게 되고 지방 호족과 권력의 제3의 세력인 사족(士族) 집단 및 군벌들의 군웅할거의 대전란이 시작된다. 여기까지가 한 나라 말기 시대배경이고 삼국시대가 열리는 서막을 알리는 ‘종소리’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8
  • 동포정책과 이민정책
    ●김도균 우리 민족처럼 디아스포라를 이루고 사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역사적, 경제적 심지어 정치적 이유로 조국을 등지고 전세계 곳곳에 흩어져 부평초 같은 삶을 사는 동포가 750만 명에 이른다. 실무상 동포는 재외국민과 외국국적 동포로 나뉘는데 이는 국적 기준이다. 이런 배경으로 우리에게 동포정책은 각별한 관심과 포용 나아가 활용이 필요한 데 해외거주 동포는 외교부에서, 국내거주 동포는 법무부에서 어떤 경우는 서로 하겠다고 나서고 어떨때는 서로 자기 부처 일이 아니라고 우긴다. 법무부만 해도 동포업무를 전담하는 '외국적동포과'가 잠깐 생겼다가 사라지고 지금은 '체류관리과'에서 담당자 2명이 동포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국내 동포정책이라야 비자정책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자정책 하나 하나에 동포사회가 일희일비 하였고, 그나마도 출신국 동포간 차별과 불편으로 점철된 것이 동포정책의 현실이다. 동포들의 출신국에 따라 비자발급을 달리하는 재외동포법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고나서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의 지시로 방문취업제를 시행한지도 14년이 지났지만, 동포들의 불편은 여전하고 최근에는 오히려 동포들에 대한 비자정책이 역행하고 있다. '이민동포청'을 만들어 동포라는 자산을 이민정책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활용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정치인들 표 계산과 정부부처의 이해관계를 뛰어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여러번 입법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현실 대안으로 법무부에 동포정책을 전담하는 '외국적동포과'를 부활시키고 동포들의 비자체계라도 서둘러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외국 국적의 동포들을 이민정책의 틀 나아가 남북경협 분야에서 활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있음에도, 동포를 정부 부처의 업무활용이나 정치적 거래 대상쯤으로 치부하여 정책 후순위에 두는 것은 너무나도 국익에 반하는 행위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20-08-08
  • [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②
    ▲진의와 유명 영화배우 김염 [동포투데이] 이혼 후 진의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고 모든 정력을 쏟겠노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맹세는 어디까지나 맹세에 그쳤고 실행은 아니었다. 그리고 진의의 그러한 맹세는 조선인 남자 김염(金焰)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렸다. 김염(원명: 김덕린) ㅡ 1910년 조선 서울에서 태어난 김염은 1912년 한의사이며 독립운동가인 부친한테 지명 수배령이 떨어지자 가족을 따라 중국 흑룡강성 치치할시에 이주, 1919년 부친이 사망되자 상해에 있는 고모한테로 가서 의탁했다. 그 뒤 고모가 천진으로 이주하자 김염은 천진 남개 중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혁명사상을 접수하게 되었고 남개 중학교를 졸업한 후엔 홀로 배에 올라 다시 상해로 향발, 상해에서 그는 소설도 써보고 영화회사의 잡부로 일하기도 하면서 유랑걸식 생활을 하다가 1934년 영화계에 입문했다. 영화 <대로(大路)>에 출연하면서 자기의 예술적 재능을 과시했으며 뒤이어 영화 <야초한화(野草闲花)>, <신도화선(新桃花扇)>, <들장미(野玫瑰)>와 <장지능운(壮志凌云)> 등 수많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1930연대부터 상해의 <영화황제>로 입지를 굳혔던 김염이었다. … 이러한 김염이었으니 진의한테 있어서 우상이나 다름이 없었으며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기실 진의가 김염을 알게 된 것은 1941년 김염의 생일연회에서였다. 당시 진의한테 있어서 김염은 우상같은 인물이었으나 둘 다 가정이 있는 상황이어서 진의는 김염에 대해 별다른 감정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하고 김염과 진의가 선후로 상해로 다시 왔을 때는 이미 둘 다 가정이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는 이런 짤막한 스토리도 있었다. 당시 김염과 진의는 영화 <망망한 대해(海茫茫)>를 함께 촬영하면서 함께 있을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홀아비로 된 김염은 자주 진의 집에 가서 진의의 어머니와 언니 등과 함께 마작도 두고 한담도 하고 음식도 얻어 먹 군 했다. 그럴 때마다 진의보다도 진의 어머니가 김염을 더 반겨 맞 군 했으며 맛나는 것을 감췄다가는 김염이 올 때마다 내놓군 했다. 그러고는 김염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내 딸이 자네를 좋아하는 것 같아. 자네 생각은 어때?”라고 하면서 김염의 속마음을 떠보기도 했다. 이러자 진의는 “엄마, 난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군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진의는 혼자서 전 가정의 11명 식구들의 호구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니 결혼보다는 일심전력으로 영화나 희곡에 출연하여 돈을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의 역시 여인이었으며 더군다나 사랑을 알고 사랑을 갈망하는 젊은 여인이었다. 거기에 김염같은 대 스타가 나타났으니 흔들리고 설레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기, 진의는 홍콩에 가서 자주 연예활동을 하군 했다. 그러면 홍콩의 거리에는 김염도 나타 나군 했다. 하긴 김염의 영화계 동료들이 홍콩에 많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김염의 진정한 홍콩행 목적은 진의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의 동료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김염의 옛 동료 오조광(吴祖光)이 불쑥 진의 앞에 나타나더니 “당신들은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오조광은 더욱 열성스레 앞뒤를 뛰어다니며 동료들을 선동, 나중에는 문예계의 거장 곽말약까지 설복하여 두 사람 결혼의 증명인으로 나서게 했다. 이렇게 1947년 25세의 진의와 37세의 김염은 결혼에 올인하였고 곽말약 선생을 청해 결혼 증명인을 맡게 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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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용이 살던 마을 와룡동
    ●김호림 창동학교는 8.15광복을 맞은 후 다시 와룡동에 부활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서쪽 산비탈의 옛 터를 버리고 마을 북쪽의 평지에 따로 학교 건물을 세웠다. 김동욱옹은 어릴 때 새로 지은 이 창동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때 그가 학교를 내놓고 또 과외처럼 즐겨 다니던 곳이 있었다. 그와 또래들은 예배를 보는 날이면 학교 북쪽에 있는 교회당으로 반달음을 놓았다. “전 씨 성의 집사가 우리 아이들을 모여 놓고 재미있는 옛말을 들려줬지요.” 교회의 전 집사는 조선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일본 전함을 물리치던 이야기 등을 구수하게 풀어놓았다고 한다. 서적이 금처럼 귀하고 별다른 문화생활이 없었던 시골에서 정말 하늘에서 들려오는 복음과 같았다. 조선인 이민들의 최초의 민족계몽운동과 반일운동은 이처럼 신앙공동체를 통해 구현되였던 것이다. 간도에서 선교활동은 조선인 간민들의 대량 이주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캐나다 장로회는 북간도에 선교사와 전도자를 파송, 1906년 광제암교회를 설립하였다. 뒤미처 용정의 기독교인이 간도의 조선인 전도를 위해 멀리 함경도 원산까지 가 기독교 서적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도가 본격 시작되었다고 한다. 1907년 남감리회는 이화춘과 이응현, 캐나다 장로회는 김문삼을 간도에 파송한다. 이화춘은 와룡동교회, 이응현은 모아산 교회를 설립하며 장로회는 용정교회를 설립하였다. 모아산은 와룡동 골짜기에서 바로 정남쪽 방향으로 보이는 둥그런 산이다. 1915년경 간도에 36개 교회가 개척되며 또 교회의 주도로 많은 학교가 세워진다. 간도 지역 최초의 민족운동 단체인 “연변 교민회”(훗날 국민 회로 개칭)는 기독 인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국민회를 통한 기독인들의 반일운동은 군자금 모금, 독립군 양성 등으로 이어졌다. 바로 창동 학교에 국민회의 외곽단체인 간도 대한 청년회 본부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의 많은 교원과 학생, 졸업생들은 철혈 광복단에 참가하여 희생적으로 싸웠다. 1920년 용정 선바위 부근에서 조선은행권 15만 원을 탈취한 “15만 원 탈취사건”의 골간 임국정, 최봉석, 한상호 등 반일 지사들은 모두 와룡동 출신이다. 와룡동에서 교세는 연변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8.15광복 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미구에 철거의 파국을 맞는다. 그러나 김신숙(1938년 출생) 노인이 와룡동으로 시집을 오던 1956년에만 해도 와룡동 교회의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때 김신숙 노인은 바로 와룡동 교회의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목사가 그들의 결혼 주례를 선 것은 아니었다. “그때 교회는 이름뿐 이였지요. 벌써 예배를 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수십평 크기의 교회건물은 사람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김신숙 노인의 시집은 마침 길 건너 바로 서쪽에 있는 이 널찍한 교회당을 예식장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이 발길을 멈춘 곳은 와룡동의 제일 북쪽이었다. 거기에는 고층건물의 휴양소가 땅을 박차고 일어서고 있었다. 이 휴양소 앞마당의 동쪽 귀퉁이가 바로 교회당 옛 터였다. 옛 터에는 시공현장의 철근과 나무쪼각따위가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와룡동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던 와룡동교회는 그렇게 역사의 흔적을 서서히 지워가고 있었다. 지난 세기 80년대까지 민흥촌의 직속 마을이였던 과수마을도 어느덧 집단기억에서 소실되고 있었다. 과수마을은 일명 5대 마을로 서쪽의 고개 너머 산등성이에 있었는데 예전에 동쪽의 와룡동과 짝을 맞춰 와호동(卧虎洞)이라고 불렸다는 속설이 있다. 이쯤 하면 누군가는 대뜸 와룡동과 와호동을 두고 좌청용이요, 우백호요 하면서 풍수설을 들먹거리겠지만 실은 이 지명이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는 용호상박(龙虎相搏)의 기세를 은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와룡동 마을에 영웅호걸이 많이 배출되였다는 것이다. 옛날의 샘물은 와룡동의 동쪽 골짜기에서 예나 제나 변함없이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샘물을 마시던 용은 단지 지명에 화석으로 외롭게 남아있을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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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이슈 분석]체육강국 중국, 왜 축구만 약한가?
    ●리병천 올림픽 등 국제체육대회의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석권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왜 유독 축구에서만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가? 정말로 팬들의 씁쓸한 우스개처럼 메시가 될 인물이 시골에서 밭을 갈고 있기 때문일가. 중국축구가 아직도 부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분석해본다. ◆중국, ‘체육강국’으로 우뚝 서다 2008년, 북경올림픽에서 중국은 성공적 올림픽 개최와 세계 최강 미국을 꺾고 종합 1위를 달성하는 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올림픽 역대 종합순위를 살펴보면 각국의 국력과 세계 질서의 변화가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 1940년대 이전에 프랑스, 영국, 독일이 각각 한차례씩 종합 1위를 차지한 적이 있고 1948년 이후 대회부터는 미국과 소련이 종합 1위를 양분했으며 소련 붕괴 이후 1996년 이후는 미국이 종합 1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메달수가 국력을 직접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2008년 당시 중국은 금메달수에서 51대36으로 미국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종합 1위를 차지했고 종합 1위의 이 막강한 상징성은 중화민족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작동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차이로 종합 2위를 하면서부터 2008년 북경올림픽에서는 종합 1위를 차지해 이미 세계의 강자가 됐음을 보여줬다. 비록 중국은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2, 3위를 기록, 종합 1위는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세계적 체육강국임은 증명됐다. 당대 스포츠에서나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독주에 유일하게 도전장을 내고 있는 중국이다. ◆왜 축구에서만 유독 두각을 드러내지 못할가? 지난 7월, 국제축구연맹이 발표한 세계축구 랭킹에서 중국은 세계 76위, 아세아 9위를 기록했다. 일본, 한국, 이란 등 전통 강호들은 물론 카타르, 이라크 등 나라들에도 밀리고 있다.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중국은 2승, 1무, 1패를 기록, 필리핀과 승점은 7점으로 같지만 골 득실에 앞서 간신히 조 2위를 유지, 수리아(4승, 승점 12점)와는 어느덧 승점 5점 차로 벌어지며 최종예선 진출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U-19팀은 26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근래 중국축구가 각 대회에서 보인 성적은 그야말로 암울, 그 자체이다. 올림픽 등 국제체육대회의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석권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왜 유독 축구에서만 지금까지도 제자리 걸음, 아니 후퇴를 하고 있을가? ◆‘한 자녀 정책’의 부작용 중국은 198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인구억제를 실시했다. 바로 ‘한 자녀 정책’이다. 축구가 조직력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개인 기량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탁구나 체조 등에서 중국이 세계 최정상을 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11명이 하나로 묶여 움직여야 하기에 누구 한명의 기량으로 승부를 뒤집기가 쉽지 않다. 또 80년대 이후 출생한 자녀들에 대해 부모들은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선수가 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축구에 대한 인식하에 부모들이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축구를 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또 한 자녀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게 됐고 축구와 같이 조직력을 요소로 하는 종목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젊은 선수들의 프로의식 부재 중국 프로축구리그는 자금적인 면으로만 볼 때 세계 5대 리그중 하나라고까지 할 수 있다. 최근 몇년간 거액의 투입을 해오며 외국인 용병들에게 엄청난 돈을 투자해 그 지명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토종 선수들의 실력은 리그 수준과는 왼전히 동떨어져 있다. 젊은 선수들이 외국 리그에 대한 도전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국내에 안주한 것 역시 높은 년봉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험한 길을 가지 않아도 엄청난 년봉이 보장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국축구의 자국내 인기와 대우는 좋아졌지만 자국 선수들의 성장에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 최근 몇년간 무수한 자국 유망주들을 유럽무대로 진출시켜 급격한 기량 향상을 일궈낸 것과 달리, 중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무뢰(에스파뇰) 등 일부를 제외하면 극히 드물고 성공 사례도 부족하다. 과거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같은 부유한 중동팀들이 겪었던 문제처럼 현재의 중국 프로 선수들은 높은 몸값과 스타대우를 받고 있는 자국리그에서의 성공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 선수들 특유의 개인주의 성향도 팀플레이와 높은 전술 이해도를 요구하는 현대축구의 기준과 맞지 않는다는 평가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중국축구가 아시아에서조차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문제점들을 감지한 중국축구협회는 최근 거품 빼기에 나섰다. 슈퍼리그에 년봉 상한제를 도입해 국내선수 년봉 상한을 1200만 위안으로 규정했다. ◆공격형 용병들 국내선수 발전 공간 점령 근래 중국 프로축구에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몰려들면서 국내 공격수들이 설자리가 없게 됐다. 이는 그대로 축구 유망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슈퍼리그, 갑급리그 각 팀들을 살펴보면 공격수들은 전부 이름값 비싼 용병들을 쓰고 있다. 국가팀 역시 전방에 엘케손 등을 귀화시켰다. 때문에 젊은 유망주들도 공격수보다는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되기 위해 훈련한다. 엄청난 재부를 상징하는 프로 무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공격수보다는 수비수가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젊은 선수들이 국내에서 공격수로서는 프로 무대의 경쟁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헐크, 자하비 등 세계급 용병들보다 잘할 수 없다면 그냥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되는 게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계속 중국으로 모여들고 있는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중국축구의 공격수 부재는 앞으로도 더 심해질 것이다. 어쩜 메시와 같이 천성적 공격수 자질을 갖춘 국내 유망주가 이미 헐크와 자하비 등 세계급 공격수들 때문에 수비수가 돼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체계적으로 축구팀 만들기 위한 인내심 결핍 세계의 그 어느 프로리그든 경쟁은 치열하다. 하지만 중국리그에서의 경쟁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심각하다. 국내 구단들은 감독을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없다. 대기업이 축구를 좌지우지하다 보니 인내심이 극히 부족하고 성적에 따라 감독을 갈아치우는 게 전통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들이 전술실험을 할 수도 없고 새로운 선수에게 기회를 줄 수도 없다. 이름값 비싼 용병들을 최전방에 배치해놓고 그들의 능력을 믿으면서 나머지 선수들은 안정적인 수비를 하는 것 뿐이다. 때문에 국가팀에서도 자유롭게 실험하고 도전하는 분위기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가 공인하는 스포츠 강국이다. 인구 14억의 거대한 인적자원을 배경으로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초강세를 보여왔다. 때문에 왜 축구에서 만큼은 ‘중국산’이 전혀 통하지 않는지, 중국축구협회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중국축구는 언젠가는 국력처럼 세계적 최강이 될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주어진 숙제가 너무도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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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연재] '삼국지' 재해석①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지(志)는 역사를 의미한다. 전국지(全國志)는 전국의 역사이고 지방지(地方志)는 지방의 역사이다. 중국에는 각 지방마다 모두 자체의 역사를 기록한 지(志)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삼국시대 역사를 기록한 책을 <삼국지>라 부르는데 <삼국지>는 본래 진(晉)의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진수(陳壽)가 지은 사서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명나라 소설가 나관중의 삼국시대 펼쳐진 이야기를 소설화한 <삼국연의>도 <삼국지>라 부른다. 물론 <삼국연의>가 <삼국지통속연의(三国志通俗演义)>의 줄임말인데 ‘삼국지’에 통속연의를 붙인 것은 사서가 아니라 진수의 <삼국지>를 참조하여 이야기 식으로 풀어서 문학적 장르로 창작한 소설이다. 때문에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삼국지>라 부르면 진수의 사서인 <삼국지>와 혼동되고 한란이 조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삼국지>라 부르는 것이 너무 일반화되고 너무 보편화 되었기 때문에 본문에서도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삼국지>라 칭한다는 것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삼국지>의 저자 나관중은 중국 원말·명초의 소설가 겸 극작가로서 강담(講談)의 이야기책을 기초로 해 구어체 장편소설을 지은 선구자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및 시내암(施耐庵)과의 공저인 <수호지(水滸誌)>의 2대 걸작을 비롯하여 <수당연의(隋唐演義)>, <잔당오대사연의(殘唐五代史演義)>, <평요전(平妖傳)> 등의 작품이 있다. 나관중의 이 여러 작품 중에서 <삼국연의>가 후세에 가장 많이 알려졌고 가장 유명해졌다. <삼국연의>는 오승은의 <서유기>, 시내암의 <수호전>, 조설근의 <홍루몽>과 함께 중국 4대 명작(역사소설)으로 꼽히며 연대서열을 따지자면 단연 가장 선배 격이다. 현재 중국에는 이 4대 명작을 연구하고 밥 먹고 사는 학자가 1만여 명에 이른다. 그만큼 이 4대 명작이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 이 4대 명작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끊임없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어려운가? 아무리 대단한 석학이라도 <홍루몽>을 다 알고 읽는 학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물론 기타 3대 명작의 난의도가 <홍루몽>에는 못 미치지만 역시 다 알고 읽는 학자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3대 명작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것이 <홍루몽>이라면 가장 대중에게 많이 읽힌 것은 <삼국지>이다. <삼국지>는 중국에서는 물론이고 이웃나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 소설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삼국지>가 가장 많이 읽혔을 뿐만 아니라 만화로 개작하고 게임소재로 사용하여 벌어들인 돈이 한국에서는 연간 수 천 억, 일본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조(兆)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듯 유명한 소설에 대해 그 내용을 품평하기 전에 이 소설이 탄생된 배경부터 살펴보는 것이 자못 의미가 크다고 생각되어 중국문학사를 한 번 여행해 보기로 하자. 문자의 기능은 일차적으로 기록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자가 생겨난 것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지었는데 얼마 수확했고 얼마 먹어야 하고 얼마 남겨서 재생산에 사용해야 하는지, 농사는 사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수시로 일어나는 천재지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자로 기록해 놓으면 앞으로 시행착오를 덜 겪고 더 나은 삶을 지향하고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농경의 발전에 필요했던 문자는 잠차 인간의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문화적인 삶에 사용되기 시작한다. 인간의 문화적인 삶을 표현하는 문학작품은 대체로 시, 수필, 에세이, 소설 등 장르가 있는데 이 가운데서 시가 가장 ‘선배’였다. 왜냐하면 시는 노래가사이기 때문이다. 시는 최초로 제사 시 주술사(呪術詞)였고, 남녀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랫말이었다. 중국 최초 문학작품은 <시경>이며 그 작품들은 다수가 사랑 타령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노래가사였다. 시에 비해 소설은 가장 늦게 세상의 빛을 본 막내였다. 시와 소설의 ‘나이’ 격차는 무려 3천여 년이나 되니 소설은 시에 비해 까마아득한 후배이다.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을 알려면 먼저 문화 전성기라 불리는 당나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국에는 본래 종교가 없었다. 굳이 외래 종교와 어깨를 겨루기 위해 억지로 종교라는 라별을 붙이자면 유교와 도교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종교’는 미래의 삶, 즉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 그래서 신앙이 부족했던 중국인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은 외래종교가 바로 불교였다. 불교가 중국 문을 두드린 것은 후한시기였으니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이 된다. 위·진남북조시기에 탄압받다가 당나라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는다. 당 태종 때에 삼장법사가 서천(인도)에 가서 불경을 구해 와 중국에서의 불교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다. 중국역사에서 유일한 여황이었던 무측천은 불교에 심취해 전국에 가축도살금지령까지 내릴 만큼 독실한 불교도였다. 여황은 자신이 불교를 좋아하다 보니 전국에 불교를 대중화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불교의 경전은 매우 어렵다. 스님들의 염불은 그들만이 알아먹을 뿐 일반 민중은 이해불가다. 그래서 불교를 대중화하려면 불교계가 일대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 불교를 대중화하는 그 변혁이 우리말로 말하면 바로 ‘야단법석’이다. ‘야(野)’는 도시 변두리 빈 공터이고, ‘단(壇)’은 제단 단이며 공연무대이고, ‘법(法)’은 불교를 뜻하고, ‘석(席)’은 불법을 전파하는 자리이다. 야외에 공연무대를 설치하여 불경을 강연하는 것이 바로 ‘야단법석’이다. 본래 산속의 절간에서 염불하던 스님들이 민중 속에 들어가 ‘연예인’이 되는 것이다. 즉 어려운 불경을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민중에게 이야기 식으로 풀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강연하는 것이 바로 ‘야단법석’이었다. 그런데 이 ‘야단법석’이 중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일반용어가 되지 못한데 비해 한반도에서는 자주 쓰는 일반 어휘로 자리매김 되어왔다. 어찌 된 영문일까? 원효 스님의 덕분이다. 우리말 ‘야단법석’은 시끌벅적 떠든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떠들었나? 경직되어 있던 스님들이 무대에 올라 ‘연예인’이 되어 재미있게 강연하고 스님의 강연이 끝나면 갑돌이 갑순이 모두 ‘각설이’ 되어 무대에 올라 노래와 춤을 맘껏 즐기고 무대 아래에서는 줄넘기, 줄다리기, 제기차기, 연 띄우기, 투호놀이, 패놀이 등 오락을 즐기고 심지어 여성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잠자리 잘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밸 수 있는지에 대한 ‘음담패설’을 맘껏 나누는 자리였다. 이렇듯 한바탕 터놓고 떠들었던 것이다. 이 떠드는 장소에서는 계급이 없고 남녀 차별도 없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신라 원효 스님이 바로 방방곡곡 촌락을 돌아다니며 ‘야단법석’을 벌려 불교를 전파하고 대중화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던 이유로 우리말 ‘야단법석’이 상용어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당나라 때 이 ‘야단법석’을 동양식 그리스 광장민주주의로 비유할 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스님들의 ‘야단법석’ 강연에 의해 강창문학(講唱文學) 이란 장르가 생겨났고, ‘송사(宋詞)’가 발달했고, ‘원곡(元曲)’이 발달하였으며, 명나라에 이르러 새로운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소설(小說)을 천자문 식으로 풀이하면 ‘작은 말’이다. 작다는 의미로 ‘잔’이라고 하는데 소설은 잔말, 잔소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잔소리는 누구를 꾸짖거나 흉을 보는 말이 아니라 잔잔하고 작은 말이라는 뜻이다. 중국에는 수천 년 동안 장터에서 이야기하고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야기꾼들이 있었으며 가문대대로 계승해온 집안도 있었다. 이 이야기꾼들의 말이 곧 ‘잔소리’이고 이 ‘잔소리’를 집대성한 것이 곧 소설이다. 역사소설 <삼국지>는 명나라 나관중이라는 글쟁이가 진(晋)의 진수가 집필한 <삼국지>와 배송지의 <삼국지주(三国志註)>에 수록된 야사와 잡기를 근거로 쓴 소설이며 최초 판본은 1522년에 판각한 가정본(嘉靖本)으로,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国志通俗演义)>라 하여 모두 24권 240칙(則)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이에 더해서 나관중은 1천7백여 년 동안 장터의 이야기꾼들이 대대로 전해온 이야기(잔소리)를 근거로 지었다는 것이 매우 설득력 있다. 삼국시대 때 있었던 일들을 1천7백 년 동안 전해오려면 한 사람이 30년 말할 수 있다고 치면 60여 대를 거쳐야 하는데 60여 대를 거치노라면 이야기들이 어떤 대목은 줄어들었고 어떤 대목은 뻥튀기처럼 부풀려지기 마련이고 재미 위주로 없던 스토리를 지어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접하는 나관중의 <삼국지>는 본래 있었던 역사사실과는 거리가 십만 팔천 리나 된다. 그리고 좋게 말하면 문학적인 상상력이 뛰어난 나관중, 나쁘게 말하면 구라가 뛰어난 나관중이라는 글쟁이에 의해 탄생된 문학작품이다. 그런데 아무리 상상의 결과로 지어내는 소설이긴 하나 역사소설이라면 그래도 역사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사실이 2~3할이라면 나머지 7~8할은 상상에 의해 지어진다. 예를 들어 중국역사에서 4대 미인 중 하나로 꼽히는 초선이란 인물도 미안한 일이지만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유비가 제갈 공명을 모시는 삼고초려도 사실이 아니다. 유비야말로 다섯 번이나 주인을 배반한 간신이지만 그를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했고 조조는 진짜 괜찮은 인물이었으나 나관중은 그를 형편없는 인간으로 묘사했다. 관운은 무식한 무장일 뿐이었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를 신으로 받든다. 한국사극드라마 <미실>에서 미실이 선덕여왕과 권력투쟁을 벌이는 스토리가 있는데 전혀 역사사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미실이란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으나 법흥왕의 색신(色臣)으로부터 진평왕에 이르는 3대를 거쳐 궁중에서 위세를 부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선덕여왕과 나이 차는 80여 년이 된다. 미실이 살아 있을 때 선덕여왕은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드라마 <미실> 뿐만 아니라 한국사극은 다수가 사서나 왕조실록에 기록된 한두 줄의 대목을 근거로 고무줄 늘리듯 늘려 지어내는 것이다. 이런 맥락과 비슷하게 한국 시중에 돌아다니는 <삼국지>는 이문열의 <삼국지>, 황석영의 <삼국지>를 비롯해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설민석의 <삼국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버전이 많아 나관중의 원작에 비해 수없이 개작되고 있다. <삼국지>가 본래 어려운데다 여러 버전이 있어 더욱 혼란스러울 것 같아 <삼국지>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기로 맘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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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4
  • [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①
    [동포투데이] 진의(秦怡 친이)ㅡ그녀는 중국대륙의 유명한 영화배우이다. 영사막에 나오는 그녀는 다정다감하면서도 용감무쌍한 기질을 보여주는 동방여성의 형상을 잘 부각하면서 많은 관중들의 심금을 사로잡군 하였다. 봉건전통이 각별히 심한 가정에서 태어난 진의는 여성이라는 본분을 지키면서도 쉽게 자아감정에 빠져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모순적인 여성이기도 하다. 자아감정에 쉽게 빠져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여성 진의ㅡ 바로 그것이 그녀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으며 그것은 두 번 다 그녀의 혼인으로 하여금 엉망진창으로 되게 했다. 1922년 1월 상해의 전통적인 봉건 대 가정에서 태어난 진의는 어려서부터 다정다감했으며 특히 문예를 즐겼고 성격 또한 활달했다. 진의의 천부적인 재능은 그녀가 상해 중화직업학교에 다닐 때 나타났다. 당시 진의는 연극 <당신의 채찍을 놓으시오(放下你的鞭子)>에 출연, 14세의 앳된 소녀였지만 극 장면마다 관객들의 심정을 사로잡군 했다. 1938년 상해 중화직업학교를 졸업한 진의는 무한으로 달려가 항일선전활동에 참가, 그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16살이었다. 당시 진의가 무한으로 간 것은 신여성으로 항일구국 의식이 강한 면도 있었겠지만 각종 전통적인 예의범절로 모든 자녀를 구속하는 가정이 싫어진 면도 있었다. 그해 진의는 무한에 있는 중국영화촬영소에 들어가 실습배우가 되었고 그 이듬해 그녀의 첫 영화 <훌륭한 남편(好丈夫)>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스타트를 뗐다. 바로 그때 천진난만한 소녀 진의한테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슬며시 다가왔다. 바로 당시 중국 연극계에서 꽤나 명성을 날리던 진천국(陈天国)이었다. 진천국은 진의한테 지꿎게 달라붙었다. 1939년의 어느 날, 진의의 손목을 잡고 산속으로 들어간 진천국은 정식으로 무릎을 꿇고 그녀한테 프로포즈를 하였다. 그 당시 진의는 선배로서의 진천국한테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지만 이성으로서의 남편감으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의는 너무 어렸던 것이다. 헌데 착한 진의는 진천국한테 확실하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특히 진천국이 자기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벽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하자 진의한테 남아있던 마지막 한 가닥 방어선도 모래성처럼 붕괴되고 말았다… 지금 와서 보면 연극쟁이인 진천국의 그 거동은 일종 <쇼>에 불과했고 진의 또한 그런 것을 간파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진천국의 본성은 결혼하자마자 곧바로 나타났다. 그는 늘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는 행패를 부렸고 심지어 진의한테 발로 차고 주먹을 내휘두르기까지 했다. 1944년 8월, 딸 비항(斐姮)이 태어난 뒤 어린 것은 자꾸 앓았고 지어 당시 항일전쟁 시기라 딸애한테 먹일 우유 같은 부식을 얻을 길 없었으며 기타 부양비용도 큰 걱정거리였다. 헌데 진천국은 돈만 생기면 술을 마셨으며 지어 어린 딸을 남한테 주자고까지 을러 메군 했다. 이에 진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1945년 일본의 패망전야에 진의와 진천국은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딸 비항은 물론 진의가 책임지고 부양하기로 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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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3
  • 미국의 대(對)홍콩 제재는 국제법 어기는 엄중 행위
    ● 세르게이 사나코예프(러시아) 최근 미국은 중국이 반포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국가안전수호법(中华人民共和国香港特别行政区维护国家安全法)>을 빌미로 우선은 홍콩에 대한 무역 우대 정책을 취소하고 수출허가 면제를 잠시 중단하였으며 이어 또 소위 <홍콩자치법안> 조인설법 등으로 제재를 실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상술한 미국의 행위는 중국내정에 대한 조폭한 간섭이며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준칙을 엄중하게 위반하는 행위로 되고 있다. 미국은 또 <인권>, <민주>란 명의로 반 중국세력의 과격폭력범죄 행위를 미화하면서 홍콩 국가안전법 입법을 터무니없이 질책하면서 홍콩 주민들의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흑백전도이다. 홍콩에서 소수의 반 중국 분자들이 외부세력과 결탁하여 부단히 폭력 활동 차원을 높이면서 홍콩주민들의 정상적인 사업과 생활을 엄중하게 방해하는 한편 중국의 국가안전에 현실적인 위해를 조성하고 있다. 중국이 홍콩국가안전법을 실시 추진하는 것은 국가의 주권과 영토의 완정을 수호하고 홍콩 사회의 정상질서를 유지하며 홍콩 주민들의 인신안전과 합법적 권익을 보장함에 있어서 유리하다. 미국이 중국이 추진하고 실행하고 있는 홍콩국가안전법을 빌미로 홍콩에 제재를 하는 것은 홍콩주민의 안전과 복지에는 근본 관심이 없고 머릿속에 가득 찬 것은 자국의 이익과 패권뿐이라는 것을 표명하며 이른바 <인권>과 <자유>를 떠드는 것은 미국 측이 타국의 내정을 간섭하기 위한 포장품에 불과한 것이다. 홍콩국가안전법을 제정 실행하는 것은 완전히 중국의 내정에 속하며 다른 국가들에서는 간섭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국가의 안전을 수호하는 것은 역대로 중앙정부의 사항이고 권리인 것이며 모든 나라마다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일들을 보면 중앙정부의 입법기구가 국가의 안전입법을 함에 있어서 모두 결정적인 주도 작용을 하고 있다. 홍콩국가안전법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법의 출범은 국가의 분열, 국가정권에 대한 전복활동, 테러활동의 조직과 실행, 외국 및 경외세력과 결탁하여 국가의 안전을 해치는 범죄행위를 제지하거나 징벌하는 것으로 국가의 주권, 통일과 영토완정을 수호하고 홍콩의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홍콩국가안전법은 <일국양제(一国两制ㅡ한 나라 두가지 제도)> 방침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다. 중국이 홍콩국가안전법을 제정 실행하는 것은 곧바로 매우 안정적인 행동이다. 중국정부는 1997년에 홍콩에 대한 주권행사를 회복하였으며 <일국양제>는 홍콩발전의 가장 큰 우세였다. <일국양제>의 성공적인 실천은 홍콩의 독특한 발전우세로서 홍콩주민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기도 했다. 다 년래 필자는 경상적으로 홍콩에 다녀왔으며 이 도시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 중국으로 반환된 이래 홍콩에서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인프라 시설이 더욱 개선, 특히 교통운수 시설안 빅토리아항구를 관통하는 해저터널을 포함한 홍콩, 저우하이(珠海)와 마카오 등 세 도시를 잇는 홍콩-저우하이-마카오 대교 등이 가장 좋은 사례이다. 그리고 홍콩의 상업, 금융업과 서비스업 등이 발랄한 발전을 가져왔다. 조국의 내륙과 멀지 않은 등 유리한 주위 환경과 개방자유의 상업운영 환경 그리고 안정된 사회질서 등으로 홍콩은 많은 대형적인 다국 회사들의 투자 지역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미국이 홍콩을 제재하는 것은 본질상에서는 타인한테 손해를 주고 자신도 해를 입는 행위임에 분명하다. 통계상 데이터를 보면 중국의 <일국양제> 정책으로 하여 미국은 대단한 수익자로 되었었다. 미국은 홍콩과의 경제무역 왕래 중에서 매우 큰 이득을 보았으며 2010년부터 2019년간의 10년 사이 미국은 대 홍콩 화물무역에서 310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현재 약 1300개의 미국기업이 홍콩에서 기업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 본지 기업이 내지시장으로 진입하는 것과 등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중국을 제압하는 것으로 현재 흔들리며 땅에 추락하고 있는 자국의 세계패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 년래 미국은 <세계경찰>로 있으면서 서방 주도의 가치체계를 주도해 왔으며 부동한 가치이념의 국가에 대해서는 걸핏하면 제재를 실시해왔고 아울러 시종 일련의 숭고한 어조로 자신을 감추어왔다. 구두 상에서 이들은 국제법과 국제규칙을 선양하였지만 실제상에서는 패권주의와 강권정치를 강행해 왔다. 국제규칙에 대해 미국은 경상적으로 입맛에 맞으면 이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군 했다. 최근 들어 미국은 더욱 창궐하게 많은 국제조직과 다변협에서 퇴출하면서 일찍 이행을 승낙했던 의무를 거절하고 있다. 현 단계에 있어서 미국은 국제규칙을 준수함과 아울러 마땅히 해야 할 국제적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이는 미국정부가 반드시 정시해야 할 문제이다. (작자는 러시아 싱크탱크 <러시아 중국분석 센터 사무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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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8
  • 한 농예인의 동상 그리고
    ●김 혁 찜통더위에 꺼둘린 7월 22일, 용정시 로투구진 용진촌 소기마을에서 최창호 선생 조각상 설립식이 조촐하게 펼쳐졌다. 허물어져가던 ‘사과배선조나무기념비’가 보수되었고 최창호 선생의 100년 고택도 다시 손길이 닿아 초옥의 운치를 보이는 가운데 그 고택의 뒤쪽 언덕배기에 ‘사과배의 선구자’로 정평되는 농예인 최창호 선생의 한백옥 흉상(胸像)이 건립되었다. ▲22일 오전 용정시 로투구진 용진촌에서 최창호선생의 조각상 (낙성) 및 사과배 종나무(宗树) 기념비 확장공정 준공식을 가졌다. 최창호는 1897년 조선의 함경북도 경성군 주남면 용정동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선비 최병일의 아들로 태어났다. 20세기 초, 일제의 탄압에 조선 리씨 왕조의 운명이 다해가자 최병일은 일가식솔을 거느리고 중국으로 이주, 1916년에 드디어 다다른 곳이 바로 그 지형이 버치 모양을 닮은 형국이여서 ‘작은 버치골’로 불리는 용정 로투구진 소기(小箕)촌이였다. 최 씨 일가는 화전을 일구어 첫해 농사를 지었고 지세 높고 양지바른 곳에 8칸 초가집을 지었다. 최창호네 집 뒤편에는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언덕이 있었다. 최창호는 그 언덕에 살구, 오얏, 배, 복숭아, 찔광이와 돌배나무를 서렬열로 심었다. 그로부터 소기골에 처음으로 과수원이 들어서게 되였다. 1921년에 최창호는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가져온 여섯 대의 배나무 가지를 김치움에 넣어 잘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봄이 되자 배나무 가지를 돌배나무에 접지하였다. 짚으로 싸고 삼으로 동여서 겨울나기를 시켰다. 그렇게 6년째 되던 해의 봄 3그루의 과일나무 가지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 세 그루의 과일나무가 연변에서 생성된 사과배의 단초(端初)를 열어놓았다. 이로부터 사과배는 연변은 물론 동북지역과 내몽골, 화북지역에 널리 전파되었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과배기지인 연변과수농장 만무과원이 용정에 조성되었다. 사과배는 국내외에 소문 높은 브랜드상품으로 자리매김했고 사과배산업은 연변 농업경제의 중요한 기둥 산업으로 간주되었다. 한 농예인이 접목의 힘으로 거칠고 바람 세찬 이 땅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주렁지게 한 새로운 품종이 바로 사과배이다. 150여년의 이민 정착 역사를 경유해온 조선족이 황무지를 눈물로 개척하면서 만들어 낸 지역 특산물로서의 사과배에는 조선족의 피와 땀, 애환이 담겨있다. 이렇듯 이민 민족인 조선족은 중국 문화의 가지를 자기 민족 문화의 뿌리에 접목시켜 새로운 문화를 창출시켰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중국 조선족을 사과배에 곧잘 비유한다. 사과배는 어찌 보면 자체의 특유의 생존 이념을 키워온 조선족 문화를 형상화한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년 세월을 경유해오면서 사과배는 중국 조선족의 개척정신과 창조정신의 상징물로 부각 되였고 사과배선조나무는 연변의 중요한 역사, 경제, 문화 유산으로, 소중한 향토교재로 각광받게 되였다. 이에 용정시정부에서는 지난 1987년 최창호 선생의 호흡이 서린 소기촌에 ‘사과배선조나무기념비’를 세웠고 1998년에는 연변주정부와 용정시정부에서 ‘사과배소개기념비’를 세웠으며 오늘에는 드디어 그 사과배의 ‘산파’인 최창호 선생의 기념석상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족 문화의 발상지 용정지역에는 모아산 기슭에 과수원을 건설할 구상을 무르익혀 오늘의 만무과수원을 일구어낸 연변조선족자치주 제1임 주장 주덕해, 연변의 첫 반일시위운동의 선두에 섰던 조선족 화가 한낙연, 조선족 교육의 일번지 명동학교의 창시자 김약연, 겨레가 애대하는 민족시인 윤동주 등 명사, 명류들의 기념 동상이 들어서게 되였다. 이러한 동상들은 지역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을 우렷이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기념물들은 지역사회의 둘도 없는 랜드 마크가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돌을 쫏고 나무를 깎아 형상 하나를 세우는 행위가 아니다. 선대 혹은 당대 사람들이 이룩한 업적을 기려 정성껏 세운 동상은 역사를 기억하려는 지성인들의 정열과 민족심의 발현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새롭게 살리고 글로벌 시대 세계로 가는 조선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다. 명예와 공훈에 걸맞은 기념비, 동상을 적지에 건립하는 일은 이곳을 찾는 시민, 타지의 관객들에게 지역사와 현대사의 산 교육의 장으로 될 것이다. 민족역사의 보존, 전승, 특히 지역사회의 위상에 걸맞은 기념물의 건립은 역사관, 민족관, 국가관을 제대로 정립하게 해주며 우리의 미래를 굳건히 다지는 찬란한 기념비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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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7

플러스 검색결과

  • 정부, 재입국 외국인 자가격리 관리 강화
    [동포투데이] 정부가 방역관리상 취약한 유형의 체류자격으로 입국하는 외국인과 재입국 외국인 등을 대상으로 자가격리 관리를 보다 강화한다. 이에 따라 입국심사 단계에서 실제 거주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자가격리에 부적합한 장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입국심사 시 외국인이 기재한 주소와 동일하면 시설격리 등을 조치한다. 특히 자가격리 연락처 기재시 단순 지인이 아닌 실제 소유주 또는 관리인의 연락처를 기재하도록 의무화하고, 주소지 관리가 시급한 대상은 우선적으로 전수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그동안 정부는 방역강화 대상국가를 지정해 비자와 항공편을 제한하고, PCR 음성확인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해외유입으로 인한 지역사회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결과 이들 국가로부터 입국하는 외국인 수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장기체류 외국인이 출국 후 재입국 시 신고한 체류 예정지가 자가격리 장소로 부적합한 사례가 발생함에 따라 자가격리 관리를 보다 강화한다. 우선 재입국 외국인의 관리가 필요한 국가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심사 단계에서 거주지별 형태와 건물주와의 통화를 통해 실제 거주 여부 등을 파악하고, 해당 주소지가 자가격리에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되면 시설격리한다.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관내의 고시원, 모텔 등 자가격리에 부적합한 장소에 대한 주소 정보를 미리 제공받아 ‘자가격리 부적합 주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입국심사 시 외국인이 특별검역신고서에 기재한 주소지가 자가격리 부적합 주소에 해당하는 경우 공항·항만 검역소에 통보하고 시설격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아울러 난민 신청자 가운데 출국 후 재입국 예정인 1000여 명은 난민심사 진행단계, 체류기간 만료일, 난민 신청사유 등을 전수 조사해 재입국 시 신속하게 심사를 결정한다. 만약 다수가 공동으로 숙식하거나 화장실을 공유하는 등 주거의 독립성이 없는 쪽방촌 등에 체류하는 경우에는 시설격리로 전환하도록 검역지침 반영을 추진한다. 특히 해외 입국자에 대한 특별입국절차에서도 자가격리 주소 및 연락처 기재 시 단순 지인의 연락처를 기재하지 않고 자가격리 장소 소유주 또는 관리인의 연락처를 기재하도록 의무화한다. 또한 외국인 등록 업무 시 동일주소지에 다른 외국인이 이미 등록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동일 주소지에 등재된 외국인이 일정 인원 이상이면 필수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한편 조사 결과 등록된 거주지와 실제 체류 장소가 다르거나 허위로 체류지 신고를 한 사실이 적발된 경우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처벌을 강화하는데, 범칙금은 현행 100만원 이하에서 200만원 이하로 높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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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31
  • 해외 출생 미성년자, 한국 국적 선택 기회 넓힌다
    [동포투데이] 해외에서 태어난 미성년 국민에게 한국 국적을 선택할 기회를 넓혀준다. 법무부는 외국에서 출생·거주해 후천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미성년자를 국적보유신고 대상에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국적법과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21일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외국에서 출생해 거주하던 중 외국 법제로 인해 후천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미성년자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 국적을 상실하지 않도록 국적보유신고 가능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았다. 국적보유신고는 결혼·입양 등 비자발적 사유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한국 국적을 보유할 의사가 있다고 법무부에 신고하는 제도이다. 신고하면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안 하면 한국 국적은 상실된다. 국적보유신고 기간도 현재 6개월에서 1년으로 늘어난다. 신고 기간이 짧아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1998년 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접수된 신고는 1천20건이다. 법무부는 "어린 나이에 본인의 진정한 의지와 무관하게 현지 법제도로 우리 국적이 상실되는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각 분야에 도입된 비대면 방식을 국적업무에도 도입했다. 온라인으로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감염병 확산 등 재난상황에서는 국적증서 수여식을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는 한국 국민으로서 자격을 갖췄는지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귀화허가신청서에 생계유지 능력, 범죄경력 유무, 사회공헌 활동 등 항목을 추가하고 퇴직 공무원 등 전문성을 갖춘 민간인을 귀화 면접에 투입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다양한 목소리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여 최종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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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2

포토뉴스 검색결과

  • [포토] 연변자치주 왕청縣 대중건강운동 시동의식
    [동포투데이] 8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서는 2020년 ‘대중건강운동일’ ‘건강 길림·상동.성하’(健康吉林·爽动盛夏) 대중건강운동 시동의식을 펼쳤다. 이날 시동의식에서 대중건강운동종목인 광장무용, 유력공, 배구, 태극부채, 태극권, 태극검 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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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8
  • 日 히로시마, 원자탄 폭격 75주년 기념행사 거행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탄 폭격 75주년 기념행사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아 애도하고 있다. [동포투데이]일본 히로시마시에서 6일 원자탄 폭격 75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행사 참석자는 780명으로 대폭 줄었다. 침략전쟁을 발동한 일본의 신속한 투항을 다그치기 위하여 미군은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했다. 일본은 오랫동안 자국을 제2차 세계대전, 특히 핵폭발의 '피해자'로 묘사하면서도 원자탄 폭발을 당한 역사적 배경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신화사/교도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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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포토] 170년 된 연변 조선족 전통가옥
    [동포투데이] 사진은 연변조선족자치주 북흥촌 조선족 전통민가의 모습이다. 지난 2014년 길림성중점문물보호단위로 확정된 이곳 전통가옥은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천수툰의 두만강 서안에 위치해있으며 전통적인 팔간토목구조의 기와집이다. 길이 13미터, 폭 6미터로 면적이 78평방미터인 이 전통가옥은 헐산식(歇山式) 지붕을 갖추고 있다. 가옥 기둥의 탄화 정도를 분석해본 결과 북흥촌 전통가옥은 지은지 170년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현재까지 집주인이 거주하는 살아숨쉬는 문물이다./ 박은희(사진=연변일보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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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이재명 경기도지사 안성시 호우피해 현장점검
    [동포투데이] 3일 오후 이재명 경기도지사 여름휴가 일정을 취소하고 복귀해 안성시 집중호우피해 현장을 점검하였다.(사진제공 : 경기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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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4
  • 대륙 상공에 걸려있는 ‘십오야의 밝은 달’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3일 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음력 6월의 <십오야 둥근 달>이 대륙 상공에 걸려 은쟁반 같은 모습을 드러냈으며 달이 가장 둥글기는 당일 밤 23시 59분이었다고 4일, 중국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달이 3일 밤처럼 밝고 둥글게 하늘에 걸리기는 아주 드문 현상으로 21세기에 들어 근근히 여섯 번밖에 없다고 한다. 사진은 3일 밤 중국 충칭(重庆)의 밤하늘에 걸린 둥근달, 거기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진풍경을 나타냈다.(사진=중신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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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4
  • 中, 고성능 전기 기관차 개발 성공
    [동포투데이] 지난 29일, 후난(湖南)성 주저우(株洲)시 중처(中車)주저우 전기기관차유한공사에서 출력 2만 8800kW, 견인력 2280kN의 '선 24' 전기 기관차가 조립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이 고성능 전기 기관차의 성공적 연구개발은 중국 철도의 대용량 교통기술 혁신이 중대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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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30
  • 中 충칭 저우자산 대교 '선경' 재현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신화망에 따르면 최근 연속 내리는 큰 비로 중국 충칭 위베이구 구루진(重庆渝北区古路镇)의 저우자산(周家山)은 오랜간 만에 일출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저 멀리 동녘 하늘에 노을이 비껴오는 가운데 저우자산 대교는 주위를 감도는 안개에 싸여 있었고 노을이 점차 펴지면서 저우산 대교는 마치 운무위에 떠있는 듯 했으며 부드럽게 감돌며 천태만상을 보이는 안개속의 주위는 마치 선경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사진제공 :인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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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8
  • 中 구이저우 독특한 묘족 옛 건축촌락 각광
    [동포투데이 김현나 기자] 일전 중국의 인민망은 구이저우 시장(贵州西江)에 보존되어 있는 독특한 묘족 옛 건축물 촌락을 소개했다. 인민망에 따르면 <천호묘채(千户苗寨)>로 불리는 구이저우 장시 묘채는 산을 등지고 지어진 10개의 옛 자연촌채로 조성, 현재 중국 국내에서 가장 큰 묘채로 되고 있다. 장시에서 살고 있던 옛 묘족인들은 산기슭에서 연선을 따라 산등성이를 타면서 올라가며 지어졌으며 산체의 생태 계통의 완정성을 보존하면서도 건축자재 선택과 건물 구조상 특유의 건축풍격을 보여주고 있어 이 묘족집거지는 <노천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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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8
  • 中 안휘성 육안시 고진진, 홍수피해 심각
    [동포투데이] 최근 안휘성 육안시욕안구 고진진(安徽省六安市裕安区固镇镇)이 심각한 홍수피해를 입어 여러개 촌마을이 침수되고 도로가 끊겼다. 현재 구조대가 현장에서 수재민들을 전이시키고 있다. 사진은 7월20일 촬영한 육안시 욕안구 고진진의 침수된 거리이다(신화사 무인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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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1
  • 연변조선족자치주 6개촌 중국 향촌관광중점촌에 선정
    [동포투데이] 중국 문화관광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제2진 전국향촌관광중점촌 선정결과를 공시했다. 전국 680개 향촌이 선정된 가운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 안도현 만보진 홍기촌, 왕청현 대흥구진 홍일촌, 돈화시 안명호진 대산촌, 돈화시 안명호진 소산촌, 도문시 석현진 수남촌 등 6개 촌이 이름을 올렸다. 전국향촌관광중점촌은 국가 지원 정책을 선차적으로 향수 받게 된다.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 방천국가급풍경명승지 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방천촌은 중국, 러시아, 조선 삼국 변계에 위치해 “동방 제1촌”으로 불리고 있다. 촌민 전부가 조선족으로 구성된 이 촌은 지금도 원초적인 문화적 정취와 민족적 특색을 보이고 있으며 사면으로 뭇 산에 감싸여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촌에는 조선족예술공연장, 민속문화 전람관 등 관광시설이 있어 조선족의 역사문화를 전면적으로 전시하고 관광객들도 조선족의 민족풍정을직접 체험할 수 있다. 안도현 만보진 홍기촌 홍기 민속촌은 현 소재지에서 72킬로미터, 주소 재지 연길시와는 140킬로미터, 장백산과는 15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장백산으로 통하는 명장 도로가 마을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홍기촌은 안도로부터 장백산으로 통하는 길에 자리 잡고 있는 유일한 순수 조선족으로 구성된 촌이다. 산을 등에 업고 물을 끼고 있는 이 촌은 민족 건축 특색이 짙은 가옥들이 줄느런이 서있고 주변에는 바둑판 같은 논밭이 있어 조선족의 농촌마을 풍정을 만끽할 수 있다. 왕청현 대흥구진 홍일촌 홍일촌에는 30년대의 조선족 가옥 양식으로 복원한 항일투사 김백문의 옛집과 백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독일식 교회당 건물을 원 모양으로 보존한 촌사관을 대외에 개방하고 있다. 돈화시 안명호진 대산촌 여러 민족 집거지인 대산촌(대산취자촌)은 한족, 조선족, 만족등 민족이 모여 살고 있다. 각 민족은 서로 동화를 이루면서도 자기의 전통적인 문화 습관을 보존하고 있다. 이 촌은 독특한 자연 풍광과 쾌적한 기후,다양한 관광환경과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목단강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주변에 수많은 저수지와 호수들이 있어 예로부터 “어미지향, 북국의 강남”으로 불리고 있다. 돈화시 안명호진 소산촌 길림성과 흑룡강성 접경지대와 안명호국가자연보호구의 핵심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소산촌은 푸른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맑은 물이 마을을 에돈다. 안명호는 장소천이 쓴 “안명 호반”에 따라 이름을 지은 것이다. 소산촌은 안명호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 촌에는 “안명호 어항”으로 이름 지은 풍경구가 있는데 이 곳에서 식사와 숙박을 할수 있고 수상 오락으로 즐길 수 있다. 수상 오락장에서 배놀이, 뽀트놀이, 낚시로 휴식의 한때를 즐기고 또 배를 타고 안명호의 전경을 구경할 수 있다. 도문시 석현진 수남촌 시구역과 7킬로미터 가량 떨어지고 도문경제개발구와는 0.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수남촌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수남촌에 가면 조선족 특색이 짙은 가옥과 문패루, 민속전람관, 나무잔도, 관광계단, 백년나무, 백년우물을 구경하고 조선족가무, 모닥불야회도 즐길 수 있다.(사진=中國朝鮮語廣播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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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동영상뉴스 검색결과

  • 中 항저우 아내 '토막살해'한 남편 체포
    [동포투데이] 8월 6일 항주시 인민검찰청은 고의살인 혐의로 쉬궈리(许国利)에 대하여 체포를 허가하였다. 2020년 7월 5일 새벽 쉬궈리는 가정생활 갈등을 겪던 중 항주시 강간구(江干区) 자택에서 아내가 잠든 틈을 타 살해한 후 시체를 토막내 여러 곳에 나누어 유기하고 부분적인 신체 조직은 변기를 통해 정화조로 흘려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 관영 CCTV 보도에 따르면 7월 30일 항주시 공안국은 고의살인 혐의로 쉬궈리에 대한 체포를 신청하였다. 항주시 인민검찰원은 심사를 거쳐 쉬궈리는 범죄 수단이 잔인하고 성질이 악랄하며 고의살인죄 혐의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8월 6일 체포 신청을 허가하였다. 7월 6일 20시 07분 항주시 강간구 공안분국은 라이 씨 여성의 실종 신고를 받았다고 항주시 공안국은 통보하였다. 경찰은 아파트 단지 내 6개동 1만여㎡ 등 공공장소의 은밀한 부분에 대하여 전후로 4차례 이 잡듯이 수색하였다. 전담팀 기동대는 정화조에서 뽑아올린 38차량의 분뇨에 대하여 세척하고 걸러낸 결과 인체조직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며 DNA 검식 결과 라이 씨의 인체조직으로 판명되었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경우 라이 씨는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녀의 남편인 쉬궈리의 범죄 혐의가 명확해졌다. 경찰조사에서 쉬궈리는 가정생활 갈등으로 아내 라이 씨에게 불만이 쌓인 자신은 7월 5일 새벽 집에서 라이 씨가 잠든 틈을 타서 그녀를 살해하고 토막 내서 정화조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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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9
  • 中 당산 규모 5.1 지진 발생, 북경 천진 등 지역서 진동 감지
    [동포투데이] 중국 지진대망은 오늘(12일) 아침 6시 38분경 하북 당산시 고야구(북위 39.78도, 동경 118.44도)에서 규모 5.1지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진원 깊이는 10킬로미터 지점이다. 네티즌들은 지진이 발생한 당산시와 가까운 하북, 북경, 천진 등지에서도 진동이 감지됐다고 전했다. 중국지진대망에 따르면 진앙은 고야구와 7킬로미터, 개평구와 19킬로미터, 란주시와 23킬로미터, 풍윤구와 24킬로미터 로북구와 27킬로미터, 당산시와 28킬로미터, 천진시와 132킬로미터 상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지진대망은 또 최근 5년래 진앙지 주변 200킬로미터 이내에서 규모 3 이상 지진이 도합 17차례 발생했는데 이번 지진이 규모가 가장 큰 지진이라고 전했다. 한편 하북성 동부에 위치한 당산시는 지난 1976년 7월 28일 3시 42분 7.8급 대지진이 발생해 242,419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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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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